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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p1">오늘은 사순절 첫 주일이고 금주 목요일은 삼일절 93주기입니다. 사순절은 주님의 고난을 기리는 교회의 절기고, 삼일절은 우리 민족의 고난과 기개를 되새기는 기념일입니다. 부활절로부터 역산하여 6번의 주일을 뺀(주일은 부활을 기념하므로) 40일간의 고난기간을 뜻하는 사순절(Lent)은 참 유수한 기독교 전통입니다. A.D. 325년 니케아 회의에서 제정했으니 1천7백년도 넘은 고색창연한 절기입니다. 그것도 처음 수 세기 동안은 매우 엄격하게 지켜 하루 한 끼만 먹었으며 술과 고기, 심지어는 우유와 달걀까지도 금하고 가무와 일체 오락도 허용하지 않다가 8세기 이후에는 그런 규정들이 많이 완화되었고, 16세기 종교개혁가들에게 와서는 더욱 간소화 되었는데 지금도 개신교보다는 가톨릭 쪽의 규율들이 훨씬 더 빡셉니다. 금식과 단식, 기도와 고행이 강요되기 때문에 사제들에게는 일 년 중 가장 힘든 시기로 알려져 있습니다.</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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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p2"> </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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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p2">올해도 이미 지난 수요일(Ash Wednesday)부터 시작된 이 자제와 근신의 절기 동안  우리가 사색해야 할 주님의 고난은 가진 자의 것을 빼앗아 못 가진 자에게 넘겨 준 프로메테우스적 사랑이 아니라 원수된 하나님과 인간을 화해시켜 둘 다 더불어 살게 하자는 십자가의 희생이었음을 깊이 기억할 일입니다. 희랍신화에 나오는 프로메테우스는 제우스를 배반하고 신들만이 독점한 불을 훔쳐 인간들에게 줌으로써 인간의 이익과 해방을 꾀합니다. 그러나 결국 제우스의 진노를 사 코카서스 바위에 동철로 결박된 채 독수리에게 간을 뜯깁니다. 마침내 프로메테우스가 아우인 에피메테우스에게 최후의 당부를 합니다. 자기가 자물쇠로 잠가 놓은 비밀상자 하나 만은 절대 열지 말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에피메테우스는 제우스가 보낸 여인 판도라의 꾐에 빠져 그만 상자를 열고 맙니다. 그 순간 프로메테우스가 인간들을 위해 가둬 놓았던 온갖 슬픔과 질병, 증오, 가난, 전쟁 같은 악한 것들이 다 쏟아져 나왔습니다. 이에 놀란 에피메테우스가 급히 상자 뚜껑을 닫는데 상자 안에서 &lt;나도 내 보내 주시오!&gt;하는 가냘픈 비명소리가 들렸습니다. 그래서 &lt;너는 무엇이냐?&gt;하고 묻자 &lt;나는 희망이오!&gt;하고 대답합니다. 세상이 온갖 병마와 미움과 증오 같은 악으로 가득 차 인간이 고통당할 때 &lt;희망&gt;을 내 보내 인간들을 구하려 한 프로메테우스의 마지막 배려였습니다. </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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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p2"><br></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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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p2">프로메테우스가 바위에 결박당해 간을 뜯겼던 것처럼 주님도 십자가에 달려 꼼짝없이 죽음을 맞으셨습니다. 그러나 프로메테우스가 남을 배신하고 남의 것을 훔쳐 사랑하는 이에게 뭔가를 주고 싶어 했다면 주님은 둘 다 함께 살게 하기 위한 희생의 제물로 자신을 바치셨습니다. 마치 원수된 아버지와 아들의 화해를 위해 그 둘의 손을 꼭 잡고 숨을 거둔 어떤 어머니의 죽음과도 같은 것이었습니다. 삼일운동 역시 결코 프로메테우스적인 거사가 아니었습니다. 침략자인 일본에 대한 보복행위나 그들이 가진 것을 빼앗아 못 가진 자에게 돌려주려한 프로메테우스적인 프롤레타리아 혁명 같은 게 아니었습니다. 무저항 비폭력을 내세운 것이나 독립선언문을 낭독하고 만세를 부르다 고스란히 잡혀간 것은 그들이 다 민족의 제단에 자신을 바친 화해의 제물들이었음을 뜻하는 것입니다. </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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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p2"><br></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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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p2">우리 민족은 참 슬픈 역사를 살아왔습니다. 분단문제도 그렇습니다. 한 민족이 서로 갈라져 그 원수됨의 벽을 넘지 못하는 것은 정녕 십자가 정신이 아니며, 또 삼일절이 전하는 핏빛 절규와도 맞지 않습니다. </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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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p2"><br></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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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p2">주님의 십자가의 고난은 결국 부활의 새 생명을 가져왔고, 삼일절 만세운동은 마침내 해방을 불렀습니다. 여기에 바로 우리의 희망이 있습니다. 부디 이 사순절과 함께 우리의 가슴에도 주님의 큰 꿈이 잉태되길 바랍니다. 93년 전 삼일절에 품었던 그 간절한 해방의 꿈이 이 고난의 절기를 넘어 우리 모두에게 부활의 새로운 현실로 다가오기를 진심으로 기원합니다. </p>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