푸른교회 아카이브

세 친구(욥 2:11-13)

20120309 

세 친구 

욥 2:11-13


세 친구가 욥을 위로하기 위해 찾아 왔습니다. 굳이 기별을 한 것도 아닌데(6:22) 남에게 소식을 듣고 득달같이 달려온 것입니다. 그들은 몰라보게 변한 욥의 몰골에 할 말을 잊고 큰 소리로 우는가 하면, 벌거벗은 채 종기를 긁고 있는 욥의 고통에 경악하며 겉옷을 찢고 티끌을 머리에 뿌리며 땅에 앉아 욥의 아픔을 같이했습니다(12절). 그러나 그들의 그 순수한 우정과 선한 의도에도 불구하고 그들도 결국은 욥의 진정한 위로자가 될 수는 없었습니다.


엘리바스

욥을 향해 제일 먼저 입을 연(4:1~) 엘리바스는 에서의 손자인 데만의 후손(창 36:11)이었습니다. 그래서 에돔의 성이었던 <데만 사람>이었다고 합니다. 그는 욥의 고난이 죄 때문이라고 직언합니다. 엘리바스는 자신의 관찰과 경험에 많이 의존하며 마치 신학자와도 같은 논리를 전개합니다. 그는 욥의 세 친구 가운데서 가장 사려가 깊지만 <하나님은 심판을 내리신다>는 뜻의 이름 만큼이나 오직 악인들만이 고난을 당한다는 신념으로 욥의 고난 역시도 곧 그의 죄를 의미한다고 단정하며 세 개의 긴 담론을 남깁니다(4-5장, 15장, 22장). <하나님이 너를 책망하시며 너를 심판하심이 너의 경건함 때문이냐 네 악이 크지 아니하냐 네 죄악이 끝이 없느니라>(22:4-5).


빌닷

빌닷은 엘리바스에 이어 두 번째로 욥에게 말한 친구입니다. 그는 수아 사람으로 아브라함이 그두라에게서 낳은 아들 수아의 후손인 듯한데(창 25:2), 그도 역시 세 개의 긴 담론으로(8장, 18장, 25장) 욥에게 충고합니다. 빌닷은 주로 전통과 역사에 근거해 말하지만 내용은 거의 엘리바스의 주장과 동일한데 그 어조는 엘리바스보다도 더 강경합니다. <너는 틀림없이 죄를 지었다. 따라서 회개해야 하나님이 너의 이 모든 고통을 면케하실 것이라>는 논조입니다. 그러나 그의 논리는 <논쟁의 하나님>이란 뜻의 그의 이름만큼이나 논쟁적입니다.


소발

그는 욥에게 충고한 세 번째 친구로 나아마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아마도 에돔이나 아라비아에 거주했던 것 같습니다. 소발은 엘리바스와 빌닷보다 훨씬 더 과격합니다. 완고한 도덕주의자 혹은 교조적 근본주의자처럼 보입니다. 그는 두 개의 담론(11장, 20장)으로 욥을 충고하는데 추측에 많이 의존하며 때로는 무례하고 짜증스러워하며 퉁명스러운 모습을 보이기도 합니다. 전혀 타협할 줄을 모르는 원리주의자의 목소리를 대변하며 욥을 향해 <너는 죄를 짓고 있다. 당장 회개하지 않으면 네 생명이 단축될 것이라>고 위협합니다. 소발은 하나님을 매우 무자비한 분으로 이해하는 듯하며 그의 이름이 <거칠다>는 뜻이어서 그런지 그의 논조는 처음부터 몹시 강경하고 과격합니다. 


절친이요 똑 같은 하나님을 믿는다는 사람들이 이토록 하나님에 대한 이미지와 현실과 고난에 대한 해석이 서로 다를 수 있다는 사실에 놀라움을 금할 수 없습니다. 모쪼록 이 세 친구들의 담론과 욥의 치열한 변증을 통해 사람들의 보다 다양한 관점과 신념들을 확인하며 더욱 신앙과 고난에 대한 이해의 지평을 넓히게 되시길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