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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1106n: 호흡이 있는 자마다(시 150:1-6)

2011년 11월 6일 주일오후예배/성가대 헌신예배

본문: 시 150:1-6

제목: 호흡이 있는 자마다


[1] 할렐루야 그의 성소에서 하나님을 찬양하며 그의 권능의 궁창에서 그를 찬양할지어다 [2] 그의 능하신 행동을 찬양하며 그의 지극히 위대하심을 따라 찬양할지어다 [3] 나팔 소리로 찬양하며 비파와 수금으로 찬양할지어다 [4] 소고 치며 춤 추어 찬양하며 현악과 퉁소로 찬양할지어다 [5] 큰 소리 나는 제금으로 찬양하며 높은 소리 나는 제금으로 찬양할지어다 [6] 호흡이 있는 자마다 여호와를 찬양할지어다 할렐루야


시편은 잘 아시는 대로 전체가 찬양입니다. 150편은 마지막 장인데, 1장부터 이 150편까지 다 찬양입니다. 시편의 결론이 바로 오늘 본문입니다. 여기에 찬양이란 말이 10번도 더 나옵니다. 찬양이 무엇입니까? 예배는 우리가 이 땅에서만이 아니라 천국에서도 계속됩니다. 예배는 영원합니다. 천국 가서도 우리는 영원히 예배드려야 합니다. 이 땅에서 드리는 예배는 이런저런 환경적인 요인 때문에 불완전합니다. 그러나 천국에서 드리는 예배는 가장 완전하고 완벽한 조건에서 드리는 예배입니다. 요한계시록 4장과 5장을 보면 천국에서 행해지는 예배 광경이 소개됩니다. 사도 요한이 천국에 가서 목격한 천국 예배 장면입니다. 거기에 나오는 중요한 특징이 바로 찬양입니다. 찬양으로 시작해 찬양으로 끝납니다. 요한계시록 4장 8절을 보면 네 생물의 찬양이 나오는데, 거룩하다고 하면서 밤낮 찬양을 합니다. 천군천사, 24장로, 흰옷 입은 성도들의 찬양이 나옵니다. 설교는 없어도 찬양은 압도적으로 많습니다. 존 번연이 말한 그대로입니다. 천국에는 찬양이 가득합니다. 찬양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도 우리 성도가 찬양하면 가장 행복해 하십니다. 그래서 천국에 간 앞선 성도들은 밤낮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찬양을 하는 겁니다. 


찬양은 영혼으로 부르는 신앙고백이요, 감사의 고백이요, 사랑의 고백이며, 곡조에 실어 바치는 가장 부드러운 기도입니다. 찬양은 결코 예배의 구색이 아닙니다. 찬양 자체가 이미 예배입니다. 교회가 살려면 예배가 살아야 하고, 예배가 살려면 찬양이 살아야 합니다. 찬양에 힘이 없으면 이미 그 예배는 실패입니다. 천국에 가면 목사는 거의 실업자 수준이고, 성가대원은 몸값이 천정부지일 겁니다. 성가대원은 천국 가면 희망이 있습니다. 성가대원은 이 땅에서뿐만 아니라 천국 가서도 하나님을 행복하게 하고 기쁘시게 하는 사람들이라는 자부심을 가지십시오. 더욱 성실히 성가대 활동에 임하시길 바랍니다.


어떤 사람이 하나님을 찬양할 수 있는지, 성가대원의 자격이 있는지를 확인해 봅니다. 에베소서 5장 19절입니다. “시와 찬송과 신령한 노래들로 서로 화답하며 너희의 마음으로 주께 노래하며 찬송하며.” 시와 찬미와 신령한 노래로 하나님을 찬양하는 일은 거저 되는 게 아니고, 성령 충만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음악적인 자질로 부르는 찬양에 감동하시는 게 아니라 성령 충만한 사람의 찬양을 기뻐하십니다. 그러므로 성가대원은 누구보다 성령 충만해야 합니다. 지금도 순복음 교회는 성가대원이 되려면 방언을 할 줄 알아야 합니다. 그게 성령 충만의 척도이기 때문입니다. 성령 충만한 성가대원이 찬양해야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시고, 성도들이 은혜를 받습니다. 성령 충만하지 않은 찬양은 노래는 잘 부를지 모르나 감동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성령을 소멸하면, 성령이 고갈되면 우리 입에서는 찬양이 사라집니다. 성령 충만하면 찬양하지 말라고 해도 입에서 찬양이 나옵니다. 예배시간뿐 아니라 무엇을 해도 찬양이 나옵니다. 존 번연의 천로역정을 보면 조금이라도 믿음의 길에서 뒤쳐지면 그 입에서 찬양이 사라집니다. 그러다가 슬럼프에서 헤어 나오면 무엇보다 찬양이 생깁니다. 시편 51편은 다윗의 유명한 참회의 시입니다. 밧세바와 동침한 후 자신의 죄를 고백하며 지은 다윗의 시입니다. 12절을 보면 “주의 구원의 즐거움을 내게 회복시켜 주시고” 라고 합니다. 성도가 죄를 범하면 받은 구원은 사라지지 않으나, 구원의 감격이 사라집니다. 그래서 마치 받은 구원을 잃은 것 같이 느낍니다. 그런 법은 없습니다만, 감격이 사라집니다. 다윗도 범죄한 후 구원의 즐거움, 감격을 회복시켜 달라고 합니다. 이어지는 14-15절은 “[14] 하나님이여 나의 구원의 하나님이여 피 흘린 죄에서 나를 건지소서 내 혀가 주의 의를 높이 노래하리이다 [15] 주여 내 입술을 열어 주소서 내 입이 주를 찬송하여 전파하리이다” 라고 합니다. 입을 열어 찬송하게 해 달라고 절절하게 부르짖고 있습니다. 여러분의 신앙생활의 수준을 확인하고 싶으시면, 여러분의 입에 있는 찬송을 확인하십시오. 여러분의 입에서 찬양이 나오지 않으면, 즐겁고 감사한 마음으로 기꺼이 찬양할 태세가 되어 있지 않으면 은혜가 메마른 겁니다. 찬양이 힘들고, 찬송을 불러도 감동이 없으면 지금 여러분은 성령 충만하지 못한 겁니다. 늘 성령 충만하셔서 여러분의 심령과 생활에 다른 무엇보다 찬양이 충만하기를 기원합니다. 적어도 성가대원은 그래야 합니다. 주일날 교회나 성가대석에서 뿐만 아니라 일상에서 늘 마음과 입에 찬양을 담고 살아야 합니다. 


