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1231: 마지막 때를 위하여(벧전 4:7-8) 송구영신예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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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12월 31일 송구영신예배
본문: 벧전 4:7-8
제목: 마지막 때를 위하여
[7] 만물의 마지막이 가까이 왔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정신을 차리고 근신하여 기도하라 [8] 무엇보다도 뜨겁게 서로 사랑할지니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느니라
임진년 새해입니다. 임진은 큰 용이라는 뜻입니다. 동양에서는 용이 상서롭습니다. 희망과 성공과 권력과 부의 상징입니다. 더구나 흑룡의 해는 60년 만에 온답니다. 새해 전망이 어두우나 흑룡에 대한 기대가 있습니다. 서양은 어떻습니까? 중남미 쪽에서는 2012년 12월 21일이 종말입니다. 올해 우리나라에는 대선이 있습니다. 누가 되든 이틀 동안 흥분하다가 끝납니다. 19일이 대선일이고, 20일, 21일 즐기다가 그날 종말을 맞는 겁니다. 그렇게 정교하다는 마야월력에 의하면 올해가 종말입니다. 마야족의 후손인 중남미 멕시코나 과테말라나 미국 내의 멕시칸들은 마야월력을 믿고 올해가 지구의 종말이라 확신합니다. 지구 종말에 관한 책이 수백 종이 넘습니다.
그러면 우리 믿는 사람들은 그걸 믿어야 할까요? 아닙니다. 성경은 그렇게 말하지 않습니다. 주님은 종말을 누구도 모르고 도적처럼 온다고 하셨습니다. 누구도 종말을 예언할 수 없습니다. 심지어 주님은 자신도 모르고 아버지만 아신다고 하셨습니다. 그토록 비밀에 부쳐져 있다는 뜻입니다. 아무리 정교한 월력을 만들고 종말을 예언했다 하더라도 믿는 사람은 그걸 믿을 필요는 없습니다. 그러나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작년에 비해 올해 정확히 종말이 1년 단축되었다는 사실입니다. 종말이 언제든 12달 더 가까워졌습니다. 원래 우리 믿는 사람들은 늘 종말을 의식하며 살아야 합니다. 그래서 기독교 신앙은 종말론적 신앙입니다. 초대교회 성도들은 긴박한 종말의식으로 살았습니다. 주님이 곧 오신다고 믿었습니다. 마야의 후손들이 아니라 우리 믿는 사람들이 올해라도 주님이 오신다고 믿고 살아야 합니다. 초대교회 성도가 바로 그렇게 살았습니다. 주님이 이 땅을 떠났음에도 여러 기록을 남길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주님이 이 땅을 떠나 40년이 되어서야 첫 기록을 남기기 시작했는데 그게 마가복음입니다. 초대교회는 마태복음의 산상복음을 실제 실천하며 살았습니다. 오늘 우리는 그렇게 못 삽니다. 왜냐면 초대교회 성도들은 종말론적 신앙을 가졌기에 그게 가능했고, 우리에겐 종말론적 신앙이 없기에 안 됩니다. 그러나 2012년 12월 22일에 주님이 오신다는 게 확실하면 우리도 그렇게 살 수 있습니다. 왜 속옷을 못 벗어주며, 왜 원수를 사랑할 수 없겠습니까? 원래 성경은 종말론적 신앙을 가진 자의 눈에 제대로 보입니다. 그런 신앙을 가진 자에게 도전을 주고 은혜를 줍니다. 여러분, 올해 좀 긴장하십시다. 성경이 우리에게 요구하는 본연의 신앙, 종말론적 신앙을 회복하십시다.
