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0803m: 꿩 잡는 게 매(고전 8:1-13)
읽기 설정
미리보기 인용
복사되는 내용은 인용 정보와 미리보기 주소다.
현재 미리보기 주소:
2008년 8월 3일 주일낮예배
본문: 고전 8:1-13
제목: 꿩 잡는 게 매
[1] 우상의 제물에 대하여는 우리가 다 지식이 있는 줄을 아나 지식은 교만하게 하며 사랑은 덕을 세우나니 [2] 만일 누구든지 무엇을 아는 줄로 생각하면 아직도 마땅히 알 것을 알지 못하는 것이요 [3] 또 누구든지 하나님을 사랑하면 이 사람은 하나님의 아시는 바 되었느니라 [4] 그러므로 우상의 제물 먹는 일에 대하여는 우리가 우상은 세상에 아무 것도 아니며 또한 하나님은 한 분밖에 없는 줄 아노라 [5] 비록 하늘에나 땅에나 신이라 칭하는 자가 있어 많은 신과 많은 주가 있으나 [6] 그러나 우리에게는 한 하나님 곧 아버지가 계시니 만물이 그에게서 났고 우리도 그를 위하여 또한 한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계시니 만물이 그로 말미암고 우리도 그로 말미암았느니라 [7] 그러나 이 지식은 사람마다 가지지 못하여 어떤 이들은 지금까지 우상에 대한 습관이 있어 우상의 제물로 알고 먹는 고로 그들의 양심이 악하여지고 더러워지느니라 [8] 식물은 우리를 하나님 앞에 세우지 못하나니 우리가 먹지 아니하여도 부족함이 없고 먹어도 풍족함이 없으리라 [9] 그런즉 너희 자유함이 약한 자들에게 거치는 것이 되지 않도록 조심하라 [10] 지식 있는 네가 우상의 집에 앉아 먹는 것을 누구든지 보면 그 약한 자들의 양심이 담력을 얻어 어찌 우상의 제물을 먹게 되지 않겠느냐 [11] 그러면 네 지식으로 그 약한 자가 멸망하나니 그는 그리스도께서 위하여 죽으신 형제라 [12] 이같이 너희가 형제에게 죄를 지어 그 약한 양심을 상하게 하는 것이 곧 그리스도에게 죄를 짓는 것이니라 [13] 그러므로 만일 식물이 내 형제로 실족케 하면 나는 영원히 고기를 먹지 아니하여 내 형제를 실족치 않게 하리라
지하철 5,6,7,8호선은 도시철도공사에서 운행합니다. 지난 6월부터 각 지하철 차량마다 공익광고가 나왔습니다. 차내 상행위, 구걸, 소란, 선교행위를 신고하면 조치하겠다는 겁니다. 선교행위가 소란행위나 불법 상행위와 같이 나왔습니다. 도시철도공사도 선교 자체를 부정하는 것은 아니겠지만, 다만 선교행위가 승객들에게 피해가 되고 공공질서를 해치니까 그런 조치를 취하게 된 듯합니다. 선교행위가 제재의 대상으로 전락한 사실은 우리를 서글프게 합니다.
이렇게 된 데에 대해 우리가 반성해야 할 점은 없습니까? 저는 참으로 많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선교라고 하면, 절대 그 이상은 고려하지 않습니다. 선교가 지상목표요 지고의 선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선교라고 하면 남에게 누가 되든, 그 무엇이 되든 주저하지 않습니다. 그렇게 해서 한 사람을 얻을 때 그 무지막지한 모습에 치를 떨며 도망갈 사람이 열 명, 백 명이 된다는 사실을 인식하지 못합니다. 우리는 사실 이것을 고려하지 않습니다. 꿩 잡는 게 매이기 때문입니다. 무조건 목적만 달성하면 모든 방법이 합리화되기 때문입니다.
