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교회 아카이브

우매한 자(전 7:9-12)

2011. 11. 11

우매한 자

전 7:9-12


종교적 회심, 즉 회개란 성경이 말씀하는 역설의 세계를 통해 자신의 시간을 지배해 온 현실의 허구들을 깨닫는 일에 다름아닙니다. 그리고 그렇게 이루어진 깨달음 위에서 성경적 가치관과 세계관을 자신의 삶의 신념으로 결단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강한 자가 약한 자에게, 큰 것이 작은 것에, 우매한 자가 지혜로운 자에게 굴복하는 <현실 세계의 통쾌한 반전>, 그것이 바로 성경적 파라독스가 성취하고자 하는 <하나님 나라의 새 질서>입니다. 따라서 많은 사람들이 갈채를 보내는 이른바 세속적 <성공>을 추구하는 사람들은 신앙의 세계에 매력을 느끼기가 결코 쉽지 않습니다.


벌컥 화 내는 자

<급한 마음으로 노를 발하지 말라. 노는 우매한 자들의 품에 머무름이니라>(9절).

자신의 기대가 속히 이루어지기를 바라고 시간이 지체되는 것을 참지 못하는 사람은 버럭 화를 내기가 쉽습니다. 그러나 그건 전형적인 우매자의 모습일 뿐입니다. <노는 우매한 자들의 품에 머문다>는 말씀이야말로 진리입니다. 물론 지혜로운 자의 품에도 머뭅니다. 그러나 지나가는 행인처럼 빨리 떠나는 반면 우매자에게는 노가 오래 머뭅니다. 노는 빨리 표현해서도 안 되지만 또 오래 품고 있어도 이로울 게 없습니다. <분을 내어도 죄를 짓지 말며 해가 지도록 분을 품지 말고 마귀에게 틈을 주지 말라>(엡 4:20-27). 분노를 사랑하는 연인처럼 품에 껴안고 시도 때도 없이 벌컥 벌컥 화를 내며 주변 사람들에게 상처를 입히고 자해를 일삼는 사람이야말로 정말 우매한 사람이 아닐 수 없습니다. 부디 지혜와 은혜로 자신의 혈기를 잘 다스리십시오.


옛날을 자랑하는 자

<옛날이 오늘보다 나은 것이 어쩜이냐 하지 말라 이렇게 묻는 것은 지혜가 아니니라>(10절).

틈난 나면 옛날이 좋았다고 함으로써 오늘 베풀고 계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깎아 내리는 사람은 참 미련합니다. 마치 하나님이 앞선 세대만 축복하시고 지금은 인색하셔서 모두가 불행하게 사는 것처럼 말하는 사람이야말로 정말 우매한 사람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랬습니다. 그들은 광야 40년 생활 내내 과거에 살았고, 옛 타령으로 하나님의 진노를 샀습니다. 애굽의 고깃가마와 떡을 그리워했고(출 16:3), <우리가 애굽에 있을 때에는 값 없이 생선과 오이와 참외와 부추와 파와 마늘을 먹은 것이 생각나거늘  이제는 우리의 기력이 다하여 이 만나 외에는 보이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민 11:5-6)며 모세를 원망했으며, <애굽으로 다시 돌아가자>(민 14:4)며 사람들을 선동했습니다. 이렇게 과거로, 애굽으로, 옛날로 돌아가자며 시위하는 백성들에게 하나님이 뭐라고 하셨습니까? <너희 시체가 이 광야에 엎드러 질 것이라 … 갈렙과 눈의 아들 여호수아 외에는 내가 맹세하여 너희에게 살게 하리라 한 땅에 결단코 들어가지 못하리라>(민 14:29-30). 뒤돌아 보다 영원한 소금기둥이 된 롯의 처도 있습니다. 


돈의 그늘 아래 있는 자

<지혜의 그늘 아래 있음은 돈의 그늘 아래에 있음과 같으나, 지혜에 관한 지식이 더 유익함은 지혜가 그 지혜 있는 자를 살리기 때문이니라>(12절).

세상에는 돈을 신뢰하고, 돈의 보호와 위력만 의지하면 못할 게 없고 더 바랄 게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참 많습니다. 어느 시대나 그랬지만 이 시대의 맘모니즘, 물신숭배는 이제 극에 달한 느낌입니다. <부하려 하는 자들은 시험과 올무와 여러가지 어리석고 해로운 욕심에 떨어지나니 곧 사람으로 파멸과 멸망에 빠지게 하는 것이라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되나니 이것을 탐내는 자들은 미혹을 받아 믿음에서 떠나 많은 근심으로써 자기를 찔렀도다>(딤전 6:9-10). <돈의 그늘>이 아니라 <지혜의 그늘> 아래서 사십시오. 성경의 파라독스는 우리에게 화려한 돈의 그늘을 미련없이 포기하고 오직 하나님의 지혜이신 주님의 그늘 아래서 살 것을 요구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