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교회 아카이브

심는 자와 거두는 자

주님의 말씀이 충격적입니다. <내가 너희로 노력하지 아니한 것을 거두러 보내었노니 다른 사람들은 노력하였고 너희는 그들이 노력한 것에 참여하였느니라>(요 4:38). 이는 내 삶이 지금 어떤 것 위에 서 있고, 내 삶에 대해 내가 무엇을 감사해야 옳은지를 밝히신 것입니다. 우리는 대개 일년 내내 수고하여 무르익은 곡식에 낫을 댈 때라든가 열심히 사업하여 많은 수익을 냈을 때, 또 수능에서 좋은 등급을 얻어 원하는 대학에 합격을 했을 때 몹시 기뻐합니다. 그러나 사실 그런 기쁨 속에는 <내가 심은 것은 반드시 내가 거두어야 한다>는 이기성이 전제돼 있습니다. 따라서 거기에는 홀로 즐기는 기쁨만 있을 뿐 더불어의 기쁨은 없습니다. 극단하게 말하면 그런 사람에게는 진정한 친구도 사랑도 없습니다.  모든 사람이 다 내 수확의 수단이고 대상이기 때문입니다. 또 오늘의 성공, 오늘의 처지가 다 내 공로며 내 노력의 산물이기 때문에 누구에게도 하등 감사해야 할 이유가 없습니다. 아니, 모든 게 내 능력 내 수고의 대가인데 대체 뭘 감사하라는 겁니까? 따라서 그에게는 은총이니 은혜니 하는 개념이 전혀 무의미합니다. 그렇다면 감사하는 심정이 없는데도 과연 기쁨이란게 있을까요?

참 기쁨은 삶의 감격에서 옵니다. 또 삶의 감격이란 은총이요 은혜라는 느낌이 있을 때만 가능합니다. 자격증을 따듯 노력해서 얻거나 자기 손으로 심어 거두지 않고 거저 받는다는 데서 오히려 부담감을 느끼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인간은 본래 가장 소중한 것일수록 다 거저 받게 되어 있습니다. 건강도 심장도 생명도, 부모도 자식도 조국도, 공기 햇빛 바람, 사랑하는 사람도 다 너무 소중해서 무엇 하나 값 주고 사거나 내가 심어서 거둘 수 있는 게 없습니다. 오로지 선물로만 받을 뿐입니다. 

그런데 거둬들이는 자의 기쁨에 반해 내어주는 자의 기쁨도 있습니다. 그게 바로 심는 자의 기쁨입니다. 남을 사랑하는 자에게는 자기를 주는 기쁨이 있습니다. 그것은 나 홀로의 기쁨이 아니라 더불어의 기쁨입니다. 씨를 뿌리는 자와 열매를 거두는 자가 함께 기뻐하는 그런 기쁨입니다. 내가 심은 것을 남이 거두는 기쁨에 참여하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삶의 환희가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러나 내가 심은 것을 남이 거둔다는 사실에서 보람을 느끼는데는 심고 거두는 자체 보다도 너를 만나는 공존의 기쁨이 있습니다. 그렇다고 그것이 오직 심은 데서만 오는 기쁨은 아닙니다. <내가 너희를 보내어 너희가 수고하지 않은 것을 거두게 했다>는 것은 지금의 내 삶도 실은 내가 심지 않은 것을 거둔 것이라는 자각입니다. 오늘 내가 여기 있음은 나를 있게 한 숨은 손길이 따로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에게는 삶이 감사한 것이고 또 받은 자로서의 그 기쁨 때문에 다시 심는 것입니다. 그러나 거두는 것을 목표로 하거나 당연한 권리로 생각지 않습니다. 아니, 심는 일을 자기 할 일의 전부로 믿고 심습니다. 왜요? 자기도 거저 받았기 때문이요, 또 심는 일에서 이미 거두는 자의 기쁨을 함께 누리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그런 사람에게는 넉달 후가 아니라 지금이 바로 추수할 때입니다. 그에게는 심는 때와 추수 때가 다르지 않기 때문에 언제나 추수할 것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나는 당신이 심은 것을 거두고 당신은 내가 심은 것을 거두고>, 여기에 바로 보람과 기쁨에 찬 아름다운 삶의 원리가 있습니다. 그럼에도 우리의 현실은 늘 이와 정반대입니다. 내가 심은 것이니 내가 거두겠다는 것은 상식이고 문제는 네가 심은 것까지도 반드시 내가 거두되 수백, 수천 배까지도 거두겠다는 데서 지금 우리의 삶의 장이 극도로 황폐화 되고 있습니다.

<잘 산다>는 것은 심는 자와 거두는 자가 함께 기뻐하고 더불어 사는 삶을 말합니다. <내가 거두지도 못하는데 심으면 뭣하는가> 하는 낡은 생각을 버리고 누군가가 값지게 거둘 기쁨의 그 날을 미리 내다 보며 오늘도 묵묵히 심고 있는 당신에게 복이 있으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