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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aragraph:p0001 -->
<p class="p1">한 청년이 자신의 고민을 해결하기 위해 주님께 나왔다가 오히려 더 큰 문제를 안고 돌아갔다는 얘깁니다(막 10:17-22). 아예 질문 자체를 없었던 것으로 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주님의 말씀을 따를 수도 없는 진퇴양난, 혹을 떼려다 혹 하나를 더 붙인 꼴이 된 것입니다. 사실 &lt;내가 영생을 얻으려면 무엇을 해야 합니까?&gt;하고 물었던 그 청년은 대단한 사람이었습니다. 어릴 때부터 율법을 철저하게 지킨 모범청년이었으며 주님도 그를 &lt;사랑스럽게&gt; 보셨다고 했고, 따라서 누가 봐도 그 청년이야말로 무난히 영생의 관문을 통과할 줄로 믿었습니다. 그러나 주님의 말씀은 뜻밖이었습니다. 아직도 &lt;한 가지 부족한 것&gt;이 있다며, &lt;가서 네 모든 재산을 팔아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라!&gt;고 하셨습니다. 당시 이를 지켜보던 사람들은 경악을 금치 못했을 것이고, 그렇다면 과연 누가 영생을 얻을 수 있단 말인가 하는 의구심에 사로잡히기도 했을 것입니다. 그 청년 역시 &lt;슬픈 표정을 지으며&gt; 주님을 떠났다고 하는데, 이야기가 이 대목에 이르면 오늘 우리로서도 혼란과 고민에 빠질 수밖에 없습니다. 누구도 그렇게 결단하기가 어려울 뿐 아니라 그 말씀의 타당성조차도 선뜻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기 때문입니다. 주님의 이 말씀을 실제 교회 현장에서 강조한다면 어떻게 될까요? 너무도 벅찬 나머지 비현실적이라며 부자 청년처럼 다 교회를 떠나고 말 것입니다. 그렇다면 도저히 따를 수도 없는 기준을 설정해 놓고 그것을 실천하지 못한다고 탓한다면 그 책임은 과연 어느 쪽에 있는 것일까요? 주님의 이 말씀의 참된 의미는 무엇일까요? 지적하신 &lt;한 가지 부족한 것&gt;이란 대체 무엇을 뜻할까요? </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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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p2"><br></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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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p2">주님이 여기서 문제 삼으신 것은 &lt;재물&gt; 그 자체가 아니라 그 청년의 재물과의 관계였습니다. 다시 말해서 그는 재물은 많이 가지고 있었으나 그것을 어떻게 사용해야 하는지는 모르고 있었고, 주님이 보실 때는 그게 바로 그의 &lt;부족한 점&gt;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는 어릴 때부터 &lt;살인하지 말라 간음하지 말라 …&gt;는 등의 율법은 잘 알고 있었지만 그것을 왜 지켜야 하는지, 무엇을 위해 지켜야 옳은지에 대해서는 모르고 있었습니다. 돈 많은 부모를 만나 어릴 때부터 부요하게 살며 자신만의 영생을 위해서는 열심을 부렸으나 곁에서 고통하고 있는 가난한 이웃들에 대해서는 무심했다는 것입니다. 이제 비로소 우리는 주님이 그 청년에게 지적하신 &lt;한 가지 부족한 것&gt;이 무엇을 뜻하는 지를 깨닫게 되었습니다. 가난으로 신음하고 있는 이웃들의 삶에 무관심한 것, 남을 위해 뭔가를 할 수 있는 능력이 있음에도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는 삶, 오로지 자신의 영생만을 추구하는 이기심, 이게 바로 그 청년의 치명적인 한계였다는 것입니다. 반면 &lt;선한 사마리아인&gt;은 달랐습니다. 비록 자기의 가진 것을 다 팔지는 않았지만 그 삶의 참된 관심과 가치가 이미 그 영혼이 지향하는 바를 잘 말해 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로써 부자 청년은 제 입으로 &lt;영생을 얻고자 한다&gt;며 운을 뗐다가 막상 선택의 기로에 서자 &lt;영생&gt;보다는 오히려 &lt;재물&gt;을 꽉 움켜쥠으로써 자기가 진정으로 원하는 게 무엇인가를 스스로 폭로한 셈인데, 이것은 오늘 우리에게도 어김없이 해당되는 말씀입니다. </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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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p2"><br></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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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p2">하나님의 나라는 더 이상 전쟁도 없고 가난도 없고 병마에 시달리지도 않고 고통의 신음소리도 존재하지 않는 세계의 영원한 표상입니다. 따라서 그런 나라를 위해서라면 자신의 모든 것을 바친다 해도 결코 &lt;아깝지 않다&gt;는 신앙고백과 더불어 실천적인 결단이 따르는 그곳에 진정한 영생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청년은 재물이 너무 아까워 &lt;슬픈 표정을 지으며&gt; 그 자리를 떠났는데 청년의 그런 고뇌는 오늘 우리 모두의 번민을 극명하게 대변합니다. 물론 주님도 이 일이 결코 쉽지 않다는 사실을 잘 알고 계셨습니다. 따라서 이 얘기의 백미는 역시 &lt;사람으로는 할 수 없으되 하나님으로서는 다 하실 수 있느니라&gt;(막 10:27) 하신 주님의 말씀에 있습니다. 무슨 뜻일까요? 그렇게 함으로써 영생을 얻는다(율법)는 게 아니라 영생 얻은 사람은 필히 그렇게 산다(은혜)는 것입니다.</p>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