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교회 아카이브

20080914m: 산 제사(롬 12:1-2)

2008년 9월 14일 주일낮예배
본문: 롬 12:1-2
제목: 산 제사

[1]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 이는 너희의 드릴 영적 예배니라 [2]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오늘이 추석입니다. 그래서 믿지 않는 사람들은 오늘 새벽에 다 제사를 드렸습니다. 마침 오늘이 주일이어서 우리도 다 주님 앞에 제사드리러 나왔습니다. 그런데 제사도 제사나름입니다. 1절 말씀을 다시 읽습니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 이는 너희의 드릴 영적 예배니라.” 제사에도 죽은 제사가 있고 산 제사가 있으며, 예배에도 영적 예배가 있고 그렇지 못하고 형식적인 예배가 있습니다. 죽은 제물로 죽은 조상에게 바치는 제사는 죽은 제사이고, 산 제물로 살아계신 하나님께 바치는 제사는 산 제사입니다. 문제는 죽은 조상에게 죽은 제물로 바치는 것에는 죽었으니 말이 없는데, 살아계신 하나님은 이렇게 하면 싫어하십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산 제사는 어떤 제사며, 산 제물은 어떤 제물입니까?

1절을 보면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고 합니다. 로마서 6장 13절을 보면 ‘또한 너희 지체를 불의의 병기로 죄에게 드리지 말고 오직 너희 자신을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산 자 같이 하나님께 드리며 너의 지체를 의의 병기로 하나님께 드리라’고 하고, 고전 6장 20절에도 ‘너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고 합니다. 다 우리의 몸으로 산 제사를 드리라는 겁니다. 구약시대처럼 죽은 짐승을 드리는 제사는 죽은 것입니다. 내 몸이 하나님께 드려 마땅한 산 제물입니다. 하나님은 내 몸을 드릴 때 그 제사를 접수하십니다. 그러면 산 제물로 바쳐야 할 내 몸이란 무엇입니까?

내 몸이라 할 때 육체는 아닙니다. 육체는 헬라말로 사르크스입니다. 육체는 프쉬케 곧 영혼도 아닙니다. 또한 프뉴마라고 부르는 정신도 아닙니다. 소마 곧 전인(全人)입니다. 한 마디로 통전적인 인간, 내 존재 전부, 내 삶 전부를 뜻하는 것이 바로 성경이 말씀하는 몸인 소마입니다. 이 소마를 제물로 하여 하나님께 산 제사를 드리라는 겁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산 제사를 드리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내 몸, 내 삶으로 바치는 제사가 우리가 드려 마땅한 영적 예배입니다. 주일날 한 번 나와서 의식적이고 형식적으로 드리는 예배는 산 제사가 아닙니다. 우리의 몸, 삶으로 드리는 예배, 소마를 바치는 예배가 하나님이 받으시기에 합당한 산 제사요 영적 예배입니다. 죽은 예배는 살아계신 하나님이 흠향하시지 않습니다. 죽은 조상이야 죽은 제물을 바쳐도 되겠지만 하나님은 살아계시기에 산 제물을 바쳐야 합니다.

