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0212m: 다윗처럼(삼상 16:6-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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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2월 12일 주일낮예배
본문: 삼상 16:6-13
제목: 다윗처럼
[6] 그들이 오매 사무엘이 엘리압을 보고 마음에 이르기를 여호와의 기름 부으실 자가 과연 주님 앞에 있도다 하였더니 [7] 여호와께서 사무엘에게 이르시되 그의 용모와 키를 보지 말라 내가 이미 그를 버렸노라 내가 보는 것은 사람과 같지 아니하니 사람은 외모를 보거니와 나 여호와는 중심을 보느니라 하시더라 [8] 이새가 아비나답을 불러 사무엘 앞을 지나가게 하매 사무엘이 이르되 이도 여호와께서 택하지 아니하셨느니라 하니 [9] 이새가 삼마로 지나게 하매 사무엘이 이르되 이도 여호와께서 택하지 아니하셨느니라 하니라 [10] 이새가 그의 아들 일곱을 다 사무엘 앞으로 지나가게 하나 사무엘이 이새에게 이르되 여호와께서 이들을 택하지 아니하셨느니라 하고 [11] 또 사무엘이 이새에게 이르되 네 아들들이 다 여기 있느냐 이새가 이르되 아직 막내가 남았는데 그는 양을 지키나이다 사무엘이 이새에게 이르되 사람을 보내어 그를 데려오라 그가 여기 오기까지는 우리가 식사 자리에 앉지 아니하겠노라 [12] 이에 사람을 보내어 그를 데려오매 그의 빛이 붉고 눈이 빼어나고 얼굴이 아름답더라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이가 그니 일어나 기름을 부으라 하시는지라 [13] 사무엘이 기름 뿔병을 가져다가 그의 형제 중에서 그에게 부었더니 이 날 이후로 다윗이 여호와의 영에게 크게 감동되니라 사무엘이 떠나서 라마로 가니라
오늘의 주인공은 다윗입니다. 다윗은 지금으로부터 3000년 전 사람입니다. 주전 1077-1037년까지 이스라엘의 2대 왕으로 다스렸습니다. 사울과 다윗은 각각 40년씩 이스라엘을 통치했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의 초대 왕인 사울과 제2대 왕인 다윗에 대한 하나님의 평가는 엇갈립니다. 사도행전 13장 22절을 보면 다윗에 대한 하나님의 말씀이 나옵니다. “내가 이새의 아들 다윗을 만나니 내 마음에 맞는 사람이라 내 뜻을 다 이루리라.” 이보다 더한 칭찬은 없을 것 같습니다. ‘내 마음에 든다’는 것 말입니다. 그렇다면 초대 왕인 사울은 어떨 것 같습니까? 사무엘상 15장 11절을 보십시오. “내가 사울을 왕으로 세운 것을 후회하노니 그가 돌이켜서 나를 따르지 아니하며 내 명령을 행하지 아니하였음이니라.” 하나님은 사울을 왕으로 세운 것을 후회하신다고 하고, 다윗에 대해서는 내 마음에 든다고 하셨습니다. 사울과는 다르게 다윗은 어떻게 하나님의 마음에 드는 사람이 되었을까요? 우리는 사람 마음에 들기도 어렵습니다. 여러분 마음에 드는 사람 있습니까? 없지 않습니까? 사람들 마음에 들기도 힘든데 다윗은 어떻게 하나님의 마음에 꼭 들었을까요? 대단하지 않습니까?