오늘 본문도 베드로 사도가 마지막 시대를 사는 성도에게 주는 말씀입니다. 마지막 때를 살아가는 성도가 가져 마땅한 삶의 자세는 첫째로 정신을 차리라는 겁니다. “만물의 마지막이 가까이 왔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정신을 차리고”라고 합니다. 요즘 환경이 많이 파괴되고 자연이 많이 훼손되었습니다만, 그것보다 우리의 정신이 더 많이 황폐해졌습니다. 요즘 제 정신으로 살아가는 사람 없습니다. 우리가 다 제 정신이 아닙니다. 다 환자들입니다. 이게 문제입니다. 극도로 혼미해졌습니다. 원초에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정말 맑고 투명한 정신을 불어넣어주셨는데, 지금은 아닙니다. 우리는 돈에, 명예에, 쾌락에, 도박에, 마약에 미쳐 삽니다. 그러나 처음에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베드로 사도는 이 시대를 사는 우리 성도들에게 정신을 차리라고 합니다. 원래 하나님이 우리 안에 불어넣어주신 맑고 투명한 정신을 회복하라는 겁니다. 군대에서는 정신이 빠진 군인에게 기압을 줍니다. 얼차려를 실시합니다. 왜냐면 군인정신이 충일하지 못하면 전쟁을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얼을 차려야 전쟁에 나가 싸울 수 있습니다. 새해에는 정신을 차립시다. 그게 베드로 사도가 우리에게 당부한 첫 번째 명령입니다. 호랑이에게 잡혀가도 정신만 차리면 산다고 했듯이, 아무리 세상이 황폐해져도 정신만 차리면 우리를 향한 주님의 뜻을 분별하고, 시대의 기상도를 바르게 읽을 수 있습니다. 부디 새해에는 정신을 바짝 차리고 사십시다.
둘째, 근신하여 기도하라고 했습니다. 이 말은 삶으로 기도하라, 몸으로 기도하라, 노동으로 직업으로 기도하라는 뜻입니다. 우리의 신앙생활에 치명적인 한계와 모순과 약점이 바로 분열입니다. 노동과 기도가 유리되어 있습니다. 구분되어 있습니다. 우리 삶과 신앙이 이원적으로 구분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신앙생활을 교회 안에서만 합니다. 밖에 나가서도 해야되는데 말입니다. 교회 와서 무릎 꿇고 두 손 들고 하는 것만 기도가 아닙니다. 우리 삶이 기도여야 합니다. 개신교는 특히 직업의 신성을 믿습니다. 모든 직업이 하나님의 소명이라는 사실을 믿습니다. 또 그렇게 가르칩니다. 목사직만 성직이라 하지 않습니다. 모든 직업이 신성하다고 가르칩니다. 모든 직업이 하나님의 사명이요 소명입니다. 내게 주어진 직업, 노동, 근로를 통해 하나님의 뜻을 이루고 하나님께 영광을 바쳐야 합니다. 이게 근신하여 기도하는 삶입니다. 마지막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성도에게 꼭 필요한 게 근신하여 기도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온 몸으로, 우리의 삶으로, 우리의 노동으로 기도하는 것을 주님이 바라십니다. 그렇게 사는 사람은 언제 주님이 오셔도 괜찮습니다. 부끄럽지 않습니다. 그렇게 사는 성도는 언제 주님이 오시든 칭찬하십니다. 환경미화원이 공원을 쓸고, 거리의 눈을 쓸며 이게 고된 노동이라 생각하기 보다는 하나님의 창조하신 우주의 한 모퉁이를 내가 쓸고 있다고 생각하면, 그 노동이 기도요 예배가 됩니다. 그런 삶이 신앙입니다. 신앙은 관념이나 사변이 아닙니다. 삶입니다. 근신하여 기도하라는 삶으로 기도하라입니다.
마지막으로 열심을 다해 사랑하라고 했습니다. 새해에는 열심을 다해 사랑하십시다. 오늘 본문은 이 마지막 시대를 사는 우리에게 열심히 사랑하라고 권합니다. 왜냐면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기 때문입니다. 이 말씀이 중요하지 않습니까? 우리에겐 허물이 많습니다. 예수 믿는다고 천사 되지 않습니다. 정말 믿지 않는 사람 못지않게 한 술 더 떠서 하나님 앞에서 악하게 삽니다. 그런데 우리가 열심히 사랑하면 우리의 모순과 허물이 그 사랑에 가려져서 하나님 눈에 발견이 안 된다는 뜻입니다. 돼지가 아무리 더러워도 흰눈이 풍성히 내리면 세계가 순백의 세계가 됩니다. 마찬가지로 우리의 허물이 많아도 우리가 이웃을 열심히 사랑하면 그 사랑으로 우리의 허물과 죄악이 덮여서 하나님이 우리를 보실 때 사랑의 대상으로만 보인다는 겁니다. 올해는 좀 더 주님을 뜨겁게 사랑하십시다. 이웃을 좀 더 열심히 사랑합시다. 그래서 오직 우리가 사랑의 대상으로만 하나님 앞에서 발견 되십시다. 그래서 여러분이 바라는 모든 소망을 누리고, 은혜를 누리는 복된 가정이 되시길 진심으로 기원합니다.
설교영상보기:http://tvpot.daum.net/clip/ClipViewByVid.do?vid=QF_kI8H3K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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