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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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약성서의 첫 책인 마태복음은 지루할 정도의 긴 족보 얘기로 시작되면서 주님이 곧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임을 밝히고 있습니다. 아브라함과 다윗의 위상이 유대인들의 역사와 정신에 어떤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지는 의문의 여지가 없습니다. 아브라함은 믿음의 조상으로 긴 유대 역사의 실마리를 풀어 낸 위대한 하나님의 사람이자 하나님이 유대 민족의 미래를 위해 주신 약속의 시원(始原)이기도 했습니다. 또한 다윗은 분열돼 있던 약소민족을 하나로 통합하고 왕조를 굳건히 하여 유대 민족의 무한한 긍지를 세운 지도자이며 이스라엘 역사를 통틀어 다시없을 성군의 모델로 떠받들어져 온 인물입니다. 따라서 마태복음이 주님을 그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이라고 밝힌 것은 그가 단순히 나사렛 깡촌의 보잘 것 없는 목수가 아니라 실은 이처럼 화려한 후광을 지닌 비범한 인물이라는 사실을 강조하려는 데 그 뜻이 있지 않았나 하는 생각을 갖게 합니다. 실제 오랫동안 마태복음의 족보는 그런 방식으로 이해되어 왔고, 예수라는 존재가 혈통적으로는 유대 역사의 적자요 또 옛 다윗왕조의 영화를 재건할 사명과 자격을 갖춘 유일한 메시야임을 강조하는 의도로 받아들어져 왔습니다. 그렇다면 정말 인간의 혈통적 우수성과 계보의 정통성을 근거로 주님의 <하나님의 아들> 되심을 증거하려 한 것이 그 족보의 진정한 목적이었을까요?
그게 사실이라면 주님의 족보도 한낱 가문의 역사를 허구와 과장으로 조작해 놓은 고대 왕조사의 신화와 별반 다를 게 없어 보입니다. 그것은 결국 주님의 보잘 것 없는 출신성분이 선교에 걸림돌이 될까봐 <실은 이런 계보를 가진 인물>이라는 식으로 선전한 것에 불과하며, 또 얼마나 자신이 없었으면 그렇게 아브라함이나 다윗의 권위를 업어야 비로소 주님의 위상이 높아질 거란 생각을 하게 됐을까요? 그 발상이 참 통속적입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이삭을 낳고 이삭은 야곱을 낳고>란 결코 할아버지와 아들, 손자로 이어지는 물리적 계보가 아닙니다. 아브라함은 원래 이삭을 기대할 수 없었습니다. 이삭이 아브라함의 아들로 태어났다는 것은 백세가 된 아브라함의 육신적인 조건으로서는 도저히 불가능한 일이었습니다. 기대하고 꿈꿀 수 없었던 생명과 탄생의 기쁨이 하나님의 은총으로 이루어진 것입니다. 아브라함의 위대함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총이 <낳고>를 가능케 하셨다는 겁니다. 야곱 또한 그렇습니다. 영영 잃어버릴뻔한 아들이었습니다. 형 에서의 보복을 피해 오랜 세월 외삼촌 라반의 집에서 지낸 나머지 <이삭이 에서를 낳고>로 기억되며 그의 이름은 영영 묻히고 말 운명이었습니다. 그러나 얍복나루터에서 밤새 처절하게 하나님과 씨름한 후 마침내 새로운 탄생을 경험하고 새 이름까지 얻습니다. 들판을 방황하며 쓸쓸하게 인생을 마감하고 말았을지도 모를 야곱의 운명에 하나님이 개입하사 <이삭이 야곱을 낳고>라는 초유의 반전을 가능케 한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이제 비로소 마태복음의 족보가 고백하고자 하는 참 뜻이 보다 분명해졌습니다. 주님의 탄생이야말로 인간의 연약함, 추악한 죄, 좌절, 탐욕의 탁류가 쓸고 간 자리에서는 도저히 기대될 수 없었던 하나님의 역설적인 <낳음>의 은총이였다는 것입니다. 낳아 마땅한 것이 결국 성취된 사건이 아니라 인간의 눈으로 볼 때는 도저히 불가능하다고 여긴 시간과 자리에서 예기치 않게 이루어진 하나님의 역사였다는 것입니다. 이게 바로 하나님의 아들이 지니신 진정한 권위입니다. 이게 바로 예언의 소리조차 수백 년 동안 들리지 않던 칠흑 같은 시대의 깊은 나락에서 온갖 사탄의 짓누름과 권세를 정면으로 돌파해 버리신 하나님의 그 우렛소리와도 같은 힘의 정체입니다. 따라서 주님은 아브라함과 다윗보다도 훨씬 더 위대하신 우리의 진정한 구주시라는 겁니다. 그분은 반역과 타락의 검은 강이 흐르며 퇴적시켜 온 인간사의 온갖 추악함과 절망의 두꺼운 지층을 뚫고 탄생하사 하나님의 헤아릴 수 없는 경륜과 은총을 증거하며 사셨습니다. 이렇듯 하나님은 인류의 죄악된 역사 그 밑바닥에서 아무도 기대하지 못했던 희망의 불꽃, 예수 그리스도를 탄생시키신 겁니다. 성탄절을 앞두고 그 어떤 조건에서도 <낳고>를 가능케 하신 하나님의 이 성총이 우리 인생에 꺾이지 않는 힘의 원천이 되길 진심으로 기원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