벌써 1년이 지났습니다. 샘물교회 선교팀이 아프가니스탄에서 피랍된 사건 말입니다. 이것이 불법적일지라도 선교이기 때문이기에 용인된다고 합니다. 국민 건강을 해치는 미국산 쇠고기 때문에 집회를 불법적으로 해도 괜찮습니다. 성경을 읽기 위해 촛불을 훔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공부만 잘 한다면 무엇이 되든 관계가 없습니다. 그러나 공부를 못하면 무엇이든 문제가 됩니다. 요즘은 예쁘면 다 용서됩니다. 연예인들 보십시오. 각 대학에서 서로 데리고 가려고 난리입니다. 왜냐면 꿩 잡는 게 매이기 때문입니다. 목적만 달성하면 어쨌든 과정이나 수단은 다 용인됩니다. 이것이 우리의 풍토입니다.
그런데 바울 시대 고린도 교회에도 이런 문제가 있었습니다. 당시에도 고기를 떳떳하게 먹는 파, 먹지 않는 파가 서로 싸웠습니다. 먹는 파는 안 먹는 파를 무식하고 유치하다고 생각했고, 안 먹는 파는 먹는 파를 사이비라고 욕했습니다. 그 때 시장에 나오는 모든 고기는 이미 제물이었습니다. 비너스 신상 곧 아프로디테 신상 앞에 바쳐진 제물이었습니다. 제물이 너무 많으니 신전에서 소화하지 못하고 시장으로 나왔습니다. 그런데 어떤 그리스도인들은 그것을 감사하며 먹었고, 어떤 사람들은 안 먹었을 뿐만 아니라 어쩌다 먹은 경우에도 심한 양심의 가책을 느끼며 그 제물로 인해 몸이 더럽혀 졌다고 괴로워했습니다. 우리가 제사음식을 모르고 먹었는데, 그것이 제사음식이라고 하면 꺼림칙해 합니다. 이 둘 중 누가 옳습니까? 여러분은 어느 편을 지지하십니까?
우선 우상의 제물인줄 알면서 당당하게 먹은 사람들 입장입니다. 한 마디로 신은 오직 하나님뿐이라는 전제입니다. 4절 하반절입니다: “우리가 우상은 세상에 아무 것도 아니며 또한 하나님은 한 분밖에 없는 줄 아노라.” 그런데도 사람들이 무지해서 있지도 않은 신을 있다고 생각하기에, 이것은 무지의 소치라는 겁니다. 따라서 우상 앞에 놓였던 제물이라 할지라도 하나님이 주신 귀한 음식이라 믿고 먹으면 다 복이 된다는 겁니다.
바울은 이런 주장을 일단 옳다고 인정합니다. 그러나 그들의 그런 지식이 전부는 아니라고 합니다. 2절입니다: “만일 누구든지 무엇을 아는 줄로 생각하면 아직도 마땅히 알 것을 알지 못하는 것이요.” 정작 그들이 모르고 있는 것은 무엇입니까? 자신들이 정당하다는 사실만 알았지, 자신들이 옳다고 믿는 그것이 남을 해칠 수 있다는 사실을 모른다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이 다 나와 같다고 볼 수는 없습니다. 다른 사람은 달리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다른 사람들이 나와 같은 지식을 가졌다고 볼 수도 없습니다: “그러나 이 지식은 사람마다 가지지 못하여 어떤 이들은 지금까지 우상에 대한 습관이 있어 우상의 제물로 알고 먹는 고로 그들의 양심이 악하여지고 더러워지느니라.”
예를 들어 자신의 신앙양심에 거리낌이 없다고 해서 드러내놓고 주초를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주초가 지옥에 가는 원인이 될 수는 없습니다. 신자면서도 떳떳하게 주초를 합니다. 그러나 오랜 한국의 문화전통 속에서 믿는 사람이 공공연히 주초를 하면 믿음이 약한 사람이 다칩니다. 이것은 죄입니다. 주초의 죄가 아니라 형제를 시험에 빠트린 죄입니다. 12절입니다: “이같이 너희가 형제에게 죄를 지어 그 약한 양심을 상하게 하는 것이 곧 그리스도에게 죄를 짓는 것이니라.” 우리는 분명 자유인입니다. 그러나 내가 내 자유를 행사할 때 반드시 남을 배려해야 합니다. 내가 당당하고 떳떳하게 처신하는 행위나 행동이 남을 해칠 수도 있지 않을까, 다른 이가 시험에 들 수도 있지 않을까를 고려해야 합니다. 남에게 덕이 되어야 한다는 겁니다. 우리는 흔히 나만 정직하고 좋으면 된다고 생각하나 남의 유익도 고려해야 합니다. 이것이 진정한 신앙양심의 자유입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이 부분이 너무 약합니다. 이런 사람을 성경은 아직도 마땅히 알아야 할 것을 모르는 사람이라고 합니다. 먹을 수 있냐 없냐만 따지지 말고 먹을 수 있는 내 자유보다 이웃에게 미칠 영향을 생각해야 합니다.
