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교회 아카이브

피카소의 눈으로 세상보기

베이징 올림픽의 성화도 꺼지고, 아이들의 방학도 휴가도, 지난 어느 해 여름보다 뜨거웠던 8월도 오늘로서 막을 내립니다. 아직 한낮의 볕은 강렬하지만 계절은 어느새 더위에 지친 심신을 다독이며 가을을 채비하고 있습니다.

저는 어제, 이미 작년 휴가 때 서울 시립미술관 피카소전에서 사 놓았던 <붉은 팔걸이 의자>(1930) 복제품을 목양실 벽에 걸었습니다.
여러분들은 피카소의 그림을 보며 무슨 생각을 하십니까? 어쩌면 피카소는 우리에게 가장 대중적이면서도 또 가장 난해한 화가일지 모릅니다. 그러나 아주 복잡하다고 생각했던 추리문제의 해결이 뜻밖에도 가장 단순한 상식에서 시작하듯 피카소의 그림 또한 그 열쇠가 아주 단순한데 있을지도 모릅니다.
이를테면 오직 한 방향에서만 바라보던 대상을 앞에서도 보고, 뒤에서도 보고, 위에서, 아래서도 보는 것, 그리고 그 모든 시각에 비친 상을 화가적인 영감으로 평면에 재조합한 것, 그것이 바로 피카소의 그림입니다.
사물을 360도로 관찰하고 이를 하나의 화폭에 동시적으로 구현하므로 해체된 몸이 각각 부위별로 따로 노는 듯이 보이는 극단한 기형과 비대칭, 그러나 언젠가 EBS 교육방송에서 보여준 카메라 조작은 놀라웠습니다.
피카소의 1937년 작인 <눈물 흘린 여인>을 카메라 각도를 조금씩 달리해가며 마치 퍼즐을 맞추듯 재구성하자 놀랍게도 그 복잡하던 추상화가 점점 사실화에 가까운 모습으로 변해가는 것이었습니다.
사람들이 흔히 피카소를 천재라고 하는 이유는 그런 분석적이고 논리적인 변형을 통해 사물의 또 다른 면모를 보여주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는 변하지 않는 진리를 표현하기 위해, 겉모습은 보는 각도에 따라 다 다르지만 사물의 본질은 결코 변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그림을 통해 증명하고 싶었던 것입니다.
<나는 창조하지 않는다. 다만 발견할 뿐이다.>고 말한 그는 어떤 대상이든 한 위치에서만 고정된 눈으로 바라본다면 그것은 부분적인 진실일 뿐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늘상 내 눈에 비치는 모습에 대한 고정관념을 깨고 그 이면의 아름다움과 진실까지도 발견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게 바로 피카소의 세상 바라보는 방식입니다.
피카소의 그림들은 확실히 풍경화나 정물화에 비해 아름답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그림이 매력적인 이유는 이처럼 대단히 지적이고 논리적이며 다각적이기 때문입니다.

요즘 들어 부쩍 세상이 우리를 바라보는 시각이 심상치 않습니다.
휴가기간 여기저기를 다니는 동안 그런 세상 분위기를 피부로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이제 우리도 좀 더 다양한 눈으로 세상을 바라봐야 하지 않을까요?
대상을 해체하고 날카롭게 분석하면서도 결코 놓치지 않는 서정성과 부드러움을 지닌 피카소의 눈은 어떨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