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교회 아카이브

날은 저물고 배는 흔들리는데

올해는 어느 나라나 세밑 풍경이 우울하고 쓸쓸한 것 같습니다. 미국 부의 중심인 월가에는 일찌감치 된서리가 내렸고, 유로존 여러 나라들도 부도 위기와 신용등급 강등으로 그동안 연말을 들썩이게 했던 지구촌 각국의 성탄 분위기가 착 가라앉았습니다. 우리나라도 크리스마스 캐럴 듣기가 이렇게 어려운 해가 있었던가 싶을 만큼 차분하다 못해 고요하기까지 하고, 정부의 겨울철 전력차질 예방 조치로 상가들이 성탄트리마저 제한 조명을 하는 바람에 더욱 썰렁하기만 합니다.


아침 해 뜨는 시각이라면 몰라도 저녁 어스름에 뱃길을 나선다는 건 웬만한 사정이 아니고서는 흔치 않은 일입니다. 그럼에도 주님은 제자들에게 <바다 저편으로 건너가자>고 하셨고, 제자들도 아무런 문제제기 없이 주님의 뜻을 따라 나섰습니다. 일기가 그닥 나쁘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예상은 곧 빗나가고 말았습니다. 배가 바다 한가운데 쯤 이르렀을 때 갑자기 거센 바람이 일고 집채만한 파도가 덮쳐 순식간에 배가 뒤집힐 듯한 경각의 위기에 직면하고 만 것입니다. 그런데 더욱 이해할 수 없는 것은 주님의 모습입니다. 제자들이 졸지에 만난 풍랑과 사투를 벌이고 있는 동안 주님은 뱃고물에서 세상모른 채 주무시고만 계신 것입니다. 그 돌발적인 위기 앞에서 당황하여 이리 뛰고 저리 닫던 제자들이 드디어 천연덕스레 주무시고 계신 주님께로 달려가 힐난하듯 도움을 청했습니다. <우리가 다 죽게 되었는데도 잠만 주무시고 계십니까?> 당황스럽기는 그 다음도 마찬가지입니다. 잠에서 깨어나신 주님이 즉각 바람과 파도를 잠재우신 후 어떻게 하셨습니까? 되레 제자들을 책망하시며 안타까워 하셨습니다. <어찌하여 이렇게 무서워하느냐 너희가 어찌 믿음이 없느냐>(막 4:40). 그렇습니다. 여기서 주님이 지적하신 것은 바로 제자들의 그 <두려움>이었습니다. 실은 그게 바로 위기 앞에서 믿음을 꺾는 적이요, 소망의 불을 끄는 바람이자 신앙의 배를 뒤집어엎는 파도며 기도의 능력을 가로막는 칠흑 같은 밤바다라는 것입니다. 실제 그날 제자들이 만난 그 풍랑은 그들의 모든 것을 무용지물로 만들어 버렸습니다. 바다에 대한 풍부한 지식과 경험도, 어부 출신의 노련한 뱃기술도, 일기를 예측하는 능력도 다 소용없었습니다. 그래서 주님이 더욱 <두려움 없는 믿음>을 강조하신 것입니다. 살인적인 파도 앞에서도 우왕좌왕하지 않고 평정을 지키는 믿음, 사람의 힘으로는 더 이상 어쩌지 못하는 상황을 담담히 하나님께 의탁하는 결단, 이런 것이 바로 험한 밤바다를 건너는 사람들에게 요구되는 필수 덕목이라는 것입니다. 


경기지수가 여전히 주름 깊은 하강국면입니다. 새해에 대한 암울한 전망 때문에 사람들이 더욱 두려워하며 떨고 있습니다. 이런 때일수록 바람에 훅 날리거나 시간 속에 쉬 사라져 버릴 것들을 붙잡고 그것에 의지하려는 어리석은 생각을 버려야 합니다. 제가 사는 동네 초입에 놓인 헌옷 수집박스에 최근 이런 내용의 찌라시 두 장이 붙었습니다. <신용카드 발급대행 … 신용불량자 100% 가능! … 010 …>, <못 받은 돈 대신 받아드림 … 성공률 100% 보장! … 010 …> 그러잖아도 전 요즘 목도리를 칭칭 감고 사는데 이 광고를 보자 온몸이 더욱 움츠러들었습니다. 잊지 마십시오. 혹여 세상 모든 것이 다 무너진대도 주님에 대한 깊은 신뢰와 믿음만 있다면 이 겨울에도 결코 저 어두운 밤바다를 헤매는 일은 없을 것이고, 아무리 배가 흔들린다 해도 우리는 마침내 바다 건너편 포구까지 안전하게 가 닿을 것입니다. 때로는 버겁고 때로는 아픈 상처라 해도 이 겨울 우리의 저린 가슴에 저 호남 서해에 내린 눈만큼이나 넉넉한 순백의 새 살이 돋아났으면 좋겠습니다.


잿빛 하늘이 유난히 낮게 내려앉은 오늘, 날은 저물고 배는 흔들리지만 친구여, 그대의 창가에도 지금 따뜻한 흰 눈이 내리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