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교회 아카이브

20111106m: 솔로몬의 일천번제(왕상 3:4-13)

2011년 11월 6일 주일낮예배

본문: 왕상 3:4-13

제목: 솔로몬의 일천번제


[4] 이에 왕이 제사하러 기브온으로 가니 거기는 산당이 큼이라 솔로몬이 그 제단에 일천 번제를 드렸더니 [5] 기브온에서 밤에 여호와께서 솔로몬의 꿈에 나타나시니라 하나님이 이르시되 내가 네게 무엇을 줄꼬 너는 구하라 [6] 솔로몬이 이르되 주의 종 내 아버지 다윗이 성실과 공의와 정직한 마음으로 주와 함께 주 앞에서 행하므로 주께서 그에게 큰 은혜를 베푸셨고 주께서 또 그를 위하여 이 큰 은혜를 항상 주사 오늘과 같이 그의 자리에 앉을 아들을 그에게 주셨나이다 [7] 나의 하나님 여호와여 주께서 종으로 종의 아버지 다윗을 대신하여 왕이 되게 하셨사오나 종은 작은 아이라 출입할 줄을 알지 못하고 [8] 주께서 택하신 백성 가운데 있나이다 그들은 큰 백성이라 수효가 많아서 셀 수도 없고 기록할 수도 없사오니 [9] 누가 주의 이 많은 백성을 재판할 수 있사오리이까 듣는 마음을 종에게 주사 주의 백성을 재판하여 선악을 분별하게 하옵소서 [10] 솔로몬이 이것을 구하매 그 말씀이 주의 마음에 든지라 [11] 이에 하나님이 그에게 이르시되 네가 이것을 구하도다 자기를 위하여 장수하기를 구하지 아니하며 부도 구하지 아니하며 자기 원수의 생명을 멸하기도 구하지 아니하고 오직 송사를 듣고 분별하는 지혜를 구하였으니 [12] 내가 네 말대로 하여 네게 지혜롭고 총명한 마음을 주노니 네 앞에도 너와 같은 자가 없었거니와 네 뒤에도 너와 같은 자가 일어남이 없으리라 [13] 내가 또 네가 구하지 아니한 부귀와 영광도 네게 주노니 네 평생에 왕들 중에 너와 같은 자가 없을 것이라


이스라엘의 초대 왕은 사울입니다. 2대 왕은 다윗입니다. 3대 왕은 솔로몬입니다. 솔로몬은 누구입니까? 그는 다윗의 아들인데 무려 10번째 아들이며, 그것도 정실이 아니라 첩 밧세바에게 얻은 아들입니다. 법적으로는 당연히 솔로몬이 왕위를 계승할 자격이 없었음에도 하나님이 솔로몬을 지명하셨기에 다윗은 그에게 왕위를 물려주었습니다. 솔로몬이 왕위에 오른 해는 주전 970년경이고, 그때 그의 나이는 20세입니다. 그러니 솔로몬이 얼마나 두렵고 막막했겠습니까?


솔로몬이 하나님께 기도하는 내용을 보십시오. 그는 자신을 작은 아이라고 합니다. 출입을 할 줄 모른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그는 제일 먼저 결단하는데, 일천번제입니다. 일천번제는 문자 그대로 천 번의 번제입니다. 원래 유대인은 하루에 세 번씩 예루살렘 성전에 올라가 제사를 드리던가, 아니면 성전을 향해 기도했습니다. 제3시(아침 9시), 제6시(정오), 제9시(오후 3시)입니다. 이슬람은 하루에 5번씩 기도합니다. 솔로몬은 하루 세 번 기도하는 시간에 번제를 드리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그래서 1년 만에 일천번제를 드렸다고 봅니다. 굉장한 예배입니다. 


