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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aragraph:p0001 -->
<p class="p1">영에서 무한대까지 시간의 일방적인 흐름만을 주목하는 서양의 단선적인 시간 개념과는 달리 동양에서는 그 시간의 &lt;개성&gt;에 관심합니다. 시간은 그냥 무심히 흐르는 것이 아니라 자기만의 고유한 표정과 소리, 그리고 빛깔을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절기를 중시하고, 때를 분별할 줄 아는 혜안을 지혜의 으뜸으로 여깁니다. </p>

<!-- paragraph:p0002 -->
<p class="p2"><br></p>
<!-- paragraph:p0003 -->
<p class="p2">입춘과 우수를 지나 내일이 벌써 경칩입니다. 어느 해 겨울인들 그렇잖았겠습니까마는 지난 겨울도 참 춥고 길었습니다. 아직 바람에 시린 기운이 배어있긴 해도 이제 겨울은 끝자락입니다. 원래 &lt;봄&gt;이란 눈 속에 파묻혀 있던 생명들이 다시 &lt;보인다&gt;는 뜻이라 하지 않습니까? 따라서 봄은 &lt;경칩&gt;이란 말과도 다르지 않습니다. 겨우내 땅속에서 동면하던 벌레들이 이제 기지개를 켜며 활동을 개시한다는 뜻이니까요. 그제는 인색하긴 했어도 봄비가 내렸습니다. 교회 텃밭인 웰빙촌을 오르며 싱그럽기까지 한 봄비에게 인사를 건넸습니다. &lt;조금 늦으셨네요. 잊지 않고 찾아와 주시니 그저 고마울 따름입니다. 춥고 시린 겨울을 견딘 보람 같아 뿌듯하고 반갑네요!&gt; 이제 땅속 지렁이들도 겨울잠에서 깨어나 촉촉한 흙속을 헤집고 다니겠지요. 다소 엉뚱하지만 지금이 조선시대라면 경칩 풍경이 어땠을까요? 동장군이 물러가고 성큼 다가온 봄소식이 반갑긴해도 아마 몹시 곤궁했을 겁니다. 보리 철이 되려면 아직 까마득한데 그때까지 끼니를 이어갈 일이 태산 같았겠지요. 그렇다고 헛간에 갈무리해 둔 볍씨며 각종 씨앗들을 먹을 수는 없는 노릇, 감자와 옥수수, 시래기 등으로 근근이 구복을 채울 밖에요. 들판에 나서면 바람은 여전히 차가운데 멀리 연무가 슬쩍 서리는 골짜기를 바라보며 농부는 금년에도 열심히 땅과 씨름하리라 다짐하며 주먹을 불끈 쥐었을 것입니다. 농사를 시작한다고 당장 먹을 게 나오는 것은 아니지만 어쨌든 처자식을 굶기지 않으려면 그 해도 부지런히 들판으로 나가지 않으면 안 됐을테니까요. 사실 우리도 지금 바로 그런 시기에 놓여있습니다. 겨울동안 움츠렸던 몸이 아직 다 풀리지도 않았지만 부지런히 움직여야 하고, 미처 잡히는 것은 없지만 허공이라도 움켜야 하고, 여전히 뒤숭숭한 세월이지만 다시금 엔진을 가동해야 할 때입니다. </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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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p2"><br></p>

<!-- paragraph:p0005 -->
<p class="p2">어느 날 하나님이 폭풍우 가운데서 욥에게 하신 말씀입니다. &lt;네 지혜가 그토록 깊고 넓은가? 네가 인생을 다 아는가? 바다 속 깊은 곳 그 근원까지 가 보았는가? 눈을 쌓아 둔 창고에 들어가 본 적이 있는가? 해가 뜨는 곳과 동풍이 부는 그 시발점에 가 본 적이 있는가? 네가 사자의 먹이를 계속 댈 수 있는가? 매가 높이 솟아올라 남쪽으로 날개를 펴고 날아가는 것이 네게서 배운 것인가? 악어의 입 속에 손을 넣고도 성할 성 싶은가? 누가 사람 없는 땅에, 광야에 봄비를 내리며 황무하고 황폐한 토지를 흡족히 적셔 연한 풀을 돋아나게 하는 줄 아는가?&gt;(욥 38-39장). </p>
<!-- paragraph:p0006 -->
<p class="p2"><br></p>

<!-- paragraph:p0007 -->
<p class="p2">무슨 말씀일까요? 잠시 부는 남풍에 목숨 걸 일도 아니고, 지금 들려오는 봄소식으로 마치 세상 이치를 다 꿴 듯 경거망동할 일도 아니며, 하나님의 선하신 경륜을 제멋대로 잣대질하여 곡해하므로 파종의 때를 놓치는 어리석음도 범해서는 안 된다는 경고셨습니다. 세상이 보기에는 미련하고 어리석은 것 같아도 하나님의 지혜를 당할 자는 없으며, 사람의 눈에는 이미 명쾌하게 결론이 나 버린 듯해도 하나님이 경영하시는 역사에는 얼마든지 &lt;반전&gt;의 드라마가 준비되어 있다는 말씀이기도 하셨습니다. 부디 아침을 명하여 동이 트게 하시고, 겨울을 명하여 봄에게 자리를 내주게 하시고, 꽁꽁 언 대동강 물을 풀어 올해도 우수경칩을 맞게 하신 하나님의 무한 섭리에 감사합시다. 힘들고 쓰라린 시기를 보낸 뒤 좀 더 당차고 배짱 있게 세상과 맞설 희망을 품게 하시려는 것, 아름다운 봄날의 환희는 반드시 고난 너머의 부활을 대망하는 자의 몫이란 걸 깨닫게 하시려는 게  이 경칩에 부여하신 하나님의 메시지임도 놓치지 맙시다. 하여 뒤돌아보지 말고 그냥 묵묵히 … 살며 사랑하면 될 일입니다.</p>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