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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716w: 고린도후서 강해 19(고후 11:1-15)

2008년 7월 16일 수요성경공부 고린도후서 강해 19
본문: 고후 11:1-15

[1] 원컨대 너희는 나의 좀 어리석은 것을 용납하라 청컨대 나를 용납하라 [2] 내가 하나님의 열심으로 너희를 위하여 열심 내노니 내가 너희를 정결한 처녀로 한 남편인 그리스도께 드리려고 중매함이로다 [3] 뱀이 그 간계로 이와를 미혹케 한 것 같이 너희 마음이 그리스도를 향하는 진실함과 깨끗함에서 떠나 부패할까 두려워하노라 [4] 만일 누가 가서 우리의 전파하지 아니한 다른 예수를 전파하거나 혹 너희의 받지 아니한 다른 영을 받게 하거나 혹 너희의 받지 아니한 다른 복음을 받게할 때에는 너희가 잘 용납하는구나 [5] 내가 지극히 큰 사도들보다 부족한 것이 조금도 없는 줄 생각하노라 [6] 내가 비록 말에는 졸하나 지식에는 그렇지 아니하니 이것을 우리가 모든 사람 가운데서 모든 일로 너희에게 나타내었노라 [7] 내가 너희를 높이려고 나를 낮추어 하나님의 복음을 값없이 너희에게 전함으로 죄를 지었느냐 [8] 내가 너희를 섬기기 위하여 다른 여러 교회에서 요를 받은 것이 탈취한 것이라 [9] 또 내가 너희에게 있어 용도가 부족하되 아무에게도 누를 끼치지 아니함은 마게도냐에서 온 형제들이 나의 부족한 것을 보충하였음이라 내가 모든 일에 너희에게 폐를 끼치지 않기 위하여 스스로 조심하였거니와 또 조심하리라 [10] 그리스도의 진리가 내 속에 있으니 아가야 지방에서 나의 이 자랑이 막히지 아니하리라 [11] 어떠한 연고뇨 내가 너희를 사랑하지 아니함이냐 하나님이 아시느니라 [12] 내가 하는 것을 또 하리니 기회를 찾는 자들의 그 기회를 끊어 저희로 하여금 그 자랑하는 일에 대하여 우리와 같이 되게 하려 함이로라 [13] 저런 사람들은 거짓 사도요 궤휼의 역군이니 자기를 그리스도의 사도로 가장하는 자들이니라 [14] 이것이 이상한 일이 아니라 사단도 자기를 광명의 천사로 가장하나니 [15] 그러므로 사단의 일꾼들도 자기를 의의 일꾼으로 가장하는 것이 또한 큰 일이 아니라 저희의 결국은 그 행위대로 되리라


지난주에는 10장을 공부했습니다. 10장에서 바울의 태도는 수세적이었습니다. 고린도 교회가 바울의 편지는 힘이 있으나 몸으로 대하니 약하다고 공격할 때, 바울은 다만 외모만 보고 사람을 판단한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11장에서 바울은 좀 다른 태도를 보입니다. 바울은 고린도 교회 신도들에게 ‘자기를 용납하라’고 합니다. 바울이 좀 더 적극적으로 자기변호를 할텐데, 그것을 용납하라는 겁니다. 할 말은 해야겠다는 뜻입니다. 바울은 ‘너희를 정결한 처녀로 한 남편인 그리스도께 드리려고 중매’하려 했다고 합니다. 바울이 사심 없이 고린도 교회 성도들과 주님을 중매했는데, 그 결과 거짓 선지자를 용납하고, 정작 바울은 배격했다고 합니다. 뱀이 하와를 미혹케 한 것처럼 너희 고린도 교회도 그렇게 되었다는 겁니다. 바울이 전한 복음과는 다른 복음을 전한 사람들을 잘 영접해 버렸다는 겁니다: “만일 누가 가서 우리의 전파하지 아니한 다른 예수를 전파하거나 혹 너희의 받지 아니한 다른 영을 받게 하거나 혹 너희의 받지 아니한 다른 복음을 받게 할 때에는 너희가 잘 용납하는구나”(4절). 10장의 바울과는 사뭇 다른 태도입니다. 사실 당시 고린도 교회가 바울을 배격한 배후에는 이런 이단적인 세력이 있었습니다. 이점을 바울이 지금 지적하고 고발하는 겁니다. 그들이 바울의 사도권을 부정하도록 선동했다는 겁니다. 바울이 고린도 교회의 배후세력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요즘 <신천지>라는 이단이 기성교회에 침투해서 많은 피해를 입히고 있습니다. 신천지는 100명 미만의 교회, 평소에 교인과 목회자들 사이가 원만하지 못한 교회를 물색하여 전략적으로 침투합니다. 그들은 교회에서 전략적으로 침투하여 그 교회의 문제점을 살살 드러내면서 결국 교인들이 목회자를 몰아내게 한 뒤 신천지가 그 교회를 접수하게 합니다. 우리 교단에서도 신천지에 대한 주의보가 내려졌습니다. 바울 당시의 고린도 교회도 바로 이런 모습이었습니다. 바울은 고린도 교회를 정확히 파악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자신을 적극적으로 변호하는데 5절입니다: “내가 지극히 큰 사도들보다 부족한 것이 조금도 없는 줄 생각하노라.” 한 마디로 ‘내가 뭐가 부족하냐’는 겁니다. 사도 자격에 하나도 부족함이 없다고 합니다. 말은 졸하나 지식에 있어서는 절대 그렇지 않다는 사실을 내가 이미 모든 교회의 사람 앞에서 증명해 보였다고 합니다.

