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이여(전 11: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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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 12. 10
청년이여
전 11:9-10
요즘 우리 사회 청년들의 모습이 여러 가지로 기성세대들의 우려를 사고 있습니다. 인내하는 모습, 시련을 겁내지 않는 침착함, 어려움 앞에서도 당황하지 않는 용기 등이 너무 빈약해 그저 쉽게 분노하고 작은 일에도 짜증을 부리는가 하면 포기가 너무 빠르고, 주저 없이 욕망을 채우고, 오직 가벼운 읽을거리와 볼거리만을 즐기므로 갈수록 경박해 지는 듯한 모습이 부모세대를 안타깝게 한다는 것입니다. 이렇게되면 인간 내면의 여러 어려움들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자기 멋대로인 극단한 이기주의자가 될 소지가 크며 남에게 상처를 입히고도 그걸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하는 개념없는 존재가 될게 뻔하기 때문입니다.
어린 때를 즐거워하라
<청년이여 네 어린 때를 즐거워하며 …>(9절).
이것은 청년시절의 허망한 일들을 마음껏 즐겨보라는 일종의 반어적 표현입니다. 주님이 제자들에게 <이제는 자고 쉬라>(막 14:41)고 하신 것처럼 <네가 하고 싶은 것 다 해 봐라 네 젊은 나의 허황되고 어리석은 꿈을 마음껏 즐겨봐라>한 것인데, 이것은 청년의 혈기로 방탕하게 제 멋대로 사는 삶이 얼마나 어리석고 공허한 것인가를 스스로 깨닫게 하기 위한 역설적인 충고입니다.
사탄은 특히 세상 물정을 모르는 청년의 <어린 때>에 관심이 많습니다. 그래서 친절한 조언을 아끼지 않으며 황당한 목표를 설정하는 일에도 적극 가담합니다. 그리고 무작정 그 목표를 향해 돌진하게 하고, 그 길을 가로막는 모든 것에 가차 없이 맞서게 합니다. 청년의 때를 주의하십시오. 자신의 무한 욕망을 채우는 일이 전부여서는 안 됩니다.
눈이 보는대로 행하라
<… 네 청년의 날들을 마음에 기뻐하여 마음에 원하는 길들과 네 눈이 보는대로 행하라>(9절).
이 역시도 반어적인 충고입니다. 사탄은 청년들에게 항상 < 보암직하고 먹음직하며 탐스러운> 것으로 유혹합니다. 어떻게든 저것을 네 수중에 넣는 것만이 세상살이에서 살아남는 길이라며 속삭입니다. 서슴치 말고 경계선을 넘고 둘러쳐진 철책에도 찌르는 가시나 너를 해칠 아무런 장치도 없다며 꼬입니다. 본디 청년들의 한계와 그 생각의 뿌리는 <가장 손쉽게 행복을 얻는 길을 찾고 추구하려는 마음>입니다. 따라서 사탄의 미혹은 절묘하게 청년들의 그것과 만나 태연히 선악과를 범하는 데 공모합니다. 내 눈에 보이는 것이라고, 심히 유혹적이라고 다 딸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결국 아무리 무화과나무 잎으로 자신을 가리고 동산나무 사이에 숨어도 가리고 숨긴 그 치부가 다 드러나고 말 부끄러운 날이 오고야 말 것입니다.
하나님의 심판이 있음을 알라
<… 그러나 하나님이 이 모든 일로 말미암아 너를 심한파실 줄 알라>(9절).
이제 현자가 가장 하고 싶었던 충고가 분명해졌습니다. 이 말씀이야말로 청년들의 분방한 삶과 정욕에 재갈을 물리는 결정타가 아닐 수 없습니다. 어떤 식의 삶을 어떤 내용으로 살든 그것은 네 자유고 선택이지만 그러나 그 결과에 대한 하나님의 엄중한 결산과 심판만은 잊지 말라는 준엄한 충고입니다. 따라서 청년들은 <어릴 때>, <젊은 날>에 누린 온갖 육신의 쾌락과 감각적인 즐거움이 인생 최후의 날에 자신에게 임할 하나님의 진노가 되지 않도록 힘써야 합니다. 현자는 이를 위해 몸과 마음을 잘 살피고 바르게 관리하라고 권면합니다.
<악이 네 몸에서 물러가게 하라!>(10절). 부디 현자의 권고를 멸시하지 마시고 <청년의 때>를 더욱 아름답게 지키는 복 된 젊은이들이 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