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교회 아카이브

남편 사용 설명서

요즘 남편들은 나이 쉰을 넘으면 누구나 아내의 힘이 상상도 못할 만큼 커진 사실에 깜짝 놀란다고 합니다. 전에는 외출 한번을 해도 눈치를 살피며 겨우 말을 꺼냈는데 이제는 남편의 동의 따윈 전혀 필요 없다는 식이고, 친구와의 전화 한 통화만으로도 2박 3일이든 3박 4일이든 스스럼없이 여행을 떠나기도 하는데 남편을 생각해 곰국이라도 끓여 놓고 가면 그나마 착한 아내고 대개는 자기가 없는 동안 지켜야 할 남편의 행동수칙 한 장만 달랑 냉장고에 붙여놓고 간다고 합니다. 이런 여성들을 <까불지마라 족>이라고 한다는데 그것은 남편의 행동지침 첫 글자를 조합한 신조어입니다.

 까 스 잘 잠그고
 불 잘 끄고
 지 퍼 딴데서 내리면 죽을줄 알아!
 마 누라 있는걸로 감사하고
 라 면이나 끓여먹고 있어!

이런 세태의 반영인가요? 최근에 출간된 책 중에 <남편사용 설명서>라는게 있습니다. 저도 책 제목이 너무 황당해 서점에 서서 잠시 보다 아예 한 권을 샀습니다.
<사용전에 꼭 읽어 보세요. 이것은 조립 완제품이 아니므로 사용자가 스스로 조립해 사용하세요. 일단 사용한 제품은 교환이나 환불이 불가하므로 웬만하면 고쳐서 쓰시기 바랍니다. 제품이 남의 편만 들거나 화를 내거나 밥만찾고 TV만 보거나 돈 얘기를 하면 돌아버리는 등의 증세는 고장이 아니니 사용설명서를 참고하세요. 또 폐기처분할 때는 꼭 전문가와 상의해 주세요.>

이게 대체 어떤 제품설명서 일까요?
<남의 편인 남편을 내편으로 만드는 뻔뻔한 매뉴얼!>이라고 뽑은 카피처럼 남편에 대한 이해와 작동법을 마치 가전제품 사용법을 설명하듯 재밌게 적어 놓은 책입니다.
요즘은 디지털 카메라나 핸드폰 하나를 사도 다 사용설명서가 있는데 왜 부부사이에는 서로의 사용설명서가 없는지, 그게 없다면 최소한 <부부싸움 예상문제집>이라든가 <기출문제 자료집>같은 거라도 한권쯤 있어야 되지 않냐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꼭 맞는 책인 것 같습니다.

저자는 특히
○ 하루 대화시간 10분 미만, 대화빈도 3회 미만의 부부
○ 아내는 하숙집 아줌마, 남편은 하숙생으로 퇴행한 부부
○ 자기의 배우자가 남들 반만 닮았으면 하고 생각하는 사람
○ 남편 보다는 벽과 대화하는게 낫다고 생각하는 사람
○ 속아서 결혼했다고 생각하는 사람
○ 하나님 말고는 내 남편을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이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
○ 한 주에도 수십 번 상상의 가방을 싸는 사람
○ 언제나 내탓이 아니라고 외치는 남편을 보고있는 사람들에게 권하고 있습니다.

<황혼이혼>이라는 말에 이어 요즘은 <사후이혼>이라는 말까지 등장했습니다. 생전에는 어쩔수 없는 악연으로 함께 살았지만 죽은 후에는 절대 함께 묻히기 싫으니 따로 잠들게 해 달라고 유언하는 사람들이 점점 늘고 있다는 겁니다. 바야흐로 이생에서의 이혼을 피했다고 안도할 수만은 없는 세상이 된 것입니다. 따라서 이제는 정말 <남편사용설명서>, <아내사용설명서>같은 부부메뉴얼이 꼭 필요할 듯도 싶지만 졸지에 부부가 무슨 제품으로 전락한 시대가 된 듯하여 뒷맛이 개운치 않은 것도 사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