일천번제를 좀 더 구체적으로 생각해 보겠습니다. 솔로몬의 일천번제는 그가 왕이 되어 직무를 하기 전에 드린 제사입니다. 왕 노릇보다 먼저 한 게 일천번제입니다. 이것이 중요합니다. 무슨 일이든 가장 먼저 예배로 시작한다는 것은 복된 일입니다. 홍수가 끝나고 노아의 가족이 땅에 발을 디디면서 예배부터 드렸습니다. 평생을 유랑하며 다녔던 아브라함도 거처를 옮길 때마다 제일 먼저 한 게 예배입니다. 예배가 우리 삶의 최우선입니다. 예배가 내 삶의 제일순위, 영순위라는 뜻입니다. 왕 노릇도 예배 다음입니다. 직장일, 가정사, 남의 경조사도 다 예배 다음입니다. 전도도 봉사도 다 예배 후순위입니다. 우리는 보통 예배를 후순위로 미룹니다만, 예배가 영순위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가 주일 아침에 교회에 나와 예배를 드리고 있다는 것은 무슨 뜻일까요? 주일이 한 주간의 첫날입니다. 주일 아침에 일어나 가장 먼저 하는 동작은 씻고 교회에 나와 예배드리는 겁니다. 이게 무엇을 의미할까요? 우리 일상 중 가장 소중한 게 예배라는 뜻입니다. 이것을 실천적으로 고백하는 것입니다. 한 주간을 우리가 사는데 한 주간의 첫날, 첫 시간에 예배부터 드린다는 것은 내 일상에서 가장 소중한 게 예배라는 사실을 우리 몸으로 고백하는 것입니다. 주일 오전예배는 이런 의미가 있습니다. 그럼에도 주일 오전예배를 소홀히 하는 것은 예배보다 더 소중한 게 있다는 자신의 불신앙을 고백하는 꼴입니다. 여러분, 한 주간의 첫날, 그 첫날의 첫 시간을 예배로 시작하면 복 됩니다. 주님이 그 사람의 한 주간을 책임져 주십니다. 한 달이 무엇입니까? 그런 주간이 4번 겹치면 한 달이고, 그런 달이 12번 겹치면 1년 입니다. 이렇게 주일을 성수하며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사람은 그 사람의 생애를 주님이 맡아 주십니다. 그러나 아무 생각 없이 형식과 건성으로 주일 예배를 드리니까 복 되지 않습니다. 주일 예배를 챙겨야 하겠습니다. 그런 사람의 기도를 하나님이 일순위로 들어주십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제일순위로 예배하는 사람의 기도를 하나님이 후순위로 응답하시겠습니다. 본문 4절 하반절 이하입니다. “솔로몬이 그 제단에 일천 번제를 드렸더니 [5] 기브온에서 밤에 여호와께서 솔로몬의 꿈에 나타나시니라 하나님이 이르시되 내가 네게 무엇을 줄꼬 너는 구하라.” 이렇게 자기 삶에서 예배를 영순위로 생각하니, 하나님도 그에게 영순위로 나타나십니다. ‘무엇이든 구하라’고 하십니다. 이것은 동화나 신화가 아닙니다. 솔로몬의 예배를 받으시고 그의 기도에 응답하신 하나님은 지금 우리가 섬기는 하나님입니다.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신 하나님입니다. 솔로몬에게 나타나신 하나님이 우리에게도 그렇게 나타나십니다. 문제는 우리가 솔로몬처럼 살지 못한다는 데 있습니다. 왕노릇보다 예배가 더 먼저입니다. 세상에서 왕노릇보다 더 중요한 일이 어디 있을까요? 예배를 상대로 우선권을 주장할 세상사는 아무것도 없습니다. 이것을 꼭 기억하십시오.


더욱 놀라운 것은, 솔로몬이 일천번제를 드린 장소입니다. 솔로몬이 제사한 곳은 기브온입니다. 이때는 아직 예루살렘에 성전이 없었을 때입니다. 그래서 전국에 산당이 있었습니다. 기브온에 큰 산당이 있었기에 예루살렘에서 기브온을 오가며 일천번제를 드린 겁니다. 그 거리는 약 10km 정도입니다. 그런데 말을 탔다고 하더라도 하루 세 번이나 오가며 기브온에서 예배하기에는 결코 가까운 거리가 아니었습니다. 자동차로 다닌다고 해도 하루 세 번씩은 힘들 것입니다. 그럼에도 솔로몬은 1년간을 하루 세 번씩 기브온을 오가며 하나님께 번제를 드렸습니다. 이것은 내 삶에서 예배가 최고라는 시위에 다름 아닙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이런 자에게 감동하십니다. 이런 자에게 은혜를 베푸십니다. 일천번제를 드리고 받은 솔로몬의 복과 영광이 얼마나 큰 것인지는 세상이 다 압니다. 부디 여러분의 생애에서도 예배가 최우선이 되기를 바랍니다.


솔로몬의 일천번제는 제물 이전에 자신을 드리는 제사였습니다. 예배는 보는 게 아니라 드리는 겁니다. 굿은 보는 겁니다. 보고만 있으면 떡을 줍니다. 굿은 무당만 칼춤 추면 됩니다. 예배는 그렇지 않습니다. 예배는 우리가 다 드려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과거에 굿하던 버릇이 있어서 자꾸만 예배 본다고 합니다. 예배는 목사만 드리고, 교인은 구경만 합니다. 이것은 잘못된 겁니다. 그것은 공연입니다. 예배는 공연이 아닙니다. 한 사람 한 사람이 다 친히 제사를 집행하는 제사장입니다. 그래서 루터는 <만인사제설>을 주장했습니다. 모든 성도가 제사장이라는 겁니다. 예배는 드려야 합니다. 물론 받는 것도 있습니다. 은혜와 축복도 받고, 계시도 받습니다. 그러나 예배는 내가 먼저 드려야 합니다. 어떻게 드리는 것입니까? 


