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교회 아카이브

20120122m: 무할례(롬 4:1-12)

2012년 1월 22일 주일낮예배

본문: 롬 4:1-12

제목: 무할례


[1] 그런즉 육신으로 우리 조상인 아브라함이 무엇을 얻었다 하리요 [2] 만일 아브라함이 행위로써 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면 자랑할 것이 있으려니와 하나님 앞에서는 없느니라 [3] 성경이 무엇을 말하느냐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매 그것이 그에게 의로 여겨진 바 되었느니라 [4] 일하는 자에게는 그 삯이 은혜로 여겨지지 아니하고 보수로 여겨지거니와 [5] 일을 아니할지라도 경건하지 아니한 자를 의롭다 하시는 이를 믿는 자에게는 그의 믿음을 의로 여기시나니 [6] 일한 것이 없이 하나님께 의로 여기심을 받는 사람의 복에 대하여 다윗이 말한 바 [7] 불법이 사함을 받고 죄가 가리어짐을 받는 사람들은 복이 있고 [8] 주께서 그 죄를 인정하지 아니하실 사람은 복이 있도다 함과 같으니라 [9] 그런즉 이 복이 할례자에게냐 혹은 무할례자에게도냐 무릇 우리가 말하기를 아브라함에게는 그 믿음이 의로 여겨졌다 하노라 [10] 그런즉 그것이 어떻게 여겨졌느냐 할례시냐 무할례시냐 할례시가 아니요 무할례시니라 [11] 그가 할례의 표를 받은 것은 무할례시에 믿음으로 된 의를 인친 것이니 이는 무할례자로서 믿는 모든 자의 조상이 되어 그들도 의로 여기심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12] 또한 할례자의 조상이 되었나니 곧 할례 받을 자에게뿐 아니라 우리 조상 아브라함이 무할례시에 가졌던 믿음의 자취를 따르는 자들에게도 그러하니라


오늘 본문은 길고 복잡한 것 같으나 요지는 아브라함의 소명, 구원, 축복이 그의 노동의 대가였느냐, 수고의 보상이었느냐, 아니면 공짜였느냐, 은혜였느냐 입니다.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계명을 잘 이행한 데 대한 반대급부였느냐, 아니면 그의 모든 축복이 할례 이전 곧 율법 이전에 이루어졌느냐 입니다. 그가 할례자일 때냐, 아직 무할례자일 때 이루어졌느냐 입니다. 이것을 따져보자는 게 오늘 본문의 요지입니다. 공짜냐 대가냐 입니다. 


오늘 본문에는 할례라는 말이 많이 나옵니다. 할례는 요즘 말로는 포경수술입니다. 우리는 요즘 와서 열심히 포경수술을 합니다만, 이스라엘 사람들은 지금으로부터 4000년 전부터 포경수술을 했습니다. 물론 우리는 종교의식이 아니라 위생 건강상으로 하지만, 유대인들은 하나님의 명령에 의해 종교의식으로 했습니다. 2차 대전까지만 해도 유럽에서 포경수술을 한 사람은 유태인들 밖에 없었습니다. 히틀러가 독일을 위시해 전 유럽을 이 잡듯 유태인들을 색출해 처단했습니다. 그런데 유태인이 유럽에 산 지 오래되다 보니 누가 유태인인지 구별이 가지 않았는데, 그때 식별 방법이 포경수술 여부였습니다. 자기가 아무리 유태인이 아니라고 잡아떼도 포경수술 여부로 색출을 했습니다. 유태인들은 어느 나라 어디에서 살건 남자들은 태어난지 8일만에 반드시 할례를 합니다. 지금도 그렇게 하고 있습니다. 그게 건강과 위생에 좋다고 하니까 우리도 열심히 따라하는 겁니다. 


