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교회 아카이브

20120226m: <떡으로만> vs. <하나님만>(마 4:1-11)

2012년 2월 26일 주일낮예배/사순절 첫째주일

본문: 마 4:1-11

제목: <떡으로만> vs. <하나님만>


[1] 그 때에 예수께서 성령에게 이끌리어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러 광야로 가사 [2] 사십 일을 밤낮으로 금식하신 후에 주리신지라 [3] 시험하는 자가 예수께 나아와서 이르되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명하여 이 돌들로 떡덩이가 되게 하라 [4]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기록되었으되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부터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 하였느니라 하시니 [5] 이에 마귀가 예수를 거룩한 성으로 데려다가 성전 꼭대기에 세우고 [6] 이르되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뛰어내리라 기록되었으되 그가 너를 위하여 그의 사자들을 명하시리니 그들이 손으로 너를 받들어 발이 돌에 부딪치지 않게 하리로다 하였느니라 [7] 예수께서 이르시되 또 기록되었으되 주 너의 하나님을 시험하지 말라 하였느니라 하시니 [8] 마귀가 또 그를 데리고 지극히 높은 산으로 가서 천하 만국과 그 영광을 보여 [9] 이르되 만일 내게 엎드려 경배하면 이 모든 것을 네게 주리라 [10] 이에 예수께서 말씀하시되 사탄아 물러가라 기록되었으되 주 너의 하나님께 경배하고 다만 그를 섬기라 하였느니라 [11] 이에 마귀는 예수를 떠나고 천사들이 나아와서 수종드니라


사순절은 주님이 광야에서 40일간 금식기도하시며 고행하신 것에 그 유례를 두고 있습니다. 유럽이나 중남미 국가들은 지난 화요일로 카니발을 모두 끝냈습니다. 카니발은 라틴말로 carne vale(고기여 안녕)이란 뜻입니다. 고기와의 이별이 아쉬워 벌어지는 축제가 카니발입니다. 우리도 주님처럼 사순절동안 금식하지는 못하나 그래도 최대한 자제하며 절제하며 지내는 게 맞습니다. 가능하면 고기와 술을 멀리하며 지내십시오. 중세만 해도 이 기간을 혹독하게 보냈습니다. 지금도 가톨릭 쪽에서는 개신교보다 더 엄격하게 지키고 있습니다. 사순절 기간이 여러분의 영성에 도움이 되기를 바랍니다.


주님이 40일간의 광야 고행 끝에 당하셨던 마귀의 시험입니다. 주님이 마귀에게 유혹을 받으셨습니다. 이것을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주님이 유혹을 받을 수 있습니까? 공자님은 불혹(不惑)을 40이라고 했습니다. 군자가 40이 되면 더는 유혹을 받을 일이 없습니다. 이것은 공자님 말씀이고 성경에는 불혹이란 게 없습니다. 주님은 30세 쯤 유혹을 받으셨는데 아직 수양이 덜 돼서 받으신 겁니까? 아닙니다. 성경은 불혹을 모릅니다. 인생은 죽을 때까지 유혹을 받는다고 합니다. 공생애를 시작하며 마귀에게 시험을 당하셨는데, 주님은 생애 마지막에도 유혹을 받으십니다. 겟세마네의 기도를 들어보십시오. ‘내 마음이 고민하여 죽게 되었으니 너희는 나와 함께 깨어 있어 여기 있으라 … 아버지여 할 만하시면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얼마나 그 유혹이 극심했으면 고민되어 죽게 되었다고 하셨겠습니까? 


이렇게 숱한 시험에 직면하셨지만 한 번도 시험에 빠진 적은 없습니다. 주님이 당하신 공생애 초기 시험이 왜 우리에게 중요합니까? 주님이 당하신 세 번의 유혹은 주님만의 것이 아니라 우리가 일상에서 당하고 겪는 보편적인 시험입니다. 주님이 선구적으로 이 시험을 당하고 또 완벽하게 이기셨다는 겁니다. 우리는 늘 실패하는데 주님은 실패하지 않으셨습니다. 주님이 당하신 이 시험은 남의 얘기가 아니라 우리의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주목해야 합니다. 40일간 금식하신 후에 시험을 당하셨다는 것은 인간 한계상황에서 시험에 직면했고 그 유혹을 이겼다는 얘깁니다. 그래서 경이롭습니다. 우리를 대표해서 당하고 우리에게 모범을 제시하기 위해 이기신 주님의 시험을 구체적으로 보겠습니다.