번제는 어떤 제사입니까? 레위기 1장에 보면 번제는 제물을 몽땅 태워 바치는 제사입니다. 솔로몬이 일천번제를 드렸다는 것은 천 번이나 제물을 몽땅 태워 바쳤다는 뜻입니다. 짐승 천 마리를 태워 바친 것입니다. 화목제라는 제사는 부분적으로만 태워 바치고 살코기는 제사 참여자들이 나눠 먹습니다. 속건제도 내장이나 지방 등 기름은 태워 바치지만 살코기는 제사장의 양식으로 삼습니다. 그러나 번제는 누구도 손을 못 댑니다. 그래서 번제는 완전한 헌신과 희생을 상징합니다. 그런데 제물을 바친다고 할 때, 짐승은 무엇을 상징합니까? 제사를 드리는 사람을 상징합니다. 내가 나를 번제로 바치는 겁니다. 실제로 그렇게 할 수는 없으니 짐승을 대신 바칩니다. 그래서 대속의 제물입니다. 짐승에다 내 존재를 담아 바치는 겁니다. 양이나 염소가 불타지만 실제 내가 그렇게 불 타 하나님께 바쳐지는 겁니다. 여러분, 하나님은 짐승의 고기에 허기진 분이 아닙니다. 짐승의 피에 목마른 분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가난해서 우리에게 헌금을 요구하는 분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돈이 필요 없습니다. 항상 제물은 그런 겁니다. 내 대신 짐승을 바치는 겁니다. 나를 바치는 의미가 있어야 합니다. 돈만 바치면 헌금이 아닙니다. 헌금에 내 모든 걸 담아야 합니다. 내 신앙, 주님에 대한 나의 사랑, 내 모든 것을 거기에 담는 겁니다. 이것이 헌금입니다. 그래서 제물 이전에 나를 드려야 합니다. 나를 드리는 것, 그것이 제물입니다. 시편 40편 6절 이하입니다. “[6] 주께서 내 귀를 통하여 내게 들려 주시기를 제사와 예물을 기뻐하지 아니하시며 번제와 속죄제를 요구하지 아니하신다 하신지라 [7] 그 때에 내가 말하기를 내가 왔나이다.” 하나님은 제물 이전에 나를 바라신다는 뜻입니다. 따라서 예물을 바치기 전에 나를 먼저 온전히 바치지 않으면 그 제사나 제물은 한갓 형식에 지나지 않습니다. 이것은 죽은 제사입니다. 살아 있는 나를 바쳐야 합니다. 그래서 바울은 ‘네 몸을 산 제사로 드리라’고 했습니다. 솔로몬의 일천번제는 짐승이 아니라 자신을 천 번이나 불에 살라 바친 겁니다. 그러니 하나님이 솔로몬의 기도에 응답하지 않으실 수 있겠습니까? 창세기 4장을 보면 하나님이 아벨의 제사는 받으시고, 가인의 제사는 받지 않으셨다고 합니다. 왜 아벨의 제사는 받고, 가인의 제사는 안 받으셨을까요? 아벨은 제물에 자신을 담았고, 가인은 제물에 자신을 담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히브리서 11장 4절은 “믿음으로 아벨은 가인보다 더 나은 제사를 하나님께 드림으로 의로운 자라 하시는 증거를 얻었으니 하나님이 그 예물에 대하여 증언하심이라”고 합니다. 참된 예배를 회복하십시다. 일국의 왕이었던 솔로몬도 천 번이나 자신을 불 태워 바쳤습니다.


솔로몬이 누린 영화는 무엇입니까? 하나님이 솔로몬에게 나타나 ‘무엇이든 구하라’고 하자 솔로몬은 이렇게 말합니다. “누가 주의 이 많은 백성을 재판할 수 있사오리이까 듣는 마음을 종에게 주사 주의 백성을 재판하여 선악을 분별하게 하옵소서”(9절). 하나님이 이에 무엇이라 응답하셨습니까? “내가 네 말대로 하여 네게 지혜롭고 총명한 마음을 주노니 네 앞에도 너와 같은 자가 없었거니와 네 뒤에도 너와 같은 자가 일어남이 없으리라”(12절). 솔로몬이 구하지도 않은 복을 덤으로도 주셨습니다. “ 내가 또 네가 구하지 아니한 부귀와 영광도 네게 주노니 네 평생에 왕들 중에 너와 같은 자가 없을 것이라”(13절). 솔로몬은 지혜를 구했으나 하나님은 그가 구하지 않은 부와 영광까지도 주셨습니다. 솔로몬이야말로 유사 이래 가장 지혜롭고 가장 영화로운 왕으로 기록됩니다. 태어날 때부터 그가 지혜롭거나 복을 이고 태어난 게 아닙니다. 일천번제를 드리고 기도하여 응답 받아 하나님으로부터 축복을 받은 결과입니다. 


부귀영화를 바라십니까? 여러분의 자녀가 다 복되고 지혜롭기를 원하십니까? 무엇보다 예배에 충실하십시오. 예물에 앞서 자신을 헌상 하십시오. 이것이 솔로몬처럼 복을 받는 비결입니다. 그래서 여러분과 여러분 자녀의 생애가 주님이 베푸시는 복으로 충만하기를 바랍니다.


설교영상보기:http://tvpot.daum.net/clip/ClipViewByVid.do?vid=QSgcxX0lNbY$



원문 자료와 첨부

  • 미디어: 원래 주소 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