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0817m: 빗속을 달리는 엘리야(왕상 18:4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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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8월 17일 푸른교회 주일낮예배
본문: 왕상 18:41-46
제목: 빗속을 달리는 엘리야
[41] 엘리야가 아합에게 이르되 올라가서 먹고 마시소서 큰 비의 소리가 있나이다 [42] 아합이 먹고 마시러 올라가니라 엘리야가 갈멜 산 꼭대기로 올라가서 땅에 꿇어 엎드려 그 얼굴을 무릎 사이에 넣고 [43] 그 사환에게 이르되 올라가 바다 편을 바라보라 저가 올라가 바라보고 고하되 아무 것도 없나이다 가로되 일곱번까지 다시 가라 [44] 일곱번째 이르러서는 저가 고하되 바다에서 사람의 손만한 작은 구름이 일어나나이다 가로되 올라가 아합에게 고하기를 비에 막히지 아니하도록 마차를 갖추고 내려가소서 하라 하니라 [45] 조금 후에 구름과 바람이 일어나서 하늘이 캄캄하여지며 큰 비가 내리는지라 아합이 마차를 타고 이스르엘로 가니 [46] 여호와의 능력이 엘리야에게 임하매 저가 허리를 동이고 이스르엘로 들어가는 곳까지 아합 앞에서 달려갔더라
마지막 45-46절입니다: “[45] 조금 후에 구름과 바람이 일어나서 하늘이 캄캄하여지며 큰 비가 내리는지라 아합이 마차를 타고 이스르엘로 가니 [46] 여호와의 능력이 엘리야에게 임하매 저가 허리를 동이고 이스르엘로 들어가는 곳까지 아합 앞에서 달려갔더라.” 엘리야가 쏟아지는 장대비 속을 달리고 있습니다. 갈멜산에서 이스르엘까지는 약 20킬로미터입니다. 엘리야가 그 먼길을 더구나 장대비 속을 달리고 있습니다. 얼마나 맹렬히 달렸냐면 아합은 마차를 타고 가는데, 엘리야는 마차 앞을 달렸다고 합니다. 왜냐면 엘리야가 너무도 감격해서 그랬습니다. 무려 3년 반 동안 가물었는데 지금 장대비가 쏟아지고 있습니다. 그러니 신들린듯이 마차보다 더 빨리 달리는 겁니다. 요즘은 부분적이긴 합니다만 인공강우도 가능합니다. 비가 오지 않도록 일기를 조작할 수도 있습니다. 그런 시대를 우리가 사는데도 비가 몇 개월만 오지 않아도 난리가 납니다. 지금부터 2800년 전이니 오로지 하늘만 바라보고 살아야 하는데, 무려 3년 반 동안이나 비 한방울 오지 않았으니 얼마나 어려웠겠습니까. 그런데 엘리야 선지자가 갈멜산 꼭대기에 올라가서 기도했더니 비가 온 겁니다. 그 감격과 기쁨 때문에 빗속을 달리고 있는 겁니다.
엘리야가 어떻게 기도했길래 이런 놀라운 기도응답을 체험할 수 있었을까요?
