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의 심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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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돌 위에 떨어지는 자는 깨지겠고 이 돌이 사람 위에 떨어지면 그를 가루로 만들어 흩으리라>(마 21:44).
고대 바벨론 제국의 느브갓네살 왕이라고 하면 페르시아 제국이 등장하기 전까지만 해도 그 존재감이 대단했던 무적불패의 제왕이었습니다. 그런 그가 한창 돌풍을 일으키며 위엄을 떨치던 어느 날 난해한 꿈 하나를 꾸고 그만 마음에 번민이 가득해 통 잠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승리감에 도취된 겉모습과는 달리 그도 늘 어떤 깊은 불안감에 시달리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렇습니다. 사업에 성공하고, 학문적인 성취를 이루고, 권력을 누리고, 명예를 얻은 사람들의 내면에도 미처 남이 알지 못하는 불안과 고뇌가 숨겨져 있게 마련입니다. 느브갓네살 왕은 곧 전국의 용하다는 점쟁이들과 술사들을 다 불러 모아 자기가 꾼 꿈을 알아맞히고 또 해몽할 것을 명했습니다. 그러나 모두가 실패하고, 결국 그 꿈과 거기에 담긴 의미를 명쾌하게 풀어 낸 사람은 히브리 청년 다니엘이었습니다.
당시 느브갓네살 왕이 꾼 꿈은 금, 은, 놋, 쇠, 진흙 등으로 만들어진 거대한 신상이 어디에선가 날아온 돌에 맞아 무참하게 부서지는 내용이었습니다(단 2:31-35). 그리고 그것은 곧 누구도 감히 대적할 수 없을 것 같은 강대하고 융성한 제국이지만 꿈속의 돌처럼 어느 날 하나님의 손이 나타나 흔적도 없이 부숴버릴 수 있다는 뜻이었습니다. 말하자면 모두가 성공과 출세에 정신이 없을 때, 승리의 술잔에 취해 있을 때, 모두가 거대한 제국의 신상을 경배하고 있을 때 다니엘은 그 모든 영화와 성공 신화가 얼마가지 못해 허망하게 다 무너지고 말 것이라 예언한 것입니다.
머리는 온통 금에 대한 생각으로 가득 차 있고, 가슴과 팔은 사람들의 시선을 끌기에 충분한 은으로 장식되어 있으며, 배는 여러 가지를 혼합해 만든 놋쇠처럼 온갖 탐욕으로 채워져 있고, 다리는 남을 짓밟는 쇠로 만들어져 강한 듯 보이나 실은 진흙이 절반이나 섞여 있어서 쉽게 부서질 수 있다는 사실도 모른 채 살아가는 인생, 역사, 민족은 아무리 한 때 사람들의 부러움을 산다 해도 졸지에 날아온 심판의 돌에 맞아 언제든 산산조각이 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실제 우리 주변에는 성공과 영예의 정점에서 졸지에 패망의 나락으로 추락한 개인이나 집단이 얼마든지 있습니다. 모든 일이 다 잘 되어 가는 듯한 순간 그동안 감추어졌던 추악함이 드러나면서 갑자기 허물어지는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경고를 무시한 사람들이 언젠가는 반드시 겪게 될 비극이며, <왕의 진미와 포도주가 주는> 안이함과 달콤함에 빠져 사는 사람들이라면 누구도 피할 수 없는 하나님의 엄중한 심판입니다. 하나님은 가짜 행복과 성공을 약속하는 신상은 반드시 부숴버리십니다.
그렇다면 다니엘은 대체 어떤 사람이었기에 바벨론의 영화 그 절정에서 도리어 제국의 패망을 본 것일까요? 그는 비록 적국에 잡혀와 특별한 배려와 관리 하에 있었지만 <왕의 음식과 포도주로 자신을 더럽히지 아니하고>(단 1:8), 오직 채식만을 고집하며 끝까지 믿음의 정절을 지킨 사람이었습니다. 다니엘이야말로 어떤 극적인 사건만이 아니라 일상의 평범한 삶 속에서 무엇을 먹고 마시느냐에 따라서도 자신의 영혼의 불꽃이 일순간 꺼질 수 있다는 사실을 잘 안 사람이었고, 그런 하찮은 것에 몸과 마음을 내주게 되면 결국은 영적인 분별력마저도 잃어버린다는 사실을 똑똑히 인식하고 있었던 사람이었습니다.
반면 오늘 우리들은 너무도 자기 편리한대로 먹고 마시는 바벨론적 생활에 깊이 취해 사는 것은 아닌지 반성해 볼 일이며, 그게 바로 다니엘처럼 <단단히 뜻을 정하는>(단 1:8) 결단이 요구되는 대목이기도 합니다.
아무튼 저는 요즘 권력의 측근들과 여당 법원 재벌 등 소위 그동안 왕의 진미와 포도주가 주는 안이함과 달콤함에 빠져 살던 여러 세력들의 흔들리거나 무너지는 모습들을 보며 바벨론 시대의 <돌의 심판>을 떠올립니다.
<… 손대지 아니한 돌이 나와 신상의 쇠와 진흙의 발을 쳐서 부서뜨리매 쇠와 진흙과 놋과 은과 금이 다 부서져 여름 타작마당의 겨 같이 되어 바람에 불려 …>(단 2:34-3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