우선 다윗은 자타가 공인하는 믿음의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믿음이 대단했습니다. 다윗처럼 재주가 뛰어난 사람도 없습니다. 원래 직업은 목동이었는데, 뛰어난 감성으로 시를 많이 쓴 시인이기도 했고, 연주에 훌륭한 음악가이기도 했습니다. 다윗처럼 전쟁을 많이 치른 사람도 없습니다. 군사들 제일 앞에서 용맹을 떨치며 수많은 전쟁을 치러낸 장군입니다. 나라가 갈기갈기 찢어져있었는데 하나로 모아 통일왕국을 이룩한 것으로 보아 그는 탁월한 지략의 정치가이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특출한 믿음의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어릴 때부터 믿음이 대단했습니다. 골리앗과의 한판 말입니다. 골리앗은 신장이 6규빗 한 뼘이라고 했습니다. 1규빗이 44.5cm에 한 뼘이니 거의 3m의 거인이었습니다. 골리앗이 입은 갑옷은 5천 세겔이니 176kg입니다. 그런 골리앗이 지휘하던 블레셋 군대는 천하무적이었습니다. 그런데 어린 다윗이 목동시절에 아버지 심부름으로 전쟁에 나간 형들의 안부를 묻기 위해 전장에 까지 왔다가 기가 막히는 광경을 목격합니다. 골리앗 앞에서 이스라엘 군대가 벌벌 떠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골리앗의 만행 앞에 이스라엘은 꼼짝 못하고 있었습니다. 골리앗이 온갖 말로 하나님을 모욕하고 있었습니다. 다윗은 의분이 들끓었습니다. 그러나 갑옷도 맞지 않고 방패도 맞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다윗은 갑옷도 칼도 창도 방패도 없이 물맷돌 5개만 갖고 골리앗 앞에 섭니다. 다윗이 골리앗 앞에서 외친 위대한 신앙고백을 들어보십시오. ‘너는 칼과 단창으로 내게 나오지만 나는 네가 모욕하는 만군의 여호와 하나님의 이름으로 나간다. 내가 너를 죽이고 온 땅이 하나님이 여전히 살아계심을 확인하게 하겠노라’고 합니다. 그러고 나서 물맷돌 하나를 날리는데, 그 조약돌이 골리앗의 이마에 박혔다고 합니다. 조약돌이 이마에 박히려면 얼마나 빠른 속도로 날라 가야 할까요? 박찬호 선수가 150km로 공을 던진다고 합니다. 포수의 글러브에 야구공이 0.45초 만에 들어간다고 합니다. 그런 박찬호 선수가 조약돌을 던진다 해도 상대의 이마에 박힐 수 없을 겁니다. 그런데 소년 다윗이 날린 조약돌이 적장 골리앗의 이마에 박혔습니다. 그때 골리앗의 이마에 박힌 돌은 조약돌이 아니라 조약돌처럼 똘똘 뭉친 다윗의 믿음이었습니다. 천하무적을 자랑하던 골리앗이 단 한 방에 쓰러졌습니다. 다윗은 달려가서 골리앗의 목을 쳤습니다. 이스라엘 전사에 빛나는 승리를 거두었습니다. 이것은 믿음의 승리였습니다. 이렇게 다윗은 어릴 때부터 적장 골리앗을 압도할 만큼 강력한 믿음을 가진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주님 마음에 든 겁니다. 그 믿음을 하나님이 높이 평가하신 겁니다. 오늘날 한국교회의 치명적 약점은 덩치는 골리앗 수준인데 믿음이 약하다는 겁니다. 이 사실을 목회자들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모른 체 합니다. 헌금만 내면 됩니다. 그러나 다윗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믿음이 없이는 절대 누구도 하나님 마음에 들 수 없습니다. 주님이 이 세상에 계실 때 칭찬한 사람은 다 믿음의 사람이었습니다. 로마 군대 백부장은 이스라엘 중에서 이만한 믿음을 가진 사람이 없다고 했습니다. 백부장의 종이 아픈데 예수님이 그러면 가자고 하시니 아닙니다. 여기서 말씀만 해도 될 것입니다. 그러자 주님이 감탄을 하셨습니다. 가나안 여인도 그렇습니다. 귀신들린 딸을 고쳐달라고 호소했습니다. 주님이 자녀의 떡을 개에게 주는 게 옳지 않다고 하셨습니다. 가나안 여인은 이방인이었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 사람은 이방인을 다 개 취급했습니다. 그때 그 여인이 하는 말이 개도 주인의 밥상에 떨어지는 부스러기를 먹지 않습니까 했습니다. 내가 개 맞습니다. 그러나 부스러기라도 주십시오 하자 주님이 감동하셨습니다. 믿음이 있어야 인정받고 은혜를 입으며 기적을 체험합니다.
