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0831m: 어느 포도원 주인의 비상식(마 20: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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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8월 31일 주일낮예배
본문: 마태 20:1-16
제목: 어느 포도원 주인의 비상식
[1] 천국은 마치 품꾼을 얻어 포도원에 들여 보내려고 이른 아침에 나간 집 주인과 같으니 [2] 저가 하루 한 데나리온씩 품꾼들과 약속하여 포도원에 들여 보내고 [3] 또 제삼시에 나가 보니 장터에 놀고 섰는 사람들이 또 있는지라 [4] 저희에게 이르되 너희도 포도원에 들어가라 내가 너희에게 상당하게 주리라 하니 저희가 가고 [5] 제 육 시와 제 구 시에 또 나가 그와 같이 하고 [6] 제 십일 시에도 나가 보니 섰는 사람들이 또 있는지라 [7] 가로되 너희는 어찌하여 종일토록 놀고 여기 섰느뇨 가로되 우리를 품꾼으로 쓰는 이가 없음이니이다 가로되 너희도 포도원에 들어가라 하니라 [8] 저물매 포도원 주인이 청지기에게 이르되 품꾼들을 불러 나중 온 자로부터 시작하여 먼저 온 자까지 삯을 주라 하니 [9] 제 십일 시에 온 자들이 와서 한 데나리온씩을 받거늘 [10] 먼저 온 자들이 와서 더 받을 줄 알았더니 저희도 한 데나리온씩 받은지라 [11] 받은 후 집 주인을 원망하여 가로되 [12] 나중 온 이 사람들은 한 시간만 일하였거늘 저희를 종일 수고와 더위를 견딘 우리와 같게 하였나이다 [13] 주인이 그 중의 한 사람에게 대답하여 가로되 친구여 내가 네게 잘못한 것이 없노라 네가 나와 한 데나리온의 약속을 하지 아니하였느냐 [14] 네 것이나 가지고 가라 나중 온 이 사람에게 너와 같이 주는 것이 내 뜻이니라 [15] 내 것을 가지고 내 뜻대로 할 것이 아니냐 내가 선하므로 네가 악하게 보느냐 [16] 이와 같이 나중 된 자로서 먼저 되고 먼저 된 자로서 나중 되리라
요즘 시중에 포도가 많이 나옵니다. 포도원에 일손이 많이 필요했던 이때 쯤 이었던 것 같습니다. 어느 포도원 주인이 일꾼들을 구하기 위해 이른 새벽에 장터로 갔습니다. 요즘도 인력시장이 있습니다. 모란시장이나 복정동 사거리에 가면 일용직 노동자들이 많습니다. 주님 시대 팔레스틴도 그랬습니다. 본문의 포도원 주인도 일꾼들을 구하기 위해 새벽시장에 나갔습니다. 일당 한 데나리온을 약속하고 품꾼들을 채용했습니다. 그런데 이 주인은 새벽에만 한 차례 고용한 것이 아닙니다. 우리 시간으로 말하면 오전 9시, 12시, 오후 3시에도 나가서 품꾼들을 고용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이상하게 생각하게 되는 부분은 오후 5시에도 나가서 사람들을 고용했습니다. 당시에 우리 시간으로 오후 6시면 일과가 종료됩니다. 그러니까 일과 종료 1시간 전에도 시장에 나가 사람을 고용했습니다. 6-7절입니다: “[6] 제 십일 시에도 나가 보니 섰는 사람들이 또 있는지라 [7] 가로되 너희는 어찌하여 종일토록 놀고 여기 섰느뇨 가로되 우리를 품꾼으로 쓰는 이가 없음이니이다 가로되 너희도 포도원에 들어가라 하니라.” 참으로 비상식적입니다.
