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0903w: 히브리서 강해 1(히 1:1-3)
읽기 설정
미리보기 인용
복사되는 내용은 인용 정보와 미리보기 주소다.
현재 미리보기 주소:
2008년 9월 3일 수요성경공부 히브리서 강해 1
본문: 히 1:1-3
[1] 옛적에 선지자들로 여러 부분과 여러 모양으로 우리 조상들에게 말씀하신 하나님이 [2] 이 모든 날 마지막에 아들로 우리에게 말씀하셨으니 이 아들을 만유의 후사로 세우시고 또 저로 말미암아 모든 세계를 지으셨느니라 [3] 이는 하나님의 영광의 광채시요 그 본체의 형상이시라 그의 능력의 말씀으로 만물을 붙드시며 죄를 정결케 하는 일을 하시고 높은 곳에 계신 위엄의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오늘부터는 히브리서를 공부합니다. 히브리서는 흔히 수필처럼 시작해서 설교처럼 진행되고, 편지처럼 끝을 맺는다고 합니다. 그 형식이 그만큼 독특하다는 말입니다. 히브리서는 편지입니다만, 신약의 다른 편지 형식과는 다릅니다. 보통 다른 바울서신들을 보면, 발신자가 나오고, 수신인이 언급되며, 또 인사말이 나옵니다. 대개 신약의 서신들은 이런 형식입니다.
그런데 히브리서는 그렇지 않고, 발신자도 수신자도 인사말도 없이 본론으로 들어갑니다. 히브리서 앞 성경인 빌레몬서와 비교해 보겠습니다. 빌레몬서 1-3절을 봅니다: “[1] 그리스도 예수를 위하여 갇힌 자 된 바울과 및 형제 디모데는 우리의 사랑을 받는 자요 동역자인 빌레몬과 [2] 및 자매 압비아와 및 우리와 함께 군사된 아킵보와 네 집에 있는 교회에게 편지하노니 [3]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 좇아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있을지어다.” 구체적으로 거명되는 이름이 조금씩 다를 수 있습니다만 대개 이런 형식이 신약에 나오는 서신의 정형입니다. 발신자, 수신자 그리고 인사말이 나옵니다. 그런데 히브리서는 편지임에도 발신자, 수신자와 인사말이 없이 본론부터 나옵니다. 그래서 히브리서는 누가 쓴 편지인지, 누구에게 보낸 편지인지, 언제 어디서 쓴 편지인지 확인하기 어렵습니다.
우선 누가 히브리서를 썼을까요? 2-3세기에 살았고 253년 트라얀 황제 때 순교한 오리겐이라는 교부는 히브리서를 쓴 사람은 오직 하나님만 아신다고 했습니다. 처음부터 히브리서 저자는 누구인지를 확증하기 쉽지 않았습니다. 히브리서를 최초로 인용한 사람은 클레멘트 교부입니다. 이 사람은 96년에 죽은 사람인데, 그는 히브리서를 여러 번 인용하면서도 그 저자가 누구인지를 언급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154년에 순교한 폴리캅 교부, 그보다 앞선 150년에 순교한 저스틴 같은 교부는 히브리서의 저자가 바울이라고 했습니다. 3-4세기 사람인 유명한 교회사가 유세비우스도 히브리서는 바울의 14번째 서신이라고 했습니다. 4세기의 아타나시우스도 히브리서의 저자를 바울이라고 했고, 5세기 사람 제롬도 히브리서를 바울의 서신이라고 했습니다. 신약성경이 정경으로 확정된 것이 397년 제3차 카르타고 회의 때입니다. 이때도 히브리서를 바울의 서신으로 확정했습니다. 이 외에도 히브리서를 바나바 서신으로 본 사람은 터툴리안입니다. 루터는 아볼로 작품이라고 했고, 하르낙은 브리스길라와 아굴라로 보았고, 칼빈은 누가의 작품이라고 했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히브리서가 누구의 작품인지 모른다고 보면 되겠습니다.
그러면 수신자는 누구이겠습니까? 히브리서의 본래 제목은 고대 사본에 의하면 ‘히브리인들에게’입니다. 제목으로 봐서는 수신자가 분명 히브리인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히브리서는 예수를 믿는 히브리인 그러니까 유대인이면서 유대교를 신봉하다가 기독교로 개종한 사람들에게 보낸 서신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구체적으로 말씀드리면 초대교회 유대인 기독교도들은 유대교에서 개종했다는 이유로 유대교인들에게 핍박을 심하게 받았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을 중심으로 한 예루살렘 교회 성도들도 그랬습니다. 그들은 처음에 회당에서, 예루살렘 성전에서 모였는데 유대인들이 박해를 하니까 별도로 모이기 시작한 겁니다. 그래서 처음에는 기독교로 개종했다가 유대교 사회에서 살기 어렵고 두려움을 느끼니까 다시 유대교로 복귀하는 사람들고 있었습니다. 또한 로마 당국의 모진 핍박도 있었습니다. 이방인 기독교 신자들은 로마 당국으로부터 받던 박해가 전부였지만, 히브리인들이면서 기독교도였던 사람들은 같은 유대인들로부터도 박해를 당해야 했습니다. 그러니 이중 삼중의 고통을 그들은 당했습니다. 그래서 히브리인으로서 기독교인으로 산다는 것은 정말 쉽지 않았습니다. 히브리서는 바로 이러한 사람들, 곧 유대인의 신분으로 기독교도가 된 사람들을 격려하고 확고한 소망을 심어주기 위해 쓴 편지입니다.
