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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727m: 선을 이루리라!(롬 8:26-39)

2008년 7월 27일 주일낮예배
본문: 롬 8:26-39
제목: 선을 이루리라!

[26]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가 마땅히 빌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 [27] 마음을 감찰하시는 이가 성령의 생각을 아시나니 이는 성령이 하나님의 뜻대로 성도를 위하여 간구하심이니라 [28]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29] 하나님이 미리 아신 자들로 또한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하여 미리 정하셨으니 이는 그로 많은 형제 중에서 맏아들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30] 또 미리 정하신 그들을 또한 부르시고 부르신 그들을 또한 의롭다 하시고 의롭다 하신 그들을 또한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31] 그런즉 이 일에 대하여 우리가 무슨 말 하리요 만일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면 누가 우리를 대적하리요 [32]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어 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은사로 주지 아니하시겠느뇨 [33] 누가 능히 하나님의 택하신 자들을 송사하리요 의롭다 하신 이는 하나님이시니 [34] 누가 정죄하리요 죽으실 뿐 아니라 다시 살아나신 이는 그리스도 예수시니 그는 하나님 우편에 계신 자요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시는 자시니라 [35]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핍박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협이나 칼이랴 [36] 기록된 바 우리가 종일 주를 위하여 죽임을 당케 되며 도살할 양 같이 여김을 받았나이다 함과 같으니라 [37]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 [38]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39]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아무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


28절입니다: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여기서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는 우리의 자유의지입니다. 그리고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는 하나님의 절대주권을 뜻합니다. 아무나 하나님의 택하심을 얻을 수는 없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당신의 자녀로 택하시는 겁니다. 그런데 인간의 자유의지와 하나님의 절대주권 중에서 어느 쪽에 더 무게중심을 두느냐에 따라 교파가 갈립니다. 인간의 자유의지를 강조하면 알미니안 주의의 노선입니다. 인간의 자유의지보다 상대적으로 하나님의 절대주권을 강조하면 칼빈주의의 노선입니다. 알미니안 주의에는 대표적으로 감리교, 오순절 계통, 부분적으로 침례교도 여기에 속합니다. 칼빈주의는 우리 교회가 속해 있는 장로교가 보편적입니다. 서구 전통으로 말하면 개혁교회입니다.

그러면 어째서 알미니안 주의는 인간의 자유의지를 강조하고, 칼빈주의는 하나님의 절대주권을 강조합니까? 알미니안 주의는 인간이 타락한 것은 사실이지만, 전적으로 타락한 것은 아니라고 합니다. 인간이 타락했지만 인간에게는 하나님을 사랑할 능력이 있다는 겁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의지적으로 사랑해야만 구원에 이른다는 겁니다. 그러나 칼빈주의는 그 반대입니다. 인간은 타락함으로써 완전히 망가졌다고 합니다. 전적 타락입니다. 선악과를 범하는 날에는 정녕 죽는다는 말씀 그대로 죽었다는 겁니다. 자기의지로는 하나님을 믿을 수 없다는 겁니다. 그래서 칼빈주의는 오직 하나님의 절대주권 행위인 그 뜻대로 하나님이 불러주시고,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을 사랑하게 하고, 믿게 할 때만 비로소 하나님을 사랑하고 믿을 수 있다는 겁니다. 내 의지로는 불가능합니다. 그래서 칼빈주의는 우리를 일방적으로 택하시고,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을 사랑하게 하시고, 믿게 하시는 하나님의 절대주권을 강조합니다. 예를 들어 하나님이 구원의 만두를 빚어서 잔뜩 여기 한 상 차려놓으셨습니다. 알미니안 주의는 하나님이 빚어 놓으신 구원의 만두가 비록 만인을 위한 것이지만 각자가 자신의 자유로운 의지를 발동해서 만두를 집어 먹어야 내게 구원의 만두가 된다는 겁니다. 그런데 칼빈주의는 하나님이 구원의 만두를 잘 차려 놓았다고 해도, 우리는 이미 죽은 존재이기에 내 손을 뻗어 내 입에 구원의 만두를 넣을 수 없다는 겁니다. 하나님이 내 입을 벌려서 구원의 만두를 넣어 줘야 한다는 겁니다. 하나님이 내 입에 구원의 만두를 넣어 주셔야만 합니다.