전에 캐나다 선교사 한 분이 모 신학교에 와서 교수로 재직했습니다. 그가 가장 적응하기 어려웠던 것이 술 담배 문제입니다. 그분은 캐나다에 있을 때 주초를 즐겼던 사람입니다. 방법이 없습니다. 몰래 몰래 술 마시고 담배를 피웠습니다. 결국 학생들에게 걸렸습니다. 석 달 만에 해직을 당했습니다. 그 교수를 몰아낼 때 학생들이 주장한 것은 어떻게 신학교수가 치사하게 숨어서 담배를 피느냐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선교사는 비겁해서가 아니라 한국의 신학생들을 배려한 것이었습니다. 자기에게는 주초가 문제될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한국 상황이 아직 용인하지 못하는 것이기에 숨어서 한 것입니다. 하지만 결국 아주 실력 있는 분임에도 하차를 하고 말았습니다.
전에 제가 학교에 있을 때 졸업반 학생이 저를 찾아와 상담을 하는데, 담배를 못 끊겠다는 겁니다. 보통 고민이 아니었을 겁니다. 저는 ‘몰래 피우라’고 했습니다. 당장에 끊으면 좋겠으나 그럴 수 없다는 데 어떻게 하겠습니까? 다른 사람을 배려해서 들키지 말고 숨어서 피우고, 가능하면 빨리 끊으라고 했습니다.
13절 하반절입니다: “그러므로 만일 식물이 내 형제로 실족케 하면 나는 영원히 고기를 먹지 아니하여 내 형제를 실족치 않게 하리라.” 바울이 채식주의자였던 것이 아닙니다. 밀림의 성자로 알려진 알버트 슈바이처 박사도 평생 고기를 먹지 않았습니다. 그분이 채식주의자가 아니라, 어렸을 때 친구와 싸웠는데, 자기 밑에 깔린 친구가 ‘나도 너처럼 고기 먹으면 너한테 안 진다’고 하니까 평생 고기를 먹지 않은 겁니다. 바울도 마찬가지입니다. 나는 고기를 먹는 것이 문제가 되지 않겠지만, 내가 고기를 먹음으로써 다른 형제가 다친다면 영원히 고기를 먹지 않겠다는 겁니다. 본문 11절입니다: “그러면 네 지식으로 그 약한 자가 멸망하나니 그는 그리스도께서 위하여 죽으신 형제라.” 내가 무시하고 비웃는 저 약한 형제를 위해서도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셨다는 말씀은 참으로 정곡을 찌릅니다. 남을 배려하며 살아야 합니다. 남이야 나로 인해 상처를 받든 말든 그 사람 사정이라고 생각하면 결코 안 됩니다.
마지막으로 고린도전서 10장 23-24절 말씀을 함께 읽고 마치겠습니다: “[23] 모든 것이 가하나 모든 것이 유익한 것이 아니요 모든 것이 가하나 모든 것이 덕을 세우는 것이 아니니 [24] 누구든지 자기의 유익을 구치 말고 남의 유익을 구하라.” 이처럼 간명하고 명쾌한 그리스도인들의 행동방식에 대한 교훈은 없습니다. 우리는 자유인이기에 모든 것을 할 수는 있으나 그 모든 우리의 행동이 남에게 다 유익은 아닙니다. 남을 먼저 배려하고, 하나님께 누가 되지는 않을지를 한번쯤 생각하고 처신해야 할 것입니다.
원문 자료와 첨부
- 미디어: 원래 주소 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