첫 번째 시험은 3절입니다. “시험하는 자가 예수께 나아와서 이르되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명하여 이 돌들로 떡덩이가 되게 하라.” 이게 우리가 일상으로 당하는 물질적인 시험입니다. 주님도 우리와 같은 분입니다. 안 드시면 배고프고 안 마시면 목마른 분이었습니다. 완전한 하나님이자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사람의 형체만 가지셨던 게 아닙니다. 완벽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런 분이 40일을 주야로 금식하셨습니다. 우리는 하루만 굶어도 코에서 밥 냄새가 솔솔 납니다. 금식 한 3일 하면 식당이 저 멀리 있어도 음식 냄새가 코를 찌릅니다. 그런데 마귀는 역시 귀신입니다. 그 기회를 놓치지 않고 주님을 유혹합니다. 안 그래도 광야에 널린 돌덩이가 떡덩이로 보이는 판인데 이 널린 돌들로 떡덩이가 되게 하라는 겁니다. 잔인합니다. 정말 마귀답습니다. 더구나 주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제가 가장 잘 알면서도, ‘만약 네가 하나님의 아들이면’이라고 합니다. 얼마나 교활합니까? 주님은 꼼짝없이 돌을 떡 만들어 당신의 하나님 아들 됨을 증명해야 할 뿐만 아니라 자기의 굶주린 배도 채워야 할 입장입니다. 그런데 주님은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말씀으로 산다’고 하셨습니다. 주님께는 떡이 가장 생존의 중요 조건인데, 차라리 돌을 떡 만들어 하나님의 아들 조건도 채우고 자기 배도 채우면 될 터인데, 이것은 우리 생각일뿐이고 주님은 그것을 단호히 물리치셨습니다. 


왜 그렇게 주님은 가차 없이 물리치셨을까요? 4절에 답이 나옵니다.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주님이 당한 첫 번째 시험의 본질이 여기에 있습니다. <떡으로만>입니다. 사람은 떡이 제일이 아니라는 겁니다. 물질지상주의, 맘모니즘은 아니라는 겁니다. 그래서 주님이 단호히 배격하신 겁니다.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끊임없이 사탄은 우리를 떡만 있으면 된다고 시험합니다. 떡만 있으면 못할 게 없고, 떡만 많으면 누구나 최상의 행복을 누릴 수 있다고 합니다. 떡이 절대입니다. 그래서 돌로 떡을 만들지 못해 안달입니다. 떡으로만 산다는 마귀의 시험에 넘어간 소치입니다. 다 돈돈돈 합니다. 마귀의 유혹입니다. 그런데 주님은 아니라고 하십니다. 황금만능이 아니라는 겁니다.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겁니다. 사실 현대인은 다 떡에 자기 영혼을 판 에서의 후예들입니다. 지금도 우리는 떡이라면 우리는 뭐든 다 팔 채비가 되어있습니다. 양심도, 영혼도, 신앙도 다 팝니다. 짐승들에겐 떡만 있으면 됩니다. 그러나 사람은 떡만으로는 안 됩니다. 사람은 떡을 필요로 하는 육체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필요로 하는 영혼을 가진 존재입니다. 육은 떡으로 살지만 영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삽니다. 그런데도 현실을 한 번 보십시오. 다 떡에 미쳐서 돌아갑니다. 어떻게든 돌로 떡을 만들려고 합니다. 돌로 떡을 만들면 안 됩니다. 보릿가루나 밀가루로 만들어야지, 돌로 어떻게 떡을 만들겠습니까? 우리 사회의 온갖 비리, 뇌물, 불법, 편법, 한탕주의는 다 돌로 떡을 만들자는 수작입니다. 이것은 억지요 틀린 겁니다. 주님은 40일을 굶고 돌로 떡을 만들라는 시험을 추상같이 배격하셨습니다. ‘사람은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말씀으로 산다’는 말씀을 우리 뼈에 새겨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는 떡에 영혼을 팔지 않습니다.


두 번째 시험은 5-6절입니다. “[5] 이에 마귀가 예수를 거룩한 성으로 데려다가 성전 꼭대기에 세우고 [6] 이르되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뛰어내리라 기록되었으되 그가 너를 위하여 그의 사자들을 명하시리니 그들이 손으로 너를 받들어 발이 돌에 부딪치지 않게 하리로다 하였느니라.” 정신적인 시험입니다. 명예심, 허영심, 영웅심을 유혹하는 시험입니다. 빵이 해결되면 그 다음엔 명예심을 유혹받지 않습니까? 공생애를 앞두고 주님이 만약 성전 꼭대기에서 뛰어내렸는데 멀쩡했다면 얼마나 인기가 높아지면서 많은 사람이 모였겠습니까? 실제 주님은 이런 유혹에 시달렸을 겁니다. 대박을 하나 터트려야 사람이 모이고 인기가 높아지지 않겠습니까? 이 시험도 주님껜ㄴ 유혹적이었습니다. 이번에도 마귀는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라면 하나님이 사자를 명하사 안전하게 받아주실테니 두려워말고 뛰어내리라’고 합니다. 하나님의 아들임을 증명하라는 겁니다. 주님도 자신이 하나님의 아들임을 확인시키는 좋은 기회입니다.


