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완서님, 천국에서 행복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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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해 이맘때쯤 하얀 눈이 오던 주말 아침, 소설가 박완서님이 돌아 올 수 없는 먼 길을 떠났습니다. 유난히 추웠던 작년 겨울의 혹한을 견디지 못하고 흰 꽃잎처럼 그렇게 내리는 눈송이 사이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리고 훌쩍 1년이 지나 지난 주일이 벌써 그의 1주기 추모일이었습니다. 담낭암 진단을 받고 투병한다는 소식에 몹시 안타까워했는데 결국은 80세를 일기로 그가 우리 곁을 떠났을 때 참 가슴이 먹먹했습니다. 그의 책 어느 것 하나도 마음에 와 닿지 않은 글이 없었는데…. 인간의 오장육부에 숨겨진 위선과 허위의식을 한 치도 숨김없이 다 까발리고 무한히 공감하게 하며 위로받게 했던 작가 박완서, 한없이 소박하고 소탈하게, 그냥 담백하고 진솔하게 써 내려간 수많은 글들, 그녀는 지극히 평범한 소재를 가지고도 반짝이는 재미와 예지를 더 할 줄 아는 타고난 이야기꾼이었습니다. 저는 박완서님의 글에서 늘 많은 걸 얻었고 배웠습니다. 그의 작품들은 그게 소설이든 산문이든 다 자전적인 글, 그것도 마치 양파 껍질처럼 까고 또 까도 겹겹이 쌓여 있는 모질고도 기구한 자신의 운명의 실타래를 담담하게 풀어내는 것들이어서 그만큼 감동이 컸던 것 같습니다.
<이 세상에 태어나길 참 잘했다>
저는 개인적으로 박완서님의 첫 작품인 <나목>을 가장 좋아하지만 이 글은 읽는 내내 눈물을 질금거렸을 만큼 감동적이었습니다. 초등학교 5학년 김복동군이 낯선 미국에서 아버지, 그리고 새로운 가족들과 함께 생활하며 겪는 가슴 뭉클한 성장 동화입니다.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
작가의 유년시절을 가장 아름답게 아프게 그려낸 최고의 성장 소설입니다. 묵은 기억의 더미를 파헤쳐 1930년대 개풍 박적골에서의 꿈같은 어린 시절과 1950년대 전쟁으로 황폐해진 서울에서의 20대까지를 한 폭의 수채화처럼 그려낸 소설입니다.
<한 말씀만 하소서>
남편을 암으로 잃은 지 불과 4개월 만에 다시 마취과 의사를 꿈꾸던 26세의 금쪽같은 아들을 교통사고로 잃고 죽도록 괴로워하며 몸부림치던 시절에 쓴 작가의 일기입니다. 책 제목 그대로 <왜 내 아들이 죽어야 하는지, 왜 내가 이 고통을 당해야 하는지 딱 한 말씀만 해달라>며 하나님께 애원하는 모정의 처절한 탄원이 담겨있습니다.
<꼴찌들에게 보내는 갈채>
1977년 출간돼 오늘까지도 사랑받고 있는 작가의 산문집입니다. 이해인 수녀는 <약자를 배려하는 겸손함과 따뜻함이 느껴지는 박완서 최고의 작품>이라고 평했는데, 작가는 이 책에서 <보이지 않는 곳에 대해 관심을 기울여야 하고, 들리지 않는 것에 귀를 기울여야 하며, 만져보지 못하는 것에 대해 느낄 수 있어야 한다>며 아무도 관심하지 않는 꼴찌에게 진심어린 갈채를 보냅니다. 그리고 꼭 일등이 아니어도 힘닿는 데까지 최선을 다해 완주하는 것이 소중하고, 그런 꼴찌야 말로 진정한 일등이라고 격려합니다.
<보시니 참 좋았다>
늘 분단, 가족, 여성 문제 등을 밀도 있게 다룬 그녀의 관심사 중에서도 이 작품은 특히 인간성에 깊이 호소하는 글입니다. 작가는 우선 생의 참다운 가치가 무엇인가를 물으며 어린이들 뿐 아니라 어른들에게도 꿈을 가지라고 권합니다. 꿈은 내가 할 수 없다고 생각하던 일도 이루어지게 하는 마법의 주문이라고 합니다. 그녀는 이 책에서 <내 평범한 글들을 문학으로 예술로 만든 건 순전히 독자들의 변함없는 사랑이었다>고 고백합니다.
어제 책장에 꽂힌 작가의 책들을 두서없이 꺼내보았습니다. 책마다 적힌 <작가의 말>이 먼저 눈에 들어왔습니다. <재미와 뼈대가 함께 있는 소설이 내 소원이다. 아직도 소설 쓰는 고통을 즐길만한 기운이 남아 있으니 언젠가는 소원 성취할 날도 있으리라>(아주 오래된 농담). <웃을 일이 없어서 내가 나를 웃기려고 쓴 것들이 대부분이다. 나를 위로해 준 것들이 독자들에게 위로가 되었으면 한다>(친절한 복희씨).
아, 더는 박완서 표 새 소설을 읽을 수 없게 됐다는 사실을 언제쯤 현실로 받아들일 수 있을까요. <가난한 문인들을 위해 일체 부의금을 받지 말고 넉넉히 대접해 보내라>는 유언만을 남긴 한국 문학의 어머니 박완서, 그립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