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0817n: 시험코자 하심(요 6:5-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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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8월 17일 주일오후찬양예배
본문: 요 6:5-13
제목: 시험코자 하심
[5] 예수께서 눈을 들어 큰 무리가 자기에게로 오는 것을 보시고 빌립에게 이르시되 우리가 어디서 떡을 사서 이 사람들로 먹게 하겠느냐 하시니 [6] 이렇게 말씀하심은 친히 어떻게 하실 것을 아시고 빌립을 시험코자 하심이라 [7] 빌립이 대답하되 각 사람으로 조금씩 받게 할지라도 이백 데나리온의 떡이 부족하리이다 [8] 제자 중 하나 곧 시몬 베드로의 형제 안드레가 예수께 여짜오되 [9] 여기 한 아이가 있어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졌나이다 그러나 그것이 이 많은 사람에게 얼마나 되겠삽나이까 [10] 예수께서 가라사대 이 사람들로 앉게 하라 하신대 그곳에 잔디가 많은지라 사람들이 앉으니 수효가 오천 쯤 되더라 [11] 예수께서 떡을 가져 축사하신 후에 앉은 자들에게 나눠 주시고 고기도 그렇게 저희의 원대로 주시다 [12] 저희가 배부른 후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남은 조각을 거두고 버리는 것이 없게 하라 하시므로 [13] 이에 거두니 보리떡 다섯 개로 먹고 남은 조각이 열두 바구니에 찼더라
주님은 자주 이렇게 하십니다. 우리 앞에 문제를 던져 놓고 우리를 시험하십니다. 그 과제 앞에서 우리가 어떤 태도를 취하고 반응을 보이는지를 보십니다. 그 문제를 해결하는 것을 보는 것이 아니고, 이것은 주님의 몫입니다. 어떤 마음가짐, 어떤 신앙으로 주님이 던진 그 문제에 임하는가를 보시면서 우리의 중심을 가늠하십니다. 우리의 믿음을 측정하십니다. 그 시험에서 좋은 성적을 거둬야 은혜를 베푸십니다. 주님이 내신 문제를 우리가 잘 풀었다는 것은 주님이 그 다음에 베푸실 은혜를 받아 감당할 채비가 되었다는 사실을 의미합니다. 주님은 무턱대고 은혜를 주시지 않고 주님의 은혜를 누릴만한 채비가 되었을 때 놀라운 축복을 허락하십니다.
본문 6절입니다: “이렇게 말씀하심은 친히 어떻게 하실 것을 아시고 빌립을 시험코자 하심이라.” 이미 주님께 제자들이 직면한 문제에 대한 비책이 서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제자들이 이 문제 앞에서 어떤 반응을 보이는가, 얼마만큼의 믿음을 드러낼 것인가를 확인하시기 위해서 이 문제를 제자들에게 던진 것입니다: “우리가 어디서 떡을 사서 이 사람들에게 먹게 하겠느냐?”
그러면 주님이 던지신 문제에 제자들은 어떤 반응을 보였습니까?
먼저 빌립입니다. 빌립이 주님이 던지신 과제에 가장 먼저 반응했습니다. 7절입니다: “빌립이 대답하되 각 사람으로 조금씩 받게 할지라도 이백 데나리온의 떡이 부족하리이다.” 빌립이 작성한 대답입니다. 빌립은 계산이 빠릅니다. 당장에 이백 데나리온의 떡도 부족합니다. 다시 말해 불가능하다는 겁니다. 어디 가서 떡을 사서 이 많은 사람을 먹일 수 있습니까? 장정만 오천명이니 여인들과 아이들까지 합하면 만 명이 넘을 수도 있어서 이천만원 정도 들 듯한데 어디서 그 많은 떡을 사오겠느냐는 겁니다. 빌립은 이해와 타산에 빠른 지독한 현실주의자입니다. 무슨 일을 하든 치밀한 계산을 합니다. 이미 사전에 승산을 저울질 하고 승산이 없다 싶으면 지레 뒤로 물러섭니다. 대단히 이상적인 것처럼 보이나 신앙적이지는 않습니다. 주님이 기대하는 모습이 아닙니다. 신앙은 때로 수학적인 계산을 초월하기 때문입니다. 때로는 인간적인 이성을 뛰어넘는 게 신앙입니다. 믿는 사람들은 돈으로만 떡을 사는 게 아닙니다. 그런데 빌립 같은 사람은 오직 돈으로만 떡을 살 수 있다고 믿습니다. 그러니 이런 사람들은 죽었다 깨어나도 주님이 내신 문제를 해결할 수 없습니다. 얼마나 많은 사람이 주님의 초월적인 능력을 제한하고 있습니까. 이런 사람들 앞에서는 결코 기적이 일어나지 않습니다. 이런 사람은 낙제생입니다. 빌립의 답안은 절대 주님이 기대하고 바라는 정답이 아닙니다. 주님이 내신 문제는 수학문제가 아니고 믿음의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다음은 안드레입니다. 8-9절입니다: “[8] 제자 중 하나 곧 시몬 베드로의 형제 안드레가 예수께 여짜오되 [9] 여기 한 아이가 있어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졌나이다 그러나 그것이 이 많은 사람에게 얼마나 되겠삽나이까.” 그래도 안드레는 빌립보다 낫습니다. 빌립은 앉은 자리에서 계산만 했는데, 안드레는 그래도 다니면서 떡이 있는지 확인해 봅니다. 그러나 그 역시도 주님이 기대한 사람은 아닙니다. 오병이어를 발견하고도 이것이 이 많은 사람에게 대체 도움이 되겠냐고 합니다. 오병이어를 비웃습니다. 빌립이 계산에 밝은 현실주의자였다면, 안드레는 회의주의자요 비관주의자였습니다. 오병이어와 굶주린 오천 명이 대결이 됩니까? 그러니 우리가 해결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겁니다. 빌립과 안드레의 결론은 동일합니다. 이런 사람들이 많습니다. 일은 많이 합니다. 주님의 말씀을 듣고 떡을 찾아다니기는 하나 매사에 회의적입니다. 된다는 얘기는 없고 모두 부정적이고 비관적입니다. 긍정적인 얘기가 없습니다. 어떤 의미에서 빌립형 보다 더 골치 아픈 형입니다. 될 일도 안 되게 하는 타입입니다. 주님은 빌립이나 안드레 같은 사람들과는 일을 못하십니다. 둘 다 주님의 은혜를 받을만한 태세가 안 된 사람들입니다.