그런데도 주님은 가차 없이 물리치십니다. ‘주 너의 하나님을 시험치 말라.’ 성전꼭대기에서 뛰어내렸는데도 멀쩡하다는 확실히 신기한 일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하나님의 사랑을 시험하고 모독하는 시험입니다. 시험해보려는 사랑은 이미 깨진 사랑입니다. 하나님은 시험의 대상이 아니라 신뢰의 대상이며 절대적인 믿음의 대상입니다. 나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을 시험해 보려는 것은 내게 이미 불신이 있다는 겁니다. 하나님은 무조건 사랑의 대상이지, 회의의 대상이 아닙니다. 우리는 ‘내가 정말 하나님의 자녀가 맞을까?’하고 생각합니다만, 이것은 다 불신의 죄입니다. 당시 주님이 정말 성전꼭대기에서 뛰어내렸으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몸은 상하지 않는다 해도 하나님과의 관계는 금이 가게 됩니다. 하나님은 시험의 대상이 아니라 확신의 대상입니다. 자기가 진정 하나님의 자녀임을 증명하겠노라며 농약 먹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단 한 사람도 산 사람이 없습니다. 하나님은 절대 그런 사람들 안 살려주십니다. 하나님이 그렇게 할 일이 없습니까? 개인적인 명예심, 허영심을 채우시는 분이 아닙니다. 저기 율동공원에 가서 발목 묶고 번지점프를 하면 살아도, 교회 첨탑에 올라가서 뛰어내리면 백이면 백 다 죽습니다. 하나님은 무조건적인 신뢰와 사랑의 대상입니다. 마귀가 뒤에서 강제로 밀어 떨어뜨리면 살려주십니다. 자진해서 떨어지면 다 죽습니다. 하나님의 이름으로 성전 꼭대기에서 뛰어내리지 마십시오. 하나님은 그런 영웅심을 채워주시지 않습니다. 주님은 공생애 마지막에도 같은 시험을 당하십니다. 십자가에 달렸는데 지나가던 사람들이 내려오면 당신이 하나님의 아들임을 믿겠다고 했습니다. 그때도 주님은 안 내려오셨습니다. 하나님을 시험하지 마십시오. 무조건 하나님을 신뢰하고 사랑하십시오.


마지막 세 번째 시험은 8절 이하입니다. “[8] 마귀가 또 그를 데리고 지극히 높은 산으로 가서 천하 만국과 그 영광을 보여 [9] 이르되 만일 내게 엎드려 경배하면 이 모든 것을 네게 주리라.” 가장 치명적인 시험입니다. 영적 시험입니다. 육적이고 정신적 시험보다 강도가 높습니다. 하나님의 배반하라는 것입니다. 이렇게 마귀의 시험은 갈수록 수준이 높아집니다. 고도를 보십시오. 처음에는 광야 평지입니다. 그 다음에는 성전 꼭대기입니다. 그 다음엔 천하의 가장 높은 산입니다. 이 고도는 주님이 당하신 시험의 난이도입니다. 점점 더 시험이 어려워졌다는 겁니다. 마지막 시험을 보십시오. 얼마나 유혹적입니까? 눈앞에 모든 부귀영화가 널렸습니다. 저게 다 내 것이 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입니다. 조건은 너무도 쉽습니다. 아무도 없는 곳에서 마귀에게 절 한 번 하면 됩니다. 보는 사람이 없습니다. 그걸 왜 마다하겠습니까? 그럼에도 주님은 ‘사탄아 물러가라 주 너의 하나님께 경배하고 다만 그를 섬기라 하였다’고 하셨습니다. 


첫 번째 시험에서는 <떡이 절대>라는 것을 배격하셨는데, 여기에서는 <하나님만 이라는 절대>를 제시하십니다. 마귀는 떡만을 내세우고, 주님은 하나님만을 내세웁니다. 하나님 절대주의입니다. 하나님만 경배하라는 겁니다. 주님께는 하나님만 이라는 믿음이 천하의 그 어떤 영화와 비교될 수 없습니다. 우리가 왜 자주 시험에 빠집니까? 하나님 절대주의가 흔들리기 때문입니다. <하나님만>이라는 하나님 절대주의를 놓치지 맙시다. 이것이 무너지면 다 무너집니다. 마귀의 시험은 우리 평생 계속 될 것입니다. <하나님만>이란 절대적 신앙이 필요합니다. 하나님의 아들인 주님도 유혹한 마귀입니다. 하물며 우리들이겠습니까? 집요합니다. 끊임이 없습니다. 마귀의 시험으로 망하지 않으려면 <하나님 절대주의>를 놓치면 안 됩니다. 주님이 당한 시험으로부터 도전을 받으십시오. 주님을 의지하십시다. 주님이 도와주십니다. 늘 승리하십시다. 갈수록 더욱 교활하고 악랄해지는 마귀의 물질적, 정신적, 영적 시험을 <하나님만>으로 다 극복하십시다.


설교영상보기: http://tvpot.daum.net/clip/ClipViewByVid.do?vid=IPMyT7w4sxg$



원문 자료와 첨부

  • 미디어: 원래 주소 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