찬양은 언제 하는 것입니까? 기도는 언제 합니까? 어려울 때 합니다. 문제가 있을 때 합니다. 찬양은 기쁘고 감사한 일이 있을 때, 즐거울 때 합니다. 감리교 창설자인 요한 웨슬레가 선교 여행차 배를 타고 대서양을 건너다 큰 풍랑을 만났습니다. 아수라장이 된 배에서 웨슬레가 떨고 있을 때, 그 절망의 어둠 속에서 찬양이 들려왔습니다. 찬양이 들리는 쪽으로 가보니, 20여명 되는 모라비안 교도들이 그 어두운 갑판에서 서로 손을 잡고 찬송을 부르고 있었습니다. 가까이 가보니, 그 와중에도 그들의 얼굴에는 어디에도 두려운 기색이 없었습니다. 웨슬레는 거기서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죽음의 공포에 사로잡혀 떨고 있는 자신의 모습이 너무도 초라했습니다. 훗날 웨슬레는 자기가 그때 그 갑판 위에서 중생했다고 고백했습니다. 찬송은 기쁠 때만 부르는 게 아니라 절망적일 때, 파선당한 배 안에서도 찬양하는 겁니다. 사도행전 16장에 나오는 바울과 실라를 보십시오. 죽도록 매 맞고 지하 감방에 갇혔는데, 한밤중 거기에서 기도하고 찬양했습니다. 찬양할 상황이 아닙니다. 억울하게 매 맞고 고통이 심한데, 무슨 찬양입니까? 그러나 그들은 그 상황에서 찬송을 불렀습니다. 그게 다른 감방의 죄수에게도 들렸습니다. 갑자기 지진이 일어나고, 옥문이 열리며, 손발에 채워져 있던 족쇄가 다 풀렸습니다. 지키던 간수가 뛰어나와 무릎을 꿇고 회개했습니다. 그리스도인은 최악의 상황에서도 찬송하는 사람들입니다. 신세타령이나 하나님 원망은 안 됩니다. 찬양을 놓지 않고 살면 반드시 하나님이 놀라운 은혜를 베푸십니다. 절박한 순간에도 하나님을 찬양하는 사람은 하나님이 절대 외면하시지 않습니다. 역대하 20장 21절 이하입니다. “[21] 백성과 더불어 의논하고 노래하는 자들을 택하여 거룩한 예복을 입히고 군대 앞에서 행진하며 여호와를 찬송하여 이르기를 여호와께 감사하세 그의 인자하심이 영원하도다 하게 하였더니 [22] 그 노래와 찬송이 시작될 때에 여호와께서 복병을 두어 유다를 치러 온 암몬 자손과 모압과 세일 산 주민들을 치게 하시므로 그들이 패하였으니 [23] 곧 암몬과 모압 자손이 일어나 세일 산 주민들을 쳐서 진멸하고 세일 주민들을 멸한 후에는 그들이 서로 쳐죽였더라.” 암몬과 세일 사람들이 연합으로 유다를 침공했습니다. 그 풍전등화와도 같은 국난 앞에서 여호사밧 왕이 어처구니없게도 군대를 소집하고 성가대를 조직해서 군대 제일 앞에 세워 ‘여호와께 감사하세 그 자비하심이 영원하시도다’ 하며 찬양하게 했습니다. 그랬더니 그날 밤 적들이 서로 자기를 찔러 유다가 대승을 거두었습니다. 우리 교회 성가대는 우리 교회 제일 전방에 선 성가대입니다. 이스라엘 군대 앞에서 하나님을 찬양했던 그 찬양대가 바로 우리 교회 성가대입니다. 어려울 때, 위기가 닥쳤을 때, 억울하고 낙심이 될 때도 찬양하셔야 합니다. 그래야 상황이 바뀝니다. 우리의 처지가 반전 됩니다. 지진이 일어나고 옥문이 열리고, 족쇄가 풀어지고, 지금까지 나를 때렸던 간수가 부복하며, 적들이 자기들끼리 서로 찌릅니다. 시편 119편을 보면 하루에 7번씩, 113편을 보면 해 뜨는 데부터 해지는 데까지, 즉 아침부터 저녁까지 찬양하라고 했습니다. 오늘 본문 마지막 절은 호흡을 다하기까지 찬양하라고 합니다. 살아있는 한 찬양하라는 겁니다. 죽기까지 찬양하라는 뜻입니다. 이것이 시편의 결론입니다. 주일 예배 때 성가대석에서만이 아니라 언제 어디서나 여러분의 호흡이 다할 때까지 영원히 하나님을 찬양하는 성가대원, 성도 되십시다.


설교영상보기:http://tvpot.daum.net/clip/ClipViewByVid.do?vid=w7LyN_dSC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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