어쨌든 그로부터 1시간이 지나 하루 일과가 종료되고 품꾼들에게 일당을 지불할 시간입니다. 그런데 주인은 여기서 또 한 번 비상식적인 행위를 합니다. 맨 나중에 온 사람들, 그러니까 1시간 일한 사람들부터 품삯을 주는데 한 데나리온을 줍니다. 본문에는 이 사람들과 구체적인 계약내용이 없습니다. 새벽에 고용된 사람들과는 하루 한 데나리온을 약속했습니다. 어쨌든 맨 나중에 고용된 사람들에게 한 데나리온씩 주었습니다. 그러자 처음에 고용된 사람들은 신이 났습니다. 당연히 한 데나리온 이상을 받으리라 생각한 것입니다. 그런데 그들의 기대와 예상을 깨고 그들에게도 똑같이 한 데나리온을 주었습니다. 여기서 이 사건이 노동문제와 사회문제가 됩니다. 그야말로 노사문제를 다룬 한 편의 드라마같습니다.
우선 새벽부터 와서 일한 사람들의 항의입니다: “나중 온 이 사람들은 한 시간만 일하였거늘 저희를 종일 수고와 더위를 견딘 우리와 같게 하였나이다”(12절). 이유있는 항의입니다. 주인이 형평의 원칙을 깼다는 겁니다. 적게 일한 사람이나 많이 일한 사람이나 동일하게 대우했다는 겁니다. 그럼에도 주인은 먼저 온 품꾼들의 항의을 일축합니다. 13-15절입니다: “[13] 주인이 그 중의 한 사람에게 대답하여 가로되 친구여 내가 네게 잘못한 것이 없노라 네가 나와 한 데나리온의 약속을 하지 아니하였느냐 [14] 네 것이나 가지고 가라 나중 온 이 사람에게 너와 같이 주는 것이 내 뜻이니라 [15] 내 것을 가지고 내 뜻대로 할 것이 아니냐 내가 선하므로 네가 악하게 보느냐.”
주인의 이 발언이 옳습니까? 사회정의의 관점에서 타당합니까? 어떤 사람들은 주인의 이런 태도를 두둔합니다. 소유권이란 주권과 함께 신성불가침이란 겁니다. 자기 것으로 자기 맘대로 하는 데에는 이의를 제기할 수 없다고 봅니다. 어떤 이들은 한 시간밖에 일하지 않은 사람은 비록 한 시간 일했지만 하루 종일 일한 사람보다 더 능률을 많이 올렸다고 합니다. 이것은 그럴 듯하지만 억지스러운 해석입니다. 어쨌든 주인은 ‘내 것을 가지고 내 맘대로 못하느냐?’고 말합니다. 사회주의자들이나 진보적인 사람들은 이런 주인의 태도나 자기변호야 말로 전형적인 자본주의적 발상이라고 욕합니다. 아무리 자기 것이라 해도 자기 맘대로 배분하면 안 된다는 겁니다. 분배균등, 기회균등의 원칙을 존중하라는 겁니다. 따라서 우리는 오늘 이 비유에서 사회문제나 노사문제의 해법을 찾으려고 한다면 실패합니다. 오늘 본문은 그런 문제에 대한 해답을 주려고 하지 않습니다. 이 비유가 말씀하는 본래 메시지를 놓치고 맙니다.
이 비유는 이것을 말씀하고자 합니다. 1절입니다: “천국은 마치 품꾼을 얻어 포도원에 들여 보내려고 이른 아침에 나간 집 주인과 같으니.” 천국에 관한 비유입니다. 이 비유에서 세상 질서의 원리를 찾으려고 하면 안 됩니다. 천국에 대한 말씀입니다. 세상과는 다른 천국의 새 질서에 대해 교훈하는 말씀입니다. 1절의 말씀처럼 천국 비유입니다. 어떻게 천국을 갈 수 있느냐에 대한 답입니다. 여기서 인간적인 논리나 세상적 상식으로는 해석할 수 없습니다. 어거스틴도 이 비유를 해석하기를 주인은 주님이시고, 새벽에 부름을 받은 사람은 모태신자이고, 9시에 부름 받은 사람들은 어릴 때 예수를 믿은 신자이고, 정오에 부름 받은 사람들은 청년 때에 부름을 받은 사람이고, 오후 3시에 부름을 받은 사람들은 노년에 예수를 믿은 사람들이고, 오후 5시에 부름을 받은 사람들은 죽기 직전에 예수를 믿은 사람들이라고 보았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동일하게 한 데나리온을 받았다는 것은 구원은 노동의 댓가가 아니라 주인의 은혜라는 사실을 강조하기 위해 주님이 이런 비유를 했다고 보았습니다.