창세기 17장 9절 이하를 보면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9] 하나님이 또 아브라함에게 이르시되 그런즉 너는 내 언약을 지키고 네 후손도 대대로 지키라 [10] 너희 중 남자는 다 할례를 받으라 이것이 나와 너희와 너희 후손 사이에 지킬 내 언약이니라 [11] 너희는 포피를 베어라 이것이 나와 너희 사이의 언약의 표징이니라 [12] 너희의 대대로 모든 남자는 집에서 난 자나 또는 너희 자손이 아니라 이방 사람에게서 돈으로 산 자를 막론하고 난 지 팔 일 만에 할례를 받을 것이라 [13] 너희 집에서 난 자든지 너희 돈으로 산 자든지 할례를 받아야 하리니 이에 내 언약이 너희 살에 있어 영원한 언약이 되려니와 [14] 할례를 받지 아니한 남자 곧 그 포피를 베지 아니한 자는 백성 중에서 끊어지리니 그가 내 언약을 배반하였음이니라.” 할례는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물증이었습니다. 이렇게 중요한 할례임에도 아브라함은 모든 죄가 가려지는 복을 언제 받습니까? 본문 9절 이하입니다. “[9] 그런즉 이 복이 할례자에게냐 혹은 무할례자에게도냐 무릇 우리가 말하기를 아브라함에게는 그 믿음이 의로 여겨졌다 하노라 [10] 그런즉 그것이 어떻게 여겨졌느냐 할례시냐 무할례시냐 할례시가 아니요 무할례시니라.” 할례를 받기 전에 아브라함이 택함을 입고 하나님의 구원을 얻습니다. 할례라는 계명을 잘 지켰을 때 비로소 구원 받고 이스라엘 백성이 된 게 아니라 무할례 시에 이미 구원이 다 이루어졌다는 겁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에게는 자랑할 게 없다는 겁니다. 믿음의 조상이 되었고 남다른 택함을 받았음에도 자랑할 게 없다는 겁니다. 만일 아브라함이 행위로써 구원을 받았다는 자랑할 게 있으나, 하나님의 구원은 아브라함의 수고의 대가가 아니기에 자랑할 게 없습니다. 하나님이 거저 그에게 주신 것입니다. 은혜로 선물로 주신 겁니다. 할례가 무엇인지도 모를 때 이미 구원을 받았습니다. 모든 죄의 용서를 받은 겁니다. 아브라함의 소명이 창세기 12장에 나옵니다. 1-2절입니다. “[1]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네게 보여 줄 땅으로 가라 [2]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리니 너는 복이 될지라.” 이러한 부름과 축복의 약속, 은혜가 다 율법 전에 이루어졌습니다. 할례 받기 전에 이뤄진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그래서 이렇게 풍성한 은혜를 받고 구원을 받았기에 아브라함은 하나님 앞에서 자랑할 게 없습니다. 자기 노력과 수고의 대가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다만 감사할 따름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부르기 전까지만 해도 그는 하나님이 아니라 이방신을 섬기며 살았습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에게 하시는 말씀인 여호수아 24장 2절 이하를 보면 이렇습니다. “[2] 여호수아가 모든 백성에게 이르되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옛적에 너희의 조상들 곧 아브라함의 아버지, 나홀의 아버지 데라가 강 저쪽에 거주하여 다른 신들을 섬겼으나 [3] 내가 너희의 조상 아브라함을 강 저쪽에서 이끌어 내어 가나안 온 땅에 두루 행하게 하고 그의 씨를 번성하게 하려고 그에게 이삭을 주었으며.” 아브라함의 아버지 데라가 하나님이 아니라 이방신을 섬겼습니다. 그때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거기에서 이끌어 내어 가나안에 가게 했다는 겁니다. <강 저쪽>은 유브라데 강 건너편 곧 갈대아 우르(메소포타미아), 지금의 이라크 남부지방입니다. 그때는 종족 시대여서 아버지가 이방신을 섬기면 아들도 이방신을 섬기는 겁니다. 요즘은 부모와 자식의 신앙이 다를 수 있지만, 아브라함 시대 때는 그런 게 안 통했습니다. 그러므로 아브라함도 갈대아 우르에 살 때는 이방신을 섬긴 겁니다. 데라는 갈대아 우르에서 갈대아의 유명한 우상인 달의 신 <나나>의 신상을 조각하는 장인이었다고 합니다. 아비 데라는 나나를 섬겼고 아들 아브라함은 여호와 하나님을 섬겼다는 것은 있을 수 없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우상을 섬기던 아브라함을 부르시고 그 우상의 소굴에서 이끌어 내어 가나안으로 가게 하셨습니다. 유대 전승은 이 얘기를 이렇게 전합니다. 아브라함이 어느 날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본토를 떠나라고 하니 떠나야 하는데 아버지 데라가 허락하지 않습니다. 하루는 아브라함이 망치를 들고 신당에 들어가 모든 우상을 부쉈습니다. 그리고 그 망치를 그 우상 중 제일 큰 신상 손에 들려놓았습니다. 아침에 데라가 신당에 갔다가 경악하고 아브라함을 불러 따져물었습니다. 아브라함은 저 큰 우상이 작은 우상을 다 쓰러뜨렸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데라는 내가 저 신상을 만들었는데, 어떻게 그게 가능하냐고 하자, 아브라함은 그러면 아버지는 왜 그런 신을 섬기고 상을 만들어 파세요? 말문이 막힌 데라가 아브라함을 떠나게 했다는 얘기가 있습니다. 