그런데 7절 이하를 보면 고린도 교회가 바울의 사도권을 부정하는 또 하나의 근거가 나옵니다. 육체적이거나 외모상의 이유 말고도 다른 이유가 하나 더 있었습니다. 고린도 교회로부터 바울이 생활비를 받지 않은 이유입니다. 바울은 자비량 선교사였습니다. 바울은 스스로 장막을 지으며 생활비와 선교비를 조달하며 생활한 사람입니다. 그런데 이것이 고린도 교회로 하여금 바울의 사도권을 부정하는 빌미를 제공했습니다. 바울이 값없이 복음을 전한 것은 그가 보수를 받을 자격이 없기 때문이라고 하며 고린도 교회는 사람들을 선동했습니다. 이에 대해 바울은, 자신이 값없이 복음을 전한 것이 결코 사도권을 부정당할 이유가 아니라고 합니다. 7절입니다: “내가 너희를 높이려고 나를 낮추어 하나님의 복음을 값없이 너희에게 전함으로 죄를 지었느냐.” 바울은 7절 말씀처럼 이것이 무슨 죄냐고 합니다. 8절입니다: “내가 너희를 섬기기 위하여 다른 여러 교회에서 요를 받은 것이 탈취한 것이라.” 8절을 통해 우리는 바울이 기본적으로 자비량 선교사였지만, 어떤 경우에는 다른 교회의 도움을 받기도 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8절 말씀은 역설적인 표현입니다. 내가 너희에게 복음을 전하였다면, 너희에게 지원을 받는 것이 옳은데, 너희에게 부담을 주지 않기 위해 마게도냐 여러 교회로부터 지원을 받았다는 말입니다. 사실 이것은 옳지 못한 것이지만, 이토록 너희를 생각하며 공짜로 복음을 전해 주었는데, 어떻게 너희가 나의 사도권을 부정할 수 있느냐는 겁니다. 내가 무자격자이기에 돈을 안 받고 복음을 전한 것이 아닌데, 어떻게 너희가 내 뒤통수를 치느냐는 겁니다. 9절도 마찬가지입니다: “또 내가 너희에게 있어 용도가 부족하되 아무에게도 누를 끼치지 아니함은 마게도냐에서 온 형제들이 나의 부족한 것을 보충하였음이라 내가 모든 일에 너희에게 폐를 끼치지 않기 위하여 스스로 조심하였거니와 또 조심하리라.” 이토록 바울은 고린도 교회를 배려했습니다. 고린도 교회에 폐를 끼치지 않기 위해 선교비를 요구하지 않았는데, 오히려 이것을 빌미로 바울이 무자격자이기에 선교비를 안 받았다며 공격하니 어처구니가 없다는 겁니다. 11절에서 바울은 이런 말까지 합니다: “어떠한 연고뇨 내가 너희를 사랑하지 아니함이냐 하나님이 아시느니라.” 내가 너희를 사랑하지 않아서 너희가 이러느냐? 내가 너희를 사랑하는 것은 하나님이 다 아신다고 합니다.

바울은 이 모든 일이 고린도 교회 성도들의 뜻이나 의지였다기 보다는 고린도 교회에 침투한 이단들의 공작이라고 결론을 내립니다. 13절 이하입니다: “[13] 저런 사람들은 거짓 사도요 궤휼의 역군이니 자기를 그리스도의 사도로 가장하는 자들이니라 [14] 이것이 이상한 일이 아니라 사단도 자기를 광명의 천사로 가장하나니 [15] 그러므로 사단의 일꾼들도 자기를 의의 일꾼으로 가장하는 것이 또한 큰 일이 아니라 저희의 결국은 그 행위대로 되리라.” 이단들이 고린도 교회에 침투해서 교인들을 충동질하고 선동해서 바울의 사도권을 부정하게 하고, 내치려 했다는 겁니다. 바울은 이단들을 궤휼의 역군이라고 합니다. 즉 사람들을 전문적으로 속이는 사람들이라고 합니다. 주님은 사단을 양의 탈을 쓴 이리라고 했습니다. 사단도 필요에 의해서 의의 일꾼으로 가장합니다. 그러나 결국 본색이 드러납니다. 광명의 탈을 쓴 사단이 있습니다. 고린도 교회 성도들이 나빠서 그런 것이 아닙니다. 그들을 선동하는 배후 세력이 있습니다. 그런데 교인들은 그런 세력이 있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합니다. 마귀의 장난질을 알아채지 못합니다. 왜냐면 마귀는 내가 마귀다 하지 않고, 반드시 광명의 천사로, 의의 일꾼으로, 양의 탈을 쓰고 나타나기 때문입니다.

이 사단의 장단에 춤추거나 넘어가지 않기를 바랍니다. 고린도 교회은 이 사실을 모르고 너무도 충실하게 사단과 장단을 맞추었습니다. 그런데 바울은 분명하게 경고합니다. ‘저희의 결국은 그 행위대로 되리라’고 합니다. 하나님이 그 응분의 책임을 물으십니다. 우리가 교회 생활하며 주의해야 할 부분입니다. 교회라고 해서 성령만 역사하지 않습니다. 악령도 역사합니다. 그래서 성도는 성령 아니면 악령입니다. 성령의 지배를 받지 않으면 악령의 지배를 받습니다. 제3의 완충지대는 없습니다. 성령의 지배를 받으면 교회에 덕을 미치지만, 악령의 지배를 받으면 교회에 문제를 일으킵니다. 유감스럽게도 고린도 교회는 악령의 지배를 받았기에, 악령의 지배를 당하고 있다는 그 사실을 깨닫지도 못하고 바울을 대적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이 이 모든 행위를 갚아주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