우선 구체적으로 기도했습니다. 엘리야의 기도는 언제나 막연하지도 애매모호하지도 관념적이지도 않습니다. 시나 수필을 쓰지 않았습니다. 생생하고도 구체적이고 확실한 기도를 했습니다. 그래서 그 기도만큼 기도응답도 확실히 체험했습니다. 지금 3년 반 동안 비가 오지 않아 사람이든 짐승이든 죽어가는데 제발 비를 내려달라고 했더니 하나님이 비를 주신 겁니다. 오늘 본문 앞에는 우리가 잘 아는 엘리야가 바알 선지자 450명과 맞대결한 사건이 나옵니다. 거기서는 엘리야가 불을 내려달라고 기도했습니다. 그랬더니 어떻게 되었습니까? 18장 38절입니다: “이에 여호와의 불이 내려서 번제물과 나무와 돌과 흙을 태우고 또 도랑의 물을 핥은지라.” 이렇게 엘리야의 기도는 비를 주십시오, 불을 주십시오 했지, 우리처럼 중언부언, 횡성수설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구하는바가 확실할 때 확실하게 응답하십니다. 기도를 진솔하게 하십시다. 어떤 틀이나 형식을 생각하지 마십시오. 돈을 주십시오, 건강을, 지혜를, 집을 주십시오 하고 기도하십시오. 괜히 나라를 민족을 내게 달라고 하지 마십시오. 그런 황당한 기도, 범세계적인 기도는 안 하시는 게 좋습니다. 이 세계를 달라고 기도하는 사람이 있는데, 이것은 허세입니다. 그걸 어떻게 감당하려구요. 필요한 것을 구하시지 빙빙 돌리거나 우아한 언어를 찾아 시를 쓰지 마십시오. 단순하고 소박한 것을 구하십시오. 위대한 기도의 사람 엘리야를 보십시오. 불을 내려주십시오. 비가 필요합니다. 물을 내려달라고 합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기도가 하도 난해해서 이해를 못해 응답을 못하십니다. 우리는 기도할 때 자꾸만 소설을 쓰려고 합니다. 똑 부러지는 기도를 해야 합니다. 어떤 분은 기도하기 전에 하나님이 우리의 필요를 다 아시는데 굳이 우리가 구체적으로 기도할 필요가 있는가 하고 반문합니다. 맞는 말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기도하기 전에 이미 다 아십니다만, 반드시 우리로 하여금 먼저 기도하게 하시고 응답하십니다. 그래야 하나님 은혜의 소중함을 우리가 깨닫고 감사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물이나 공기, 햇볕이 없으면 우리는 못 삽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공기의 고마움을 못 느낍니다. 요즘은 하도 공기가 오염되어 공기 소중함을 조금씩 깨닫습니다만, 우리는 자명한 은혜를 잘 깨닫지 못합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필요를 척척 채워주시면 감사를 모르게 됩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함부러 우리의 필요를 알아서 주시지 않습니다. 반드시 불을 구하게 한 다음에 불을, 물을 구하게 한 다음에 비를 주십니다. 그래서 엘리야가 이토록 기뻐하고 감사하는 겁니다.
우리가 구체적으로 기도해야 주님께서 허락하시고 하나님께서 응답하셨다는 사실을 우리가 부인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알아서 다 챙겨주신다면, 우리 중에 몇 사람이 과연 하나님께 감사하겠습니까? 우연, 재수, 조상 묘를 잘 써서 잘 되었다고 생각하지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반드시 하나님은 먼저 기도하게 하시고 나서 거기에 응답하심으로써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의 은혜를 부인하지 못하게 하시는 겁니다. 엘리야처럼 명쾌하게 기도하십시오. 취업하게 해주십시오, 합격하게 해주십시오 하며 분명하게 기도하십시오.
다음으로 42절입니다: “아합이 먹고 마시러 올라가니라 엘리야가 갈멜 산 꼭대기로 올라가서 땅에 꿇어 엎드려 그 얼굴을 무릎 사이에 넣고.” 이 얼마나 간절합니까? 야고보서 5장 17절 이하를 보면 이런 말씀이 나옵니다: “[17] 엘리야는 우리와 성정이 같은 사람이로되 저가 비 오지 않기를 간절히 기도한즉 삼 년 육 개월 동안 땅에 비가 아니오고 [18] 다시 기도한즉 하늘이 비를 주고 땅이 열매를 내었느니라.” 간절히 기도해서 땅에 비가 내렸다고 합니다. 엘리야는 갈멜산 꼭대기에 올라가서 땅에 꿇어 엎드려 얼굴을 무릎 사이에 넣었다고 합니다. 보통 유대인들을 일어서서 하늘을 향해 두 손을 들고 눈을 뜨고 기도합니다. 그런데 엘리야는 무릎을 꿇고 그 무릎 사이에 자기 머리를 틀어박았습니다. 여러분 이런 자세 가능하십니까? 엘리야 같은 위대한 선지자도 이렇게 간절한 모습으로 기도했다면, 우리는 어떻게 기도해야 하겠습니까? 우리는 아예 땅을 파고 머리를 뭍고 기도해야 할 것입니다. 기도는 말로, 혀로 하는 것이 아니라 온몸으로 하는 겁니다. 기도는 형식이나 요식이 아니라 자기의 온몸으로 표현하는 간절함이요 절박함, 절절함입니다. 이런 기도가 주님의 심금을 울리는 겁니다. 우리의 소리가 큰들 우리의 소리가 하늘에 미칠 수 있겠습니까? 기도는 우리의 몸으로 기도하는 겁니다. 주님도 겟세마네 동산에서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누가복음 22장 44절입니다: “예수께서 힘쓰고 애써 더욱 간절히 기도하시니 땀이 땅에 떨어지는 핏방울 같이 되더라.” 주님처럼 간절히, 온몸으로 기도해야 합니다. 언어로 기도하는 게 아닙니다.