뿐만 아니라 다윗은 성령충만한 사람이었습니다. 본문 마지막 절인 13절입니다. “사무엘이 기름 뿔병을 가져다가 그의 형제 중에서 그에게 부었더니 이 날 이후로 다윗이 여호와의 영에게 크게 감동되니라.” 14절도 보십시오. “여호와의 영이 사울에게서 떠나고 여호와께서 부리시는 악령이 그를 번뇌하게 한지라.” 사울에게서 하나님의 영이 떠나니 사울이 악령에 시달립니다. 어째서 다윗은 하나님의 마음에 들고 사울은 하나님의 버림을 받았는지가 극명하게 대비되는 대목입니다. 성령충만해야 합니다. 성령이 떠나고 악령이 나를 지배하면 망합니다. 성령 아니면 악령입니다. 완충지대는 없습니다. 지옥 아니면 천국입니다. 이 세상 모든 사람은 악령의 지배 아니면 성령의 지배입니다. 빈 집은 없습니다. 다윗은 어려서부터 남다른 성령의 감동으로 살았기에 수많은 영감 넘치는 시를 쓰고, 거기에 곡을 부쳐 수금을 연주했습니다. 그 연주가 얼마나 탁월했던지 사무엘상 16장 마지막 절을 보면 악령에 씌어 사울이 미쳐 날 뛸 때 다윗이 수금을 연주하면 정신이 온전해졌다고 합니다. 다윗이 일평생 가장 두려워 한 게 무엇이었을까요? 전쟁이었습니까? 쿠데타였습니까? 자연재해나 불치병이었습니까? 성령이 자기를 떠나실까를 가장 두려워했습니다. 성령이 나를 떠나시면 나는 끝장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다윗의 두려움은 이것 하나였습니다. 지금도 이스라엘 사람은 다윗을 국부로 생각합니다. 이스라엘 역사상 최고의 성군으로 꼽습니다. 그렇지만 다윗의 생애를 보면 완전한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다윗도 천추의 한이 될 허물을 남겼습니다. 충직한 자기의 부하였던 우리야의 아내를 빼앗고 고의로 그를 최전방으로 내보내 전사하게 한 악한 짓을 저질렀습니다. 간음과 살인을 동시에 범했습니다. 자기와 동침한 밧세바가 임신을 하니 전쟁터에 있던 그녀의 남편 우리야를 불러들여 자기 아내와 잠자리를 갖게 하려고 작전을 짰는데, 그게 실패로 돌아갑니다. 충직한 우리야가 자기 집으로 들어가지 않습니다. 다급해진 다윗이 요압 장군에게 우리야를 최전방으로 내보내라고 명을 내려 전사를 가장한 살인을 행합니다. 그때 하나님이 나단 선지자를 다윗에게 보냅니다. 그때 다윗은 나단의 경고와 고발을 듣고 지독하게 회개합니다. 시편 51편이 그때 지은 참회의 시입니다. “하나님이여 주의 인자를 따라 내게 은혜를 베푸시며 주의 많은 긍휼을 따라 내 죄악을 지워 주소서 [2] 나의 죄악을 말갛게 씻으시며 나의 죄를 깨끗이 제하소서 … [10] 하나님이여 내 속에 정한 마음을 창조하시고 내 안에 정직한 영을 새롭게 하소서 ….” 성령이 떠났을 때 사울의 최후가 어떠했는지 누구보다 곁에서 다윗이 지켜보았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참회의 기도를 하고 있는 겁니다. 여러분, 올해도 성령을 훼방하거나 근심시키거나 소멸하지 마십시오. 성령과의 관계가 건강해야 합니다. 그래야 여러분이 주님 마음에 듭니다. 주님 마음에 들어야 은혜를 입습니다.
