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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p1">2011. 11. 26</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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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p1">삶의 즐거움</p>
<!-- paragraph:p0003 -->
<p class="p1">전 9:9-18</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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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p2"><br></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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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p1">하나님은 우리의 삶의 즐거움을 시샘하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오히려 즐거움을 보장하시고 축복해 주시는 분이십니다. 삶의 흥을 깨시는 분이 아니라 오히려 북돋우시는 분이십니다. 유대인들이 주님을 비난할 때 &lt;먹고 마시기를 즐기는 사람&gt;이라고 했는데 그건 사실이었습니다. 천국은 상가집이 아니라 찬치집입니다. 실제 주님은 천국을 자주 잔치집에 비유하셔습니다. &lt;에덴&gt;이란 말도 &lt;즐거움&gt;이란 뜻입니다.</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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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p2"><br></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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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p1">부부생활의 즐거움</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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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p1">&lt;네 헛된 평생의 모든 날 곧 하나님이 해 아래에서 네게 주신 모든 헛된 날에 네가 사랑하는 아내와 함께 즐겁게 살지어다. 그것이 네가 평생에 해 아래에서 수고하고 얻은 네 몫이니라&gt;(9절).</p>
<!-- paragraph:p0009 -->
<p class="p1">주님은 가나의 혼인집에서 공생애 첫 이적을 행하셨습니다. 하필이면 왜 혼인집에서 물로 포도주를 만드신 사건을 첫 이적으로 삼으셨을까요? 천국의 본질, 하나님 나라의 성격을 계시하시기 위해서였을 것입니다. 즉, 행복한 가정, 행복한 부부의 즐거움이 곧 천국의 기쁨이라는 것입니다. 천국의 즐거움을 이 세상 그 어떤 즐거움에 비교할 수 있겠습니까만 그래도 부부의 행복, 부부의 즐거움이 가장 천국의 그것에 근사하다는 뜻일 것입니다. 바울은 주님과 교회의 관계를 부부관계에 비유했고, &lt;사람이 부모를 떠나 그의 아내와 합하여 그 둘이 한 육체가 될지니 이 비밀이 크다&gt;(엡 5:31-32)고 했습니다. 부디 행복한 부부가 되셔서 천국의 즐거움을 이미 이 땅에서 누리는 복된 가정이 되십시오.</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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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p2"><br></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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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p1">노동의 즐거움</p>
<!-- paragraph:p0012 -->
<p class="p1">&lt;네 손이 일을 얻는 대로 힘을 다하여 할지어다 네가 장차 들어갈 스올에는 일도 없고 계획도 없고 지식도 없고 지혜도 없음이니라&gt;(10절).</p>
<!-- paragraph:p0013 -->
<p class="p1">이스라엘 사람들은 노동을 축복으로, 신성한 것으로 여겼습니다. 그래서 평생 남을 가르치며 사는 랍비들도 반드시 기술을 하나씩 익혀야 했습니다. 학자 출신인 바울 같은 사람도 장막 짓는 장인이지 않았습니까? 이스라엘의 속담에 &lt;자식에게 노동을 가르치지 않는 것은 도둑질을 가르치는 것이다&gt;는 말이 있습니다. 주님도 &lt;아버지께서 지금까지 일하시니 나도 일한다&gt;고 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일하지 않는 사람은 안식할 권리도 없습니다. 엿새 동안 힘껏 일한 사람만이 이레째 쉴 자격이 있습니다. 우리 개신교는 직업의 신성을 믿습니다. 모든 노동과 근로가 주님의 소명이라는 것입니다. 노동에서 즐거움을 누리시고 행복을 느끼십시오. 노동이 노역이 아니라 주님의 은혜요 소명이라고 믿으면 누구나 기쁨과 보람을 체험할 수 있습니다. 요즘 같은 늦가을 거리나 공원의 낙엽을 쓸면서도 그게 고된 노동이 아니라 하나님이 창조하신 우주의 한 모퉁이를 쓸고 있다고 믿으시면 그 노동이야말로 가장 위대한 하나님의 소명이 되는 것입니다. 부디 노동의 즐거움을 통해 하나님을 더욱 영화롭게 하십시오. 노동이 고역이 아니라 즐거움이 되고 행복이 되도록 노동의 신성을 확신하십시오.</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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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p2"><br></p>
<!-- paragraph:p0015 -->
<p class="p1">지혜의 즐거움</p>
<!-- paragraph:p0016 -->
<p class="p1">&lt;또 내가 하나님의 모든 행사를 살펴 보니 해 아래에서 행해지는 일을 사람이 능히 알아낼 수 없도다 사람이 아무리 애써 알아보려고 할지라도 능히 알지 못하나니 비록 지혜자가 아노라 할지라도 능히 알아내지 못하리로다&gt;(17절).</p>
<!-- paragraph:p0017 -->
<p class="p1">작은 성읍이 있었습니다. 사람들이 많지 않았습니다. 장정들이 있어야 성읍을 지킬 수 있는데 거기에는 장정들이 없어 전쟁이 나면 적에게 당장이라도 그 성읍을 내줄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런데 그 성읍에 가난했지만 지혜로운 이가 있어서 사람들이 그를 찾아가 도움을 청하자 그가 누구도 생각하지 못한 지혜로운 책략을 세우고 적과도 협상하여 평화조약을 이끌어 냄으로써 그 성읍의 안보를 지켜냈다는 것입니다(13-15절). 따라서 &lt;지혜가 힘보다 낫고&gt;(16절), &lt;지혜자의 말이 다스리는 자의 호령보다 나으며&gt;, &lt;지혜가 무기보다&gt;(18절) 낫다는 것입니다. 지혜의 즐거움은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고 비교할 수도 없습니다. 부디 신령한 지혜로 행복을 누리시고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십시오.</p>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