엘리야는 확신을 가지고 기도했습니다. 41절입니다: “엘리야가 아합에게 이르되 올라가서 먹고 마시소서 큰 비의 소리가 있나이다.” 아직 비가 오기 전인데도 엘리야는 지금 큰 빗소리를 듣고 있습니다. 믿음의 귀로 듣는 겁니다. 믿음의 눈으로 보는 겁니다. 이게 바로 믿음의 진수요, 기도의 진수입니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고 보지 못하는 증거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기도하기도 전인데 엘리야는 큰 빗소리를 듣습니다. 이런 기도는 하나님께 엄청난 압박이 됩니다. 이런 기도에 하나님이 응답하시지 않을 수 없습니다. 비를 주십시오 하고 기도하면서 큰 빗소리를 듣고 감사하고 기뻐하는 것이 믿음의 기도입니다. 마가복음 11장 24절입니다: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무엇이든지 기도하고 구하는 것은 받은 줄로 믿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그대로 되리라.” 받기 전에 이미 받았다고 믿으라는 겁니다. 그러면 믿은대로 된다는 겁니다. 여러분, 비를 구하기 전에 이미 빗소리를 들어야 합니다. 그래야 실제로 비가 온다는 겁니다. 먼저 내가 바라는 것의 실상을 봐야 그 꿈과 비전, 환상이 현실이 됩니다. 그런데 우리는 언제나 불신으로 기도합니다. 응답에 대한 바람, 기대가 없습니다. 이미 패배주의에 빠져 기도합니다. 응답되면 다행이고, 안 되면 할 수 없다는 주의에 사로잡혀 있습니다. 기도시작부터가 그렇습니다. 적극적으로 매달리고, 먼저 빗소리를 듣고 기도하십시다. 꼼짝없이 하나님은 이런 기도에 응답하십니다. 선수를 치시라는 겁니다.
마지막으로 응답받기까지 기도했습니다. 43절입니다: “그 사환에게 이르되 올라가 바다 편을 바라보라 저가 올라가 바라보고 고하되 아무 것도 없나이다 가로되 일곱 번까지 다시 가라.” 내가 지금 기도할테니 바다쪽에 구름이 떠오르는지 확인하라는 지시인데, 일곱 번까지 가라는 것은 구름이 바다 끝쪽에 떠오를 때까지 가라는 말입니다. 7번이 아니라 10번이라도 하나님이 응답하실 때까지 기도하겠다는 표명입니다. 기도는 인내와의 싸움이요, 기도는 내 인내심의 한계에 도전하는 처절한 씨름입니다. 기도의 시한은 응답받을 때까지입니다. 일곱 번까지 가라는 것은 응답받을 때까지 라는 말입니다. 내가 일방적으로 시한을 정해놓고 그 때까지 응답하라고 떼쓰는 것은 바른 자세가 아닙니다. 왜 응답받을 때까지 기도해야 합니까? 내 시간과 하나님의 시간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내 시간과 하나님의 시간이 같다는 보장이 없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내 시간에 하나님을 굴복시키려고 하면 안 되고, 내가 하나님의 시간에 순종하고 복종해야 합니다. 내 시간이 이상적인 시간이란 보장이 없습니다. 하나님은 전체 문맥, 전체 그림을 보십니다만, 우리는 부분만, 내 앞만 봅니다. 그래서 내 시간표와 하나님의 시간표가 다릅니다. 그래서 기도는 내가 시간을 정하는 게 아니고, 일곱 번까지 기도하는 겁니다. 하나님의 시간표에 순종하는 겁니다. 하나님의 시간이 가장 이상적인 때입니다. 하여간 하나님이 예정하신 때까지 기도를 멈추지 않겠다는 자세가 옳습니다. 엘리야는 적어도 그렇게 기도했습니다.
여러분, 위대한 기도의 선구자 엘리야에게 도전받으시고, 그의 기도를 통해 깨달음을 얻게 되시길 바랍니다. 자칫 기도의 자세가 흐트러지기 쉬운 여름입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성찰하십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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