여러분은 어느 쪽이 더 그럴듯하십니까? 성경은 어떻게 말씀하고 있는지 보겠습니다. 28절을 다시 한 번 읽습니다: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여기서 “곧” 이란 말은 동일하다는 뜻입니다. 곧 이라는 단어로 인해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와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가 같다는 겁니다. 즉 인간의 자유의지와 하나님의 절대주권이 편의상 구분하긴 하지만 구분되지는 않는다는 겁니다. 두 가지가 맞물려 있다는 겁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의 선택을 받은 하나님의 자녀들입니까? 사실 이것은 모릅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영역입니다. 그러나 알 길은 있습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부르심을 받은 자는 곧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라고 했기 때문입니다. 내가 하나님을 사랑하고 있다면 틀림없이 나는 하나님의 부르심을 입은 사람입니다. 인간의 자유의지와 하나님의 절대주권은 분리되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가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입니다. 여러분이 지금 하나님을 사랑하신다면 하나님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하나님의 자녀들입니다. 하나님이 나를 당신의 자녀로 택하셨는지를 내가 알 길은 없지만, 내가 하나님을 사랑하고 있다는 사실에서 그 증거를 얻을 수 있다는 겁니다. 그래서 성경은 인간의 자유의지와 하나님의 절대주권을 분리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인간은 자꾸만 한 쪽으로 쏠립니다. 어떤 교단은 하나님의 절대주권에, 또 어떤 교단은 인간의 자유의지에 무게 중심을 둡니다. 하지만 성경은 같다고 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 보장된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은 무엇입니까? 28절 하반절입니다: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여기서 중요한 것은 ‘모든 것’입니다. 고상하고 좋은 것만이 아니라 그야말로 모든 것입니다. 약한 것, 실수한 것, 부끄러운 것, 감추고 싶은 것까지도 다 은혜가 되고 내게 덕이 되며 궁극적으로는 선이 되게 해 주신다는 것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 보장된 복입니다.

요셉의 경우를 보십시오. 아버지의 총애를 받다가 졸지에 형들의 미움을 받아 애굽 상인들에게 팔려 보디발의 집에 들어가서 종살이를 합니다. 그러다가 졸지에 억울한 누명을 뒤집어 쓰고 옥살이를 합니다. 그러다가 극적인 반전이 일어납니다. 전혀 가능성이 없었는데, 왕의 난해한 꿈을 명쾌하게 해석하면서 하루 아침에 애굽의 총리대신이 됩니다. 그동안의 뼈아픈 불행이 불행이 아니라 선이 된 것입니다. 그가 형들에게 배신을 당하지 않았다면, 노예로 팔려가지 않았다면, 그가 보디발의 아내의 유혹을 당하지 않고 또 모함을 받지 않았다면 요셉이 어떻게 애굽의 총리대신이 될 수 있었겠습니까? 모든 불행한 과정이 은혜의 과정이었던 겁니다. 팔레스틴에 극심한 가뭄이 들 때 아버지의 집을 살립니다. ‘이 때를 위해 여러분보다 한 발 앞서 나를 애굽에 보냈다’고 요셉이 고백합니다. 그러나 그 과정 과정을 들여다 보면 얼마나 배신감에 몸을 떨고 아팠겠습니까? 그러나 결국은 선으로 결론이 납니다. 하나님이 그 모든 것을 합력하여 선이 되게 하신 겁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필연이지 우연은 없습니다. 모든 것이 내게 이익이 되고 궁극적으로는 선이 됩니다. 이것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 보장된 복입니다. 바울을 보십시오. 바울이 왜 그토록 겸손한 줄 아십니까? 유대교를 신봉할 때 스데반을 돌로 쳐죽였기 때문입니다. 스데반을 돌로 죽였기에 기독교로 개종한 이후에 그토록 겸손하게 산 것입니다. 그런데 바울의 그 부끄러운 이력마저도 바울에게 덕이 되게 하신 겁니다. 바울의 몸을 찌르는 그 가시를 바울은 사탄의 저주라고 생각할 정도였는데, 후에 바울은 하나님이 자기 몸에 제동장치를 두었다고 고백합니다. 그래서 오히려 자기 몸에 가시가 있다는 사실을 감사하며 또한 자신의 약함을 자랑한다고 했습니다.

