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백과 확신(삼상 7:1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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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12월 4일 주일낮예배/대강절 둘째주일
본문: 삼상 7:12-14
제목: 고백과 확신
[12] 사무엘이 돌을 취하여 미스바와 센 사이에 세워 이르되 여호와께서 여기까지 우리를 도우셨다 하고 그 이름을 에벤에셀이라 하니라 [13] 이에 블레셋 사람들이 굴복하여 다시는 이스라엘 지역 안에 들어오지 못하였으며 여호와의 손이 사무엘이 사는 날 동안에 블레셋 사람을 막으시매 [14] 블레셋 사람들이 이스라엘에게서 빼앗았던 성읍이 에그론부터 가드까지 이스라엘에게 회복되니 이스라엘이 그 사방 지역을 블레셋 사람들의 손에서 도로 찾았고 또 이스라엘과 아모리 사람 사이에 평화가 있었더라
특히 우리 그리스도인이 잊지 말아야 하고, 마음에 깊이 새겨야 할 몇 가지 신념이 있습니다. 그 첫째는 <에벤에셀>입니다. 이 말은 여호와께서 여기까지 우리를 도우셨다는 뜻입니다. 에벤에셀은 지나온 시간들에 대한 감사의 고백입니다. 숱한 위기와 우여곡절 가운데서 오늘 여기까지 인도해 주신 하나님의 사랑을 생각하며 세운 감사의 돌비석이 에벤에셀입니다. 역사적으로 보면 이때는 참 혼란스러웠습니다. 사사시대에서 왕정시대로 넘어가는 과도기였습니다. 지금까지는 하나님이 사사를 통해 직접 통치하던 신정시대였습니다. 그러나 이제 왕이 등장하여 군주시대로 넘어가는 혼란한 때였습니다. 그러한 과도기 곧 지도력에 공백이 오고, 나라가 어수선한 틈을 타 블레셋이 침공하여 여러 성읍을 빼앗고, 심지어 하나님의 법궤마저 빼앗아 갔습니다. 그런데 지금까지 이스라엘을 이끌어 오던 엘리 제사장이 죽자 그 후임으로 사무엘이 백성의 지도자가 됩니다. 사무엘은 하나님의 각별한 총애를 입습니다. 그는 강직하고 경건한 기도의 사람이었습니다. 나라 형편이 많이 달라졌습니다. 13절 이하입니다. “이에 블레셋 사람들이 굴복하여 다시는 이스라엘 지역 안에 들어오지 못하였으며 여호와의 손이 사무엘이 사는 날 동안에 블레셋 사람을 막으시매.” 그뿐 아닙니다. 평화를 보장해 주셨다고 합니다. 그러니 얼마나 감사한 일입니까? 그래서 감사의 돌비를 세우고 고백한 말이 바로 <에벤에셀>입니다. 여러분도 오늘 지난 한 해를 돌아보시며 여기까지 나와 우리 가정을 인도해 주셨구나 하면서 감사의 돌비를 세우실 수 있겠습니까? 이사야 41장 14절입니다. “버러지 같은 너 야곱아, 너희 이스라엘 사람들아 두려워하지 말라 나 여호와가 말하노니 내가 너를 도울 것이라.” 이전의 개역성경을 보면 “지렁이 같은 너 야곱아”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다 지렁이 같은 존재들입니다. 따라서 주님이 도우시고, 주님이 당신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우리를 붙드시고 수시로 우리를 두려워 말라며 격려하지 않았다면 우리는 여기까지 올 수 없었을 겁니다. 물론 우리 가운데는 항변하고 싶은 분도 있을 겁니다. 무슨 놈의 은혜가 그렇게 고통스럽고 처절하고 아프냐고 말입니다. 그러나 그것도 다 은혜입니다. 이렇게 해석하셔야 합니다. 망할 게 뻔한데도 그냥 뒀어야 합니까? 저주를 자초하는 일인데도 그냥 방치해야 했습니까? 정말 하나님이 우리를 그렇게 하기를 바라십니까? 때리고 꼬집어서라도, 깊은 절망에 빠트려서라도 제 정신을 차리게 하는 것, 이것이 은혜입니다. 누가 뭐래도 에벤에셀의 하나님이심을 확신하고 고백하고 감사하며 기념비를 세우시기 바랍니다. 올 한 해 하나님이 우리에게 어떻게 하셨다 해도 우리에겐 다 축복입니다. 올해는 순전히 에벤에셀의 하나님의 은혜와 인도로 여기까지 왔습니다. 그러니 오늘 진심으로 감사하며 하나님의 성호를 찬양하시기 바랍니다. 그랬더니 적들이 굴복하고 빼앗겼던 성읍들을 되찾고 평화가 임합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에벤에셀의 비석을 세우고 이런 축복들이 나타납니다. 비석은 12절에 세웠는데 하나님의 복은 13절부터 나옵니다.