그런데 당시 아브라함에게 믿음이나 율법이 있었던 게 아닌데, 그저 하나님과 관계없이 살아온 사람인데, 어떻게 하나님이 그를 불러 약속의 땅으로 가게 하시고, 그를 믿음의 조상으로 삼으셨는가 하는 겁니다. 아브라함은 한 번도 자신의 구원을 갈망한 적이 없습니다. 졸지에 구원을 당한 겁니다. 졸지에 택함을 당한 겁니다. 아브라함의 소명장이 창세기 12장입니다. 그런데 아브라함의 믿음이 최초로 언급된 곳이 창세기 15장입니다. 5절 이하입니다. “[5] 그를 이끌고 밖으로 나가 이르시되 하늘을 우러러 뭇별을 셀 수 있나 보라 또 그에게 이르시되 네 자손이 이와 같으리라 [6] 아브람이 여호와를 믿으니 여호와께서 이를 그의 의로 여기시고 [7] 또 그에게 이르시되 나는 이 땅을 네게 주어 소유를 삼게 하려고 너를 갈대아인의 우르에서 이끌어 낸 여호와니라.” 여러분, 창세기 12장에서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부름을 받습니다. 그리고 15장에 와서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처음 믿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그런 아브라함의 믿음을 의로 여기셨다고 합니다. 창세기 12장과 15장의 시간차는 10년이 넘습니다. 부름 받고 구원 받은 때가 언제인데 10년이 지나서야 믿음을 고백하고 있습니다. 할례는 언제 받습니까? 아브라함의 할례는 17장에 나옵니다. 그런데 15장과 17장 사이는 13년 이상 차이가 납니다. 아브라함이 99세에 비로소 할례를 받습니다. 75세에 부름을 받고(창 12장) 85세에 믿음을 고백하고(창 15장), 99세에 할례를 받습니다(창 17장). 이게 아브라함의 구속사의 이력입니다. 우리 상식과는 완전히 다릅니다. 우리는 믿어야 구원을 받는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아브라함의 경우는 반대입니다. 졸지에 구원부터 당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10년이 지나서야 비로소 믿음의 감을 잡습니다. 그리고 더 시간이 지나서야 비로소 율법을 행합니다. 


아브라함이 누구입니까? 믿음의 조상입니다. 믿음의 조상은 모든 믿는 자들의 사표요 영원한 귀감이란 뜻입니다. 아브라함이 믿음의 절대적인 모델이라는 겁니다. 믿는 자들은 아브라함과 같아야 한다는 뜻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아브라함의 후손이요, 그는 우리의 조상입니다. 아브라함이 창세기 15장에서 비로소 하나님을 믿었다고 하는데, 하나님이 그의 믿음을 시험한 곳이 창세기 22장입니다. 이삭을 번제로 바치라는 시험이었습니다. 그 시험을 아브라함이 성공적으로 통과하자 하나님은 이제야 네 믿음을 인정한다고 하십니다. 그러니까 그 전까지만 해도 아브라함의 믿음이 지극히 불안정했다는 겁니다. 믿음이란 게 이렇게 어렵습니다. 85세 때 신앙고백을 했으나 미덥지 못했습니다. 시험조차 할 만한 가치가 없었던 겁니다. 아브라함의 나이 115세쯤에 하나님이 비로소 시험을 하셨고, 아브라함은 그 시험을 통과했습니다. 그러자 하나님이 더할 수 없는 복을 부어주셨습니다. 잘 믿고 시험을 잘 이기고, 율법을 지키고 할례를 받아서가 아닙니다. 부르심과 구원과 하나님의 축복은 율법 이전의 사건입니다. 그래서 구원은 하나님의 일방적인 주권행위입니다. 우리의 행위의 반대급부가 아닙니다. 할례 받아서가 아닙니다. 무할례 때 이루어진 것입니다. 율법을 지키기도 전에, 믿음의 혹독한 시험을 통과하기도 전에 구원받고 복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구원은 신비입니다. 불가사의입니다. 수수께끼입니다. 오직 하나님의 은혜요 선물입니다. 그래서 구원 받은 사람들은 자랑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께 감사해야 합니다. 


믿음이 아니라 구원이 먼저입니다. 푸른교회 성도들은 자다가도 옆구리를 찌르면 구원이 먼저라고 하셔야 합니다. 믿음은 원인이 아닙니다. 열매요 결과입니다. 구원 받았기에 우리가 믿는 겁니다. 구원 받지 못하면 우리가 절대 믿지 못합니다. 아브라함도 구원 받고 축복을 받았기에 10년 뒤에 때가 되어 비로소 믿음의 열매를 맺었고, 또 시간이 흐른 뒤에 하나님의 믿음의 시험을 통과할 수 있었습니다. 믿거나 율법을 지켜서가 아닙니다. 할례를 받아서가 아닙니다. 하나님은 은혜로 선물로 구원을 베푸십니다. 이 구원과 믿음의 상관관계에 대한 깊은 이해를 가지셔야 합니다. 올해도 여러분이 그 은혜에 대해 감사하면서 살면 아브라함에게 베푸셨던 은혜와 복을 여러분에게도 베푸실 것입니다. 구원 받았음에 무조건 감사하며 사십시오. 그러면 하나님이 더 큰 은혜와 복을 베푸실 것입니다. 


설교영상보기: http://tvpot.daum.net/clip/ClipViewByVid.do?vid=LTKjo_-RG8M$

원문 자료와 첨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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