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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aragraph:p0001 -->
<p>원래 홍수로 물난리가 나면 정작 마실 물은 더 귀해지는 법입니다. <br>요즘 신자들은 목사가 넘쳐나는데도 존경할 목사가 없고, 교회가 넘쳐나는데도 다닐 교회가 없다고 한숨짓습니다. <br>역사적으로도 그렇습니다. 종교가 타락할 때는 언제나 성직자 급증현상이 나타났습니다. 고려시대 불교가 타락할 때는 고려 천지에 스님이 들끓었고, 티베트의 라마 불교가 타락했을 때는 티베트 남성의 70%가 스님이었으며, 중세 가톨릭이 부패할 때도 유럽 전역이 사제들로 넘쳐났습니다. <br>지금 우리 한국 개신교도 그와 비슷한 위기에 처한 듯합니다. 교회가 너무 많고 목사가 너무 많습니다. 그럼에도 교회다운 교회는 없고 목사다운 목사는 없다는 게 세간의 평입니다. <br>이렇게 교회에 대한 세상 사람들의 인식이 고약해진 때 2층에 다시 교회가 들어왔습니다. 흔한 5층 상가도 아니고 달랑 2층뿐인 저층 상가에 지하에도 교회, 2층에도 교회인 이 진풍경을 지역 주민들이 과연 어떻게 봐줄지 기대보다는 걱정이 앞섭니다. </p>
<!-- paragraph:p0002 -->
<p>13년 전 처음 교회를 개척하기 위해 입지를 물색하러 다니던 때가 생각납니다. 아무런 연고도 없는 이 분당에 와서 여러 날에 걸쳐 사방을 기웃거려 보았습니다. 수내동 어느 상가엔가는 같은 층에 두 교회가 나란히 있었고, 또 정자동 어느 건물에는 무려 세 개 교회가 각각 딴 살림을 차리고 있었습니다. 제게는 그런 환경이 너무도 어지럽고 멀미가 나 정말이지 길가에 차를 세우고 내려 토악질까지 했던 기억이 생생합니다. 그래서 교회가 적은 곳, 한적한 곳을 찾아다니다 결국은 저 야탑동 가장자리에서 시작하게 된 것입니다. <br>그런데 그 구역질 나도록 피하고 싶었던 &lt;한 건물 두 교회&gt;의 꼴불견을 이제와서 새삼 겪게 되다니 솔직히 허탈하기 짝이 없습니다. 술집이 아니라 교회가 들어온다는데도 기뻐하거나 반기지 못하고 도리어 이렇게 씁쓸해하는 저를 두고 혹 교인들을 빼앗기면 어쩌나 하는 우려 때문이라고 단정하지는 마십시오. 이미 어떤 분이 푸른교회가 타격을 입겠다며 염려했다지만 진심으로 저의 안타까움은 그런데 있는 게 아닙니다. </p>
<!-- paragraph:p0003 -->
<p>한국기독교 목회자 협의회라는 데서 최근 목회자 185명을 상대로 &lt;왜 개신교인구가 감소하는가?&gt;를 물었습니다. 그 결과 &lt;대외 이미지 실추&gt;라는 답이 으뜸을 차지했다는데 저 역시도 공감합니다. 저 탄천변 어느 교회는 십자가를 너무 많이 세워 저도 그곳을 지날 때 마다 눈살을 찌푸렸는데 이제 사람들이 교회 간판으로 도배된 이 미래타운 B상가를 보면서도 똑같은 혐오감을 느낄게 뻔하며 또 그런 분위기라면 이 지역 사회 선교에 과연 어떤 성과를 기대할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이 앞서는 것은 결코 저만의 헛된 기우가 아닐 터입니다. </p>
<!-- paragraph:p0004 -->
<p>그러니 어쩌겠습니까? 남의 교회에 대해, 그것도 한마디 말도 없이 계약하고, 일방적으로 들어온 교회더러 나가라 말라 할 수 없다면 하루라도 빨리 우리가 나가는 수밖에 없겠지요. 혹시라도 새로 들어오는 교회에 텃세를 부린다는 인상을 주지 않도록 주의하고 배려하는 한편 향후 우리 교회의 거취를 위해서도 더욱 기도할 일입니다. <br></p>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