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향력과 신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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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들의 종교계에 대한 평가가 갈수록 냉담해지고 있습니다. 특히 개신교는 가히 <신뢰도의 위기>라 할 만 합니다. 최근 조계종 불교사회연구소가 한국리서치에 의뢰해 조사 발표한 <한국의 사회문화 및 종교에 관한 대국민 여론조사>에 의하면 한국 사회에서의 종교계의 신뢰도는 흔히 부도덕하고 탐욕스런 집단으로 인식되어온 대기업(3.12)보다도 낮은 수준(3.00)으로 확인되었습니다. 종교별 대사회 영향력 조사에서는 개신교가 53.2%로 가장 컸고, 이어서 불교 23.7%, 가톨릭 17.6% 순이었는데, 종교별 신뢰도는 반대로 가톨릭이 4.11로 가장 높았고, 다음은 불교 4.05, 개신교는 3.34로 가장 낮았습니다. 종교지도자 신뢰도 역시 신부 4.91, 승려 4.83, 목사 4.64 순으로 개신교가 가장 낮았으며, 종교간 갈등 원인을 가장 많이 제공하는 종교로도 개신교가 57.0%로 압도적인 수위, 그 다음이 불교 23.7% 그리고 가톨릭 17.6% 순이었습니다. 미래에 대한 전망은 불교(34.5%)가 가장 밝은 것으로 조사됐고, 다음은 가톨릭(32.5%), 그리고 개신교(26.8%) 순으로 나타났습니다. 평화로운 종교에 대한 응답 역시도 불교(35.7%), 가톨릭(23.5%), 개신교(18.7%) 순이었으며, 한국의 사회발전에 대한 기여도마저 불교가 34.7%로 1위를 차지했고, 그 다음이 개신교(27.0%), 가톨릭 (20.9%) 순이었습니다.
이렇게 보면 한국의 3대 종교가 영향력은 개신교, 신뢰도는 가톨릭, 기여도는 불교로 각각 나눠 가진 셈인데, 그 내용을 들여다보면 여간 실망스럽고 혼란스러운 게 아닙니다. 교회가 많아지고 영향력이 커질수록 그만큼 사회가 밝아지고 교회의 대사회 기여도나 신뢰도가 높아져야 하는데 이건 오히려 그 반대입니다. 영향력과 신뢰도 혹은 기여도는 정비례해야 바람직한데 지금 한국 교회는 그 두 지수가 서로 반비례하고 있습니다. 이는 곧 자기의 힘을 부정적인 쪽에 소진함으로써 스스로 위기를 자초하고 있다는 뜻이며 막강한 인적 물적 자원으로 지대한 현실적 영향력을 발휘하면서도 사회적 기여도나 신뢰도에서는 전혀 비교우위를 점하지 못하고 있는 한국 교회의 모순과 딜레마를 극명하게 드러내 보인 것이기 합니다. 반면 가톨릭은 우리 사회에서의 영향력과 기여도가 가장 낮은 종교로 인식되면서도 신뢰도에 있어서는 가장 높은 평가를 얻고 있다는 점에서 개신교와는 퍽 대조적입니다. 그러나 생각해 보면 개신교에 대한 국민들의 이런 평가는 결코 새삼스러운 게 아닙니다. 올해만 해도 여의도순복음교회의 내부갈등, 소망교회 담임목사 폭행사건, 감리교 총회사태, 한기총의 금권선거와 파행, 사랑의교회 초대형 초호화 예배당 신축문제, 그 외에도 삼일교회, 강북제일교회, 분당중앙교회 등 여러 중대형 교회들의 목회자 비리문제 등이 계속 불거져 나오면서 신뢰가 땅에 떨어질대로 떨어진데다 <고소영 내각>, <고소영 정권>이라며 비판 받아온 현 정부와의 유착 혐의도 여전해 한국 교회는 지금 그야말로 진퇴양난의 사면초가에 몰린 형국입니다. 인터넷상에서는 <개독교>가 관용어가 된지 오래고, 목사가 <먹사>가 된 것도 이미 옛날입니다. 이제는 교회가 싫고, 교회 다니는 사람들이 싫어 예수 믿기가 싫다고 대놓고 말하는 사람들도 얼마든지 있습니다. 그럼에도 목회자들은 여전히 문제의 핵심은 외면한 채 헛다리만 짚고 있습니다.
제 생각에는 지금 한국 교회는 자정능력을 잃었습니다. 최근 유행처럼 교회 개혁과 갱신을 부르짖지만 누구도 자신부터 개혁할 생각은 없습니다. 주님은 <내가 칼을 주러 왔다>(마 10:34)고 하셨습니다. 지금도 주님은 그렇게 <날선 칼>로 우리 앞에, 교회 앞에 서 계십니다. 그것은 우리의 타락한 양심을 찌르는 칼이고, 사랑이 식은 우리의 차가운 심장을 도려내는 칼이며, 지혜에 귀 어두운 이 시대를 향해 골수를 찔러 쪼개는 비전(秘傳)의 보도입니다. 칼이 없는 교회, 칼이 없는 목회, 칼이 없는 신학은 결코 자신과 교회와 세상을 새롭게 할 수 없습니다. 칼에 찔림이 없는 존재는 옛 껍질을 벗을 수 없습니다. 우리는 다 사정없이 찔려 아파하고 또 찔린 그곳에 그리스도의 새 살이 돋아나야 합니다. 생명의 온기가 다시 흐르고 거짓 없는 사랑의 맥박이 다시 고동쳐야 합니다. 그것만이 우리 개인과 교회가 다시 사는 길입니다. 살기가 아니라 생기인 주님의 칼, 이 녹슨 시대의 양심으로부터 우리의 생명을 구할 그 성령의 메스가 너무도 그리운 시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