다윗은 하나님의 성전을 너무도 사모하고 사랑했던 사람이었습니다. 사무엘하 6장을 보면 오벧에돔의 집에서 하나님의 법궤를 예루살렘으로 옮기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날 다윗은 왕의 체통을 다 잊고 법궤 앞에서 정신 없이 춤을 추다가 옷까지 다 벗겨졌습니다. 왕비인 미갈이 다윗을 비웃습니다. 사무엘하 6장 20절입니다. “다윗이 자기의 가족에게 축복하러 돌아오매 사울의 딸 미갈이 나와서 다윗을 맞으며 이르되 이스라엘 왕이 오늘 어떻게 영화로우신지 방탕한 자가 염치 없이 자기의 몸을 드러내는 것처럼 오늘 그의 신복의 계집종의 눈앞에서 몸을 드러내셨도다 하니.” 그러자 다윗은 이렇게 말합니다. 21절입니다. “다윗이 미갈에게 이르되 이는 여호와 앞에서 한 것이니라 그가 네 아버지와 그의 온 집을 버리시고 나를 택하사 나를 여호와의 백성 이스라엘의 주권자로 삼으셨으니 내가 여호와 앞에서 뛰놀리라.” 하나님은 미갈이 아니라 다윗을 인정하셨습니다. 그 다음 장인 사무엘하 7장을 보면 다윗은 이렇게 말합니다. 2절입니다. “왕이 선지자 나단에게 이르되 볼지어다 나는 백향목 궁에 살거늘 하나님의 궤는 휘장 가운데에 있도다.” 나는 백향목으로 지은 궁에 사는데, 하나님의 법궤는 저 천막 속에 있다는 겁니다. 그래서 다윗의 꿈은 성전을 짓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 뜻은 가상하나 너는 적합하지 않다고 하십니다. 나라를 부흥시키느라 전쟁을 많이 치루었고 그 과정에서 네 손에는 피가 너무 많이 묻었다는 겁니다. 그래서 그 피 묻은 손으로 성전을 짓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하십니다. 하지만 네 아들을 통해 성전을 짓게 하겠노라 하십니다. 그런데도 다윗은 견딜 수 없어 아들이 성전을 훌륭하게 짓도록 모든 자재를 준비했습니다. 역대상 22장 14절에 의하면 다윗이 준비한 성전 자재가 나오는데 그 목록이 어마어마합니다. “내가 환난 중에 여호와의 성전을 위하여 금 십만 달란트와 은 백만 달란트와 놋과 철을 그 무게를 달 수 없을 만큼 심히 많이 준비하였고 또 재목과 돌을 준비하였으나 너는 더할 것이며.” 이렇게 많이 준비해 놓아서 솔로몬이 성전을 지을 때는 은과 금을 벽돌처럼 썼다고 했습니다. 다윗이 시편 27편에서 고백하는 것을 들어보십시오. 4절입니다. “내가 여호와께 바라는 한 가지 일 그것을 구하리니 곧 내가 내 평생에 여호와의 집에 살면서 여호와의 아름다움을 바라보며 그의 성전에서 사모하는 그것이라.” 23편 6절에서도 “내 평생에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반드시 나를 따르리니 내가 여호와의 집에 영원히 살리로다” 라고 합니다. 시편 84편에서는 “[1] 만군의 여호와여 주의 장막이 어찌 그리 사랑스러운지요 [2] 내 영혼이 여호와의 궁정을 사모하여 쇠약함이여 내 마음과 육체가 살아 계시는 하나님께 부르짖나이다”고 했습니다. 10절에서는 “주의 궁정에서의 한 날이 다른 곳에서의 천 날보다 나은즉 악인의 장막에 사는 것보다 내 하나님의 성전 문지기로 있는 것이 좋사오니” 라고 고백했습니다. 다윗은 시편 122편을 이렇게 시작합니다. “사람이 내게 말하기를 여호와의 집에 올라가자 할 때에 내가 기뻐하였도다.” 다윗은 성전에 올라가자고 할 때 너무 기쁘다고 했습니다. 여러분은 오늘 어떤 기분으로 성전에 나오셨습니까? 다윗은 시편 122편 6절에서 “예루살렘을 위하여 평안을 구하라 예루살렘을 사랑하는 자는 형통하리로다.” 성전을 사랑하면 형통한다고 했습니다. 마지못해 성전에 끌려나온 사람들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습니다. 목사가 볼 때도 딱한데 하나님이 보실 때는 오죽하겠습니까? 부디 성전을 사랑하시고 주님의 교회를 사랑하십시오. 주님이 그런 사람을 마음에 흡족해 하십니다. 하나님 마음에 들어야 은혜를 입고 복을 입습니다. 다윗이 우리에게 큰 깨달음과 도전이 되길 기원합니다.
설교영상보기: http://tvpot.daum.net/clip/ClipViewByVid.do?vid=JaQDHkpQyM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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