천국을 간다는 것은 댓가나 보상이 아니라, 주인의 일방적인 선심이요 은혜입니다. 그래서 새벽부터 일한 사람이나 종료 한 시간 전에 일한 사람이나 똑같이 한 데나리온을 받는 것입니다. 예수님 십자가 한 편에 있던 강도도 천국에 갔습니다. 새벽부터 믿은 사람이나 죽기 직전에 믿은 사람이나 다 천국에 갑니다. 구원은 선물이기 때문입니다. 포도원 주인의 일방적인 선심의 결과가 천국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 앞 19장에는 이런 내용이 나옵니다. 27절입니다: “이에 베드로가 대답하여 가로되 보소서 우리가 모든 것을 버리고 주를 좇았사오니 그런즉 우리가 무엇을 얻으리이까.” 이것은 무슨 질문입니까? 베드로가 주님께 무엇을 묻고 있습니까? 자신들의 결단과 희생에 대한 보상을 묻고 있습니다. 우리는 원래 어부들인데 주님을 만나 다 버리고 주님을 좇아 여기까지 왔는데, 앞으로 어떻게 보상할 것입니까? 라는 질문입니다. 이어지는 예수님의 대답입니다: “[28]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세상이 새롭게 되어 인자가 자기 영광의 보좌에 앉을 때에 나를 좇는 너희도 열 두 보좌에 앉아 이스라엘 열두 지파를 심판하리라 [29] 또 내 이름을 위하여 집이나 형제나 자매나 부모나 자식이나 전토를 버린 자마다 여러 배를 받고 또 영생을 상속하리라.” 주님에 대한 봉사나 희생에는 반드시 응분의 보상이 있고, 그 보상에는 정도의 차등이 있다는 겁니다. 그 희생의 질이나 양에 따라 먼저 된 자가 나중 될 수도, 나중 된 자가 먼저 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구원은 그렇지 않습니다. 새벽부터 일한 사람이나 한 시간 일한 사람이나 천국은 갑니다. 그러나 일단 천국 가서 누릴 영광에는 차이가 있습니다. 주님의 제자 같은 사람들은 최고의 영예를 누립니다. 이것은 일단 천국에 들어가서 누릴 영광이요 상급입니다. 거기에는 차등이 있습니다. 주님을 위해 희생 봉사한 만큼 주님이 응분의 보상을 하십니다. 그러나 천국에 들어가는 것만큼은 차등이 없습니다. 주님의 제자의 사역에 걸 맞는 영예를 누리고, 겨우 예수 믿다가 아무런 희생 봉사 없이 죽은 사람은 거기에 걸 맞는 영예를 누린다는 겁니다.
오늘 본문은 상급, 천국에 가서 누릴 영광에 대한 비유가 아니라 구원에 대한, 천국에 대한 비유입니다. 어떤 사람이 천국갈 수 있느냐면, 무조건 포도원 주인이 택한 사람이면 됩니다. 새벽이든 죽기 직전이든 주인이 부른 사람이면 무조건 천국 갑니다. 그 사실을 새벽에 부름 받은 사람과 오후 5시에 부름 받은 사람을 대비시키면서 주님이 확실하게 우리에게 인식시키기 위한 목적으로 말씀하신 것이 포도원 비유입니다. 그러나 이것이 전부가 아니라 19장도 있다는 것을 기억하셔야 합니다. 천국은 부름만 받으면 가지만, 일단 천국에 가서 누릴 영광은 다르다는 사실을 기억하십시다. 마태복음 20장과 19장의 내용을 구분하십시다. 오늘 본문 20장의 말씀은 천국에 대한 그 어떤 말씀보다 명쾌하게 천국의 실체를 보여주는 말씀입니다. 부디 천국에 대한 감사로 후반기를 심지 굳게 사시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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