우리는 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요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모든 상황은 다 필연이며 결국 내게 유익이 되며 결국 선으로 결론 납니다. 내 구원에 이바지 할 것입니다. 불행하다고 자학하지 마십시오. 오히려 축복이라고 생각하십시오. 조금만 더 견디면 모든 것이 내게 은혜라는 사실을 온 몸으로 체험하실 겁니다. 죽은 나무에겐 비가 와도 도움이 안 되고, 거기에 거름을 주어도 도움이 안 됩니다. 그러나 살아있는 나무에는 비가 오면 그 수분을 흡수해 더 잘 자라고, 거름을 주면 자양분이 되어 더 잘 자랍니다. 하나도 버릴 것이 없습니다. 모든 것이 나무를 더 잘 자라게 합니다. 우리는 살아있는 자들입니다. 우리의 영혼은 살아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이기 때문입니다. 바람이 불면 바람불어 좋고, 비가오면 비가와서 좋고, 햇볕이 나면 햇볕이 나서 좋습니다.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룬다는 말씀은 바로 이런 뜻입니다.

어떻게 해서 궁극적으로 이 모든 것이 우리에게 선이 됩니까? 어떻게 나의 아픔이 결국에는 선이 될 수 있습니까? 26절입니다: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가 마땅히 빌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 여러분,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은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는 복을 받는데, 그 이유가 바로 성령이 우리를 위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기도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예수를 믿어도 연약합니다. 그런데 우리를 위해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기도하고 계십니다. 우리는 기도 안 합니다. 그런데 너무도 다행스럽게도 성령이 우리를 위해 중보기도하고 계십니다. 그 덕에 우리가 지금 살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의 모든 것이 결국에는 선을 이룰 것입니다.

또한 31-32절입니다: “[31] 그런즉 이 일에 대하여 우리가 무슨 말 하리요 만일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면 누가 우리를 대적하리요 [32]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어 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은사로 주지 아니하시겠느뇨.”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해 기도하고 계실 뿐만 아니라, 성부 하나님이 우리의 모든 필요를 은사로 주고 계신다고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은 필연적으로 선을 이룹니다. 하나님 아버지는 우리에게 값없이 아들을 주신 분입니다. 그런 분이 무엇이 아까워서 우리의 필요를 채워주시지 않겠습니까? 우리에게 유익한 것이라면 다 주십니다. 우리가 칼을 달라고 해서 안 주실 뿐이지, 합력하여 선을 도모하는 것이라면 무조건 다 주십니다. 왜냐면 아들까지도 주셨기 때문입니다.

34절입니다: “누가 정죄하리요 죽으실 뿐 아니라 다시 살아나신 이는 그리스도 예수시니 그는 하나님 우편에 계신 자요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시는 자시니라.” 세상에 이중 삼중으로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고 계십니다.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기도하시고, 우리를 위해 독생자를 내어주신 분이 모든 필요를 채워주시고, 예수님이 하나님 우편에서 간구하고 계십니다. 그러니까 삼위일체 하나님이 손발을 맞추어 우리를 위하고 계시는 겁니다. 그러니 누가 우리를 정죄하겠습니까?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룰 수밖에 없습니다. 35절입니다: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핍박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협이나 칼이랴.” 37절 이하입니다: “[37]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 [38]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39]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아무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 보장된 이런 은혜와 축복이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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