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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 "부러진 화살과 드레퓌스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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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aragraph:p0001 -->
<p class="p1">&lt;재판장님은 100여 년 전 프랑스 군사재판에서 무고한 사람을 간첩으로 몰아간 드레퓌스 사건을 알고 계실 겁니다. 당시 재판부는 진범이 잡혔는데도 당국의 권위를 유지하기 위해 그 진실을 은폐한 채 드레퓌스에게 종신형을 선고했지요. 그런데 100년도 더 지난 21세기 대한민국 사법부에서 이보다 더 어처구니없는 억지 재판이 벌어지고 있습니다&gt;(영화 ‘부러진 화살’에서 박준 변호사의 최후변론).</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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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p2">&lt;드레퓌스 사건&gt;이란 1894년 10월 31일 유대계 프랑스군 포병 대위 드레퓌스가 중요한 군사기밀을 독일 측에 팔았다는 혐의로 체포되어 비공개 군사재판에서 반역죄로 종신형을 선고받은 사건을 말합니다. 유출된 문건에서 발견된 암호명 &lt;D&gt;가 드레퓌스의 첫 철자와 같다는 것과 필적이 비슷하다는 것 외에는 다른 증거가 없었음에도 유대인에 대한 편견에 사로잡힌 당시 재판부가 그를 간첩으로 몰아간 것입니다. 그런데 그로부터 2년 뒤 조르쥬 피카르 중령이 참모본부 정보국에서 또 다른 간첩 사건을 조사하다 그 사건의 진범이 드레퓌스가 아니라 에스테라리 라는 사실을 알고 이를 즉각 상부에 보고하지만 묵상 당하고 맙니다. 군 당국은 자신들의 실수를 덮으려고 철저하게 진실을 은폐했고, 거기에 반유대 세력인 프랑스 가톨릭교회와 보수 언론까지 가세 해 드레퓌스와 유대인 전체를 싸잡아 비난하며 매도했습니다. 그때 누구보다 앞장서서 드레퓌스 구명운동을 펼친 사람이 바로 유명 작가였던 에밀 졸라였습니다. 그는 진보적인 문학신문 &lt;로로르&gt;(여명)지에 &lt;나는 고발한다!&gt;는 제목으로 프랑스 대통령 펠릭스 포르에게 보내는 공개서한을 기고해 그 사건을 세상에 널리 폭로했는데 곧 여론이 들끓기 시작하면서 학생, 작가, 예술가 등 지식인들을 중심으로 군부에 대한 비난과 비판이 거세게 일어났습니다. 진범을 잡아다 바쳐도 꿈쩍하지 않던 군 재판부가 결국 1904년 드레퓌스 사건의 재심요구를 받아드렸고 1906년에는  마침내 무죄 판결이 내려지면서 드레퓌스의 복권과 군복귀, 진급까지도 이뤄지지만 정작 그는 지난 수 년 간의 과도한 고문 후유증으로 곧 사망하고 맙니다.</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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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p2">&lt;부러진 화살&gt;이 11일 현재 누적 관객 수 3백만 돌파를 눈앞에 두고 있다고 합니다. 놀라운 일입니다. &lt;부러진 화살&gt;의 이런 흥행 대박은 무엇을 뜻할까요? 영화의 팩트 논란은 더 이상 의미가 없습니다. 지금 나타나고 있는 &lt;부러진 화살&gt;에 대한 국민적 반향은 결코 사실과 허구, 진실과 거짓, 정의와 불의, 유죄와 무죄의 문제가 아닙니다. 영화가 어느 정도는 과장되고 극화되었을 것이라는 사실도 모를 사람이 없고, 영화의 완성도가 뛰어나서도 아닙니다. 그렇다고 &lt;부러진 화살&gt;의 주인공인 김명호 교수를 영웅으로 만들고 싶어서도 아닙니다. 사실 저만해도 개인적으로는 석궁 교수 김명호야 말로 가장 싫은 캐릭터입니다. 도무지 말이 안통하고 온갖 독설로 자기만 옳다고 주장하는 과격한 꼴통입니다. 또 누가 봐도 그의 행위 역시 결코 정당한 게 아니었습니다. 실제 판사를 쐈건 안 쐈건 석궁 연습을 했고, 석궁을 들고 판사 앞에 나타나 그를 위협했다는 것은 절대 옳은 저항권 발동이 아니었습니다. 그럼에도 &lt;부러진 화살&gt;이 이처럼 국민 정서에 신속하게 스며든 이유는 대체 뭘까요?</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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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p2">&lt;부러진 화살&gt;의 진정한 흥행 동인은 그게 &lt;도가니&gt;처럼 사실에 기초한 영화라는 데 있는 게 아니라 현재 사법부에 대한 국민적 분노와 저항이라는 데 그 본질이 있습니다. 국민들이 사법부를 심판하고 있는 것입니다. 국민들은 그동안 사법부의 온갖 반사법적 행태들을 봐왔고, 또 무참하게 당해왔습니다. 전관예우, 법조비리, 무전유죄 유전무죄의 관행적 판결, 상식과 국민의 법 감정을 무시한 자의적 판결, 무성의하고 무책임하고 오만한 횡포 수준의 재판 등으로 일그러진 사법부를 지금 국민들이 환멸하며 경멸하고 있는 겁니다. </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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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p2"><br></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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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p2">그런데도 사법부는 그동안 강자와 권력 앞에서 얼마나 약자들을 보호하고 사회 정의를 제대로 수호해 왔는지를 자성하고 반성하기는커녕 구차하고 치졸한 변명만 늘어놓고 있습니다. 마치 영화 속 김 교수가 무죄를 주장하듯 사법부도 무죄라고 주장하고 싶은 유혹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사법부의 권력은 그 집단에 당연히 부여되는 무소불위의 특권이 아니라 국민들의 신뢰와 존경을 통해서만 획득되는 것입니다. 국민들의 사법부 재판, 이게 바로 지금 &lt;부러진 화살&gt;을 통해 던지는 통렬한 메시지입니다. 19세기 프랑스의 드레퓌스 재판부도 국민들의 강력한 저항에 굴복해 결국은 다 물러났습니다. 영화 속 피고인의 마지막 막말이 지금도 뇌리에 맴돕니다.</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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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p2"><br></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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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p2">&lt;이게 재판입니까? 개판이지!&gt;</p>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