그러면 몸으로 드리는 산 제사, 내 삶으로 드리는 영적인 예배가 구체적으로 무엇을 뜻하겠습니까? 어떻게 드리는 예배가 내 몸으로 드리는 예배입니까? 오늘 본문은 두 가지를 말씀합니다. 우선 이 세대를 본받지 말라고 합니다. 2절 상반절입니다: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이 세대를 본받지 않는 게 뜻밖에도 우리가 드리는 산 제사라고 합니다. 여기서 ‘세대’라는 말은 코스모스, 우주, 세상이란 뜻입니다. 성도는 이 세상에 발을 딛고 살지만 이 세상과는 구별된 존재입니다. 이 세상과는 일정하게 구별된 하나님의 백성이 성도입니다. 거룩은 바로 구별하다는 뜻입니다. 성도는 세상과는 구별된 백성, 하나님의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들은 세상에서 살지만 세상을 닮지 않고 하나님을 닮아야 하고, 세상에 살지만 물들지 않고 거룩하게 자기를 관리하며 살아야 합니다. 그럴 때 성도 고유의 동일성, 정체성을 상실하지 않고 지켜갈 수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삶으로 살아계신 하나님께 산 제사를 드리는 겁니다. 여러분은 이렇게 살고 계십니까? 제대로 살지 못하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그래서 늘 우리는 안타까워하고 밖으로는 욕을 먹고 있습니다. 세상과 구별되지 못하기에 그렇습니다. 세상보다 한 술 더 뜨기에 그렇습니다. 얼마나 교회가 세속화되어 있습니까? 이렇게 해서는 하나님께 합당한 영적 예배가 될 수 없습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세상 사람보다 더 고약하게 삽니다. 주일날만 예배하겠다고 교회에 나와 앉아있습니다. 이런 예배는 죽은 예배, 화석화된 예배입니다. 세상과는 구별된 거룩한 삶이 하나님이 받으시기에 합당한 제물입니다.

그 다음으로는 하나님의 뜻을 분별해서 사는 것이 우리의 몸을 산 제물로 바치는 영적 예배가 됩니다. 왜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분별해야 합니까? 그래야 하나님의 뜻대로 살 수 있기 때문입니다. 성도는 어떻게든 하나님의 뜻을 분별해서 하나님의 주문대로 살아야 합니다. 이게 바로 그리스도인들의 삶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거리낄 것이 없이 자기 욕구대로 살면 됩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들은 내 생각, 판단, 고집이 아니라 하나님의 입맛대로 살아야 합니다. 이것이 가장 고상하고 아름다운 삶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어떻게든 하나님의 뜻을 분별해야 합니다. 투명한 영성이 필요합니다. 주님을 보십시오. 주님의 최후의 기도를 들어 보십시오. ‘내 뜻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십시오.’ 주님 최후의 기도가 이랬다는 것은 주님이 평생 이렇게 살아오셨다는 것을 뜻합니다. 죽음을 눈앞에 두고 그런 기도를 했다면 평소에는 그런 기도를 하지 않았겠습니까. 주님은 오직 한 가지 ‘내 뜻이 아니라 아버지의 뜻대로’ 사는 것이었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이 받으시기에 합당한 산 제물이고 영적 예배입니다. 우리는 평소에 내 판단과 고집으로 살다가 주일날만 한 시간 예배드림으로 내 할 일 다 했다고 생각합니다. 이것은 자기기만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잘 분별해서 하나님이 원하시는 뜻을 이루며 살아갈 때 이것이 바로 내 몸을 산 제물로 바치는 산 제사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주일날 이렇게 나와서 예배드리는 공적 예배는 어떤 의미가 있습니까? 그러면 이런 의식적인 예배는 필요 없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이것도 필요합니다. 주일날 드리는 공예배는 산 제사로 드리는 예배의 연장이어야 합니다. 공예배가 새삼스러운 것이 아니라 매일 삶을 바치는 예배의 결산이어야 합니다. 매일 내 삶을 바치는 영적 예배를 드리다가 주일날 다시 한 번 말씀과 성령으로 재충전하는 겁니다. 이런 삶의 연장선상에 공예배가 있는 겁니다. 그렇지 않고 세상에서는 멋대로 살다가 주일날 한 시간 예배드리는 것으로 내가 하나님께 바쳐야 할 예배 다 드렸다고 생각하는 것은 착각이요, 그 예배는 죽은 예배입니다. 이런 예배는 하나님이 열납하실 수 없습니다. 부디 우리가 하나님께 꼭 드려야 할 산 제물, 산 제사가 무엇인지를 추석절을 맞아 다시 한 번 생각해 보시길 바랍니다. 그래서 언제나 여러분의 몸으로 산 제물을 바치며, 산 제사를 통해 하나님을 끊임없이 영화롭게 하시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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