마지막으로 한 아이입니다. 9절을 다시 봅니다: “여기 한 아이가 있어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졌나이다 그러나 그것이 이 많은 사람에게 얼마나 되겠삽나이까.” 한 아이가 자기의 한 끼분의 초라한 도시락을 그대로 주님께 바쳤다는 얘기인데, 안드레가 비웃을 만합니다. 먹어야 할 사람은 오천 명이 훨씬 넘는데, 오병이어가 현실적으로 어떻게 도움이 될 수 있단 말입니까. 그런데 이 아이는 무슨 마음으로 자기의 도시락을 바쳤을까요? 빌립처럼 계산해서 바쳤을까요? 계산하면 절대 바치지 못합니다. 안드레처럼 부정적인 생각을 했어도 당연히 바치지 못했을 겁니다. 대체 무슨 생각을 하면서 이 아이는 주님께 자기의 도시락을 바쳤을까요? 그저 단순히 주님이 먹을 것을 찾으니 이것저것 안 따지고 자기의 도시락을 드린 겁니다. 그저 자기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한 것뿐입니다. 계산을 하거나 회의주의에 빠지면 못 드렸겠지만, 주님 말씀에 힘껏 반응했기에 드릴 수 있었습니다. 과연 내 도시락이 도움이 될까, 혹 망신당하지는 않을까 고민하지 않았습니다.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은 이것이다 생각하고 바친 겁니다. 그랬더니 주님이 그 아이의 헌상을 소재로 놀라운 기적을 베푸십니다. 주님은 언제나 이렇게 일하십니다. 한 아이가 바친 희생과 봉사를 통해 언제나 놀라운 은혜를 베푸십니다. 계산 빠르고 이해가 빠른 빌립이 아니고, 회의하는 안드레가 아니라 주님의 명령에 복종하는 사람을 통해 주님은 언제나 복을 베푸시며 기적을 일으키십니다.
그렇다고 아무리 주님이시지만 최소한 오병이어가 있어야만 기적을 베푸실 수 있다는 뜻은 아닙니다. 주님은 오병이어가 없어도 오천이 아니라 오만, 오백만 명도 먹이실 수 있습니다. 주님께는 우리가 드리는 소재가 필요없습니다. 주님은 한 아이가 드린 도시락으로 기적을 베푸신 것이 아니라 순전히 주님의 능력으로 먹이셨습니다. 다만 주님은 한 아이의 단순한 믿음, 결단을 받으신 겁니다. 사실 오천 명을 먹이고도 열두 바구니나 남긴 사건은 오병이어와 물리적인 함수관계가 성립하지 않습니다. 오병이어가 아니라 그 아이의 중심을 받으신 겁니다. 오병이어를 뻥튀기해서 나누어 준 것이 아닙니다. 주님은 최소한 부빌 언덕이 있어야만 무언가를 행하시는 분이 아닙니다. 주님은 말씀으로 창조하셨습니다. 무에서 유를 창조하신 겁니다. 이미 주님은 대책이 있고, 다만 이 문제 앞에서 우리가 어떻게 반응하는가를 시험하시기 위해서 그런 질문을 하신 겁니다. 우리가 문제 앞에 봉착했을 때 회의에 빠지지 마십시오. 주님은 이미 대책이 서있습니다. 우리가 은혜를 받을 만한 준비가 되어 있으면 받을 것이고, 그렇지 못하면 받지 못할 겁니다. 어떤 능력이 그 오천 명이나 되는 장정을 먹일 수 있겠습니까? 인간적인 자원으로는 불가능하고 하나님의 기적만이 가능합니다. 한 아이의 결단이 있어야 합니다. 부디 한 아이에게서 큰 깨달음을 얻읍시다. 빌립보다 안드레보다 그저 주님 말씀 앞에 자기의 환경과 처지에서 반응하고 결단한 한 아이의 믿음을 배웁시다. 거기에 길이 있고, 문제 해결의 근본적인 해법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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