그러므로 히브리서에는 심하게 흔들리고 있는 히브리인 성도들을 단속하는 표현이 많이 나옵니다. 2장 1절입니다: “그러므로 모든 들은 것을 우리가 더욱 간절히 삼갈지니 혹 흘러 떠내려 갈까 염려하노라.” 3장 12-13절도 마찬가지입니다: “[12] 형제들아 너희가 삼가 혹 너희 중에 누가 믿지 아니하는 악심을 품고 살아 계신 하나님에게서 떨어질까 염려할 것이요 [13] 오직 오늘이라 일컫는 동안에 매일 피차 권면하여 너희 중에 누구든지 죄의 유혹으로 강퍅케 됨을 면하라.” 6장 4절 이하도 그렇습니다: “[4] 한번 비췸을 얻고 하늘의 은사를 맛보고 성령에 참예한 바 되고 [5] 하나님의 선한 말씀과 내세의 능력을 맛보고 [6] 타락한 자들은 다시 새롭게 하여 회개케 할 수 없나니 이는 자기가 하나님의 아들을 다시 십자가에 못 박아 현저히 욕을 보임이라.” 그러니까 배교를 단속하는 말씀입니다. 한 마디로 거룩한 협박입니다. 10장 26-27절도 마찬가지입니다: “[26] 우리가 진리를 아는 지식을 받은 후 짐짓 죄를 범한즉 다시 속죄하는 제사가 없고 [27] 오직 무서운 마음으로 심판을 기다리는 것과 대적하는 자를 소멸할 맹렬한 불만 있으리라.” 이 모든 구절이 다 배교를 경계하는 구절입니다. 그러니 이런 말을 들었을 때 쉽사리 배교할 수 있었겠습니까. 10장 38-39절도 마찬가지입니다: “[38] 오직 나의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또한 뒤로 물러가면 내 마음이 저를 기뻐하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 [39] 우리는 뒤로 물러가 침륜에 빠질 자가 아니요 오직 영혼을 구원함에 이르는 믿음을 가진 자니라.” 뒤로 물러서지 말라는 당부입니다. 12장 3절입니다: “너희가 피곤하여 낙심치 않기 위하여 죄인들의 이같이 자기에게 거역한 일을 참으신 자를 생각하라.”
히브리서의 내용은 어떤 것입니까? 한 마디로 우리가 믿는 예수 그리스도는 크신 분이라고 합니다. 얼마나 크신 분이냐면 하여간 제일 크신 분이라고 합니다. 궁극적으로 위대하신 분, 유대인들이 숭배하는 구약의 선지자보다 크고, 천사보다 크며, 모세보다 더 큰 대제사장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라고 합니다. 유대인들이 크다고 생각하는 인물과 대비하여 선지자들보다, 모세보다, 천사보다 더 크신 분이 예수 그리스도니까, 그분을 떠나지 말라는 당부가 히브리서의 내용입니다. 히브리서는 신약의 레위기라고 할만큼 제사법에 관한 언급이 많습니다. 이 사실을 염두에 둘 때도 히브리서가 구약의 제사법에 익숙한 히브리인들에게 주어진 말씀임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구약의 제사법을 모르는 사람들에게 그것을 언급해봤자 별 소용이 없습니다. 그러나 히브리서의 수신자가 히브리인들이기에 제사법에 익숙하다는 전제를 가지고 구약의 제사제도에 관해 말씀을 많이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주님을 영원한 대제사장이라고 부릅니다.
대제사장은 어떤 사람입니까? 백성들을 대신해서 하나님을 뵙고 또 백성들의 죄를 처리하기 위해 하나님께 제사드리는 중보자입니다. 그런데 주님이 바로 그런 대제사장이시라는 겁니다. 짐승의 피가 아니라 자신의 피를 바쳐서 백성들의 죄를 대속하시고, 원수지간이었던 하나님과 사람을 화해시키신 완전한 중보자인 예수 그리스도는 따라서 천사보다, 선지자보다, 모세보다 크신 분이니 그를 굳게 붙잡고 배신하지 말라는 겁니다. 그래서 이 히브리서는 고난 중에 있는 성도들을 위로하고 격려하는 말씀이기에 따뜻하고 힘이 있으면서도 배교하는 성도들을 단속하는 말씀이기에 확신에 차있습니다.
원문 자료와 첨부
- 미디어: 원래 주소 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