다음은 <임마누엘>입니다. 마태복음 1장 23절입니다.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의 이름은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하셨으니 이를 번역한즉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 함이라.” 임마누엘은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신다는 뜻입니다. 주님이 나와 지금 함께 하신다는 고백과 확신이 임마누엘입니다. 에벤에셀이 지난 세월의 감사라면, 임마누엘은 지금 이순간 나와 함께 하는 하나님에 대한 감사와 확신입니다.
임마누엘의 하나님을 가장 극적으로 체험한 사람은 야곱일 것입니다. 형을 등쳐서 장자권을 빼앗고, 눈 먼 아버지를 속여 장자의 축복을 가로챈 야곱이 형을 피해 망명길에 오릅니다. 첫날 밤 외로움과 두려움에 떨며 황량한 벌판에서 노숙하다가 꿈을 꿉니다. 하늘에서 사닥다리가 나타나더니 천사들이 그 사닥다리를 오르락내리락 합니다. 뒤이어 하나님이 나타나셨습니다. 성경에서 임마누엘을 이렇게 입체적으로 그림처럼 표현한 곳은 없습니다. 그날 벧엘의 사닥다리는 야곱이 하나님을 뵙기 위한 사다리가 아니라, 하나님이 야곱을 만나기 위해 하늘에서 내려오는 사다리입니다. 사다리는 위로 올라갈 때 필요한 것입니다. 그러나 야곱의 사닥다리는 하나님이 야곱을 만나기 위해 하늘에서 땅으로 내려올 때 쓰는 사다리입니다. 거기서 하나님이 야곱에게 약속을 하십니다. 창세기 28장 15절입니다.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너를 지키며 너를 이끌어 이 땅으로 돌아오게 할지라 내가 네게 허락한 것을 다 이루기까지 너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신지라.” 야곱의 망명길에도 하나님이 함께 하셨고, 또 야곱이 어디를 가든지 동행하겠다고 하십니다. 안전하게 아비집으로 돌아오게 하마 약속하셨습니다. 임마누엘을 다짐하고 맹세하고 약속해 주셨습니다. 그후 30년간 객지생활 동안 한 번도 하나님은 야곱을 떠나신 적이 없습니다.
모세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모세가 하나님께 나는 입이 뻣뻣해서 지도자가 될 수 없다고 하자, 하나님이 모세에게 내가 정녕 너와 함께 하겠다고 하십니다. 실제로 40년간 하나님은 모세를 떠나신 적이 없습니다. 모세가 죽고 여호수아가 후계자가 됩니다. 이때도 하나님이 임마누엘을 약속하십니다. 여호수아 1장 5절입니다. “네 평생에 너를 능히 대적할 자가 없으리니 내가 모세와 함께 있었던 것 같이 너와 함께 있을 것임이니라 내가 너를 떠나지 아니하며 버리지 아니하리니.” 여호수아 1장을 보면 계속 이런 말씀이 나옵니다. 다윗은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신다’고 했습니다. 마태복음 28장 20절에는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함께 하겠다’고 하셨습니다. 항상 함께 하시는 것이 임마누엘의 극치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항상 함께 하는 하나님이 내게 날벼락을 내렸다고 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결국 내게는 은혜요 덕이 됩니다. 하나님을 향해 흥하며 코웃음 치지 마십시오. 내 어떤 아픔도 내게 은혜와 복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놀라운 반전을 베푸십니다. 이 대강절에 임마누엘의 하나님을 확신하십시오. 내가 하나님을 버렸으면 버렸지 하나님은 안 버리십니다. 내가 하나님의 잡은 손을 놨으면 놨지 하나님이 내 손을 놓는 법은 없습니다. 우리는 항상 자기가 하나님을 버려놓고 하나님이 나를 버렸다고 생각합니다. 주님이 세상 끝날까지 나와 함께 하겠노라 약속하셨으니 무조건 믿으십시오. 감사하십시오.
마지막으로 <여호와 이레>입니다. 에벤에셀이 지난날에 대한 감사요, 임마누엘이 지금 나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에 대한 고백이라면, 여호와 이레는 미래에 대한 약속이요 감사입니다. 여호와 이레는 여호와께서 준비하신다는 뜻입니다. 창세기 22장 14절입니다. “아브라함이 그 땅 이름을 여호와 이레라 하였으므로 오늘날까지 사람들이 이르기를 여호와의 산에서 준비되리라 하더라.” 아브라함의 믿음은 <여호와 이레>에 대한 믿음이었습니다. 무작정 고향과 친척, 아비집을 떠났는데 가나안을 예비하셨습니다. 백 세 되도록 자식이 없었는데 하나님은 이삭을 준비하고 계셨습니다. 2012년이 성큼 다가왔습니다. 새해를 어떻게 전망하십니까? 불확실성 때문에 많이 불안하십니까? 내년에 총선이 있고, 연말에 대선이 있어서 얼마나 사람을 피곤하게 하고 못 살게 할까 걱정입니다. 여호와 이레를 굳게 붙잡읍시다. 여호와께서 새해에도 여러분 가정의 안녕과 평안을 최상으로 준비하실 줄 믿으십시오.
그런데 여기에는 한 가지 중요한 전제가 있습니다. 이삭을 바쳐야 합니다. 이삭은 가장 소중한 보물입니다. 이게 없어지면 내게 끝장이라고 생각되는 게 다 이삭입니다. 아브라함에게 이삭은 정말 자기 목숨보다 소중했습니다. 그럼에도 일말의 항변도 없이 하나님이 바치라고 하니 이삭을 하나님께 바칩니다. 아브라함이 모리아산에 제단을 만들고 이삭을 결박해서 제단 위에 아들을 뉘여 칼을 뽑아 아들의 목에 갖다 댑니다. 아브라함이 제단 위에서 목을 땄습니까? 안 땄습니까? 죽인 겁니다. 쇼한 거 아닙니다. 마지막 순간에 결국은 하나님이 말릴 것이다고 기대하지 않았습니다. 칼을 뽑았습니다. 이삭 목에 갖다 댔습니다. 정말 죽일 겁니다. 셋, 둘, 하나 하고 쇼하지 않았습니다. 아브라함의 믿음과 결단 속에는 이미 이삭이 죽은 겁니다. 내가 완벽하게 죽여도, 번제로 다 살라 바쳐도 하나님은 이삭을 살려주실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랬기 때문에 굳이 칼에 피를 묻힐 필요가 없다고 해서 하나님이 말리신 겁니다. 하나님이 인정하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사람의 고기를 즐기는 분이 아니십니다. 사람의 피에 목마른 분이 아닙니다. 오히려 하나님은 우리의 사랑과 믿음에 항상 허기진 분이십니다. 여러분, 분위기나 폼만 잡지 마시고 정말 여러분이 소중하게 여기는 이삭을 가차없이 바치십시오. 그러면 그 반대급부로 하나님이 여호와 이레의 축복을 보장하십니다. 우리는 항상 쇼합니다. 표정만 그럴듯하게 짓습니다. 부디 여호와 이레의 축복을 꼭 새해에도 또한 여러분의 생애에도 누리게 되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이 이삭을 바쳤을 때 아브라함에게 말씀하시기를, ‘이제야 네가 나를 사랑하는 줄 알겠노라. 네가 독자까지 바쳤으니 네 씨가 하늘의 별, 바다의 모래처럼 많게 하리라’고 하십니다. 이런 복이 여러분께 임하기를 빕니다.
설교영상보기: http://tvpot.daum.net/clip/ClipViewByVid.do?vid=CuKboF80tw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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