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의 수고(전 6: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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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 11. 4
사람의 수고
전 6:7-12
사람은 누구나 늘 수고하며 삽니다. 어디서 무엇을 하든 항상 근로하며 살아가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성경은 <너희가 일찍이 일어나고 늦게 누우며 수고의 떡을 먹음이 헛되다>(시 127:2)고 합니다. 왜 그럴까요? 남편은 직장에서, 아내는 집에서 하는 그 모든 수고와 노동이 왜 신성하지 않고 오히려 허무할까요? 인간의 노동이 축복이 아니라 저주라는 뜻입니까? <내가 네게 먹지 말라한 나무의 열매를 먹었은즉 … 너는 네 평생에 수고하여야 그 소산을 먹으리라>(창 3:17). 그러나 현자는 노동의 기원이나 본질보다 노동의 목적에서 그 이유를 확인합니다.
입을 위함
<사람의 수고는 다 자기의 입을 위함이나 그 식욕은 채울 수 없느니라>(7절).
너무나 원색적이긴 해도 엄연한 사실 아닙니까? <고되게 일하는 자는 식욕으로 말미암아 애쓰나니 이는 그의 입이 자기를 독촉함이니라>(잠 16:26). 이는 인간 노동의 목적이 식욕충족에 있음을 뜻합니다. 그래서 바울도 <누구든지 일하기 싫어하거든 먹지도 말게 하라>(살후 3:10)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음식이란 원래 배를 위해 있고, 또 배는 음식을 위해 있습니다. 머리와 가슴을 위한 음식은 없고, 더구나 영혼을 위하고 마음을 풍성하게 해 줄 음식은 없다는 데 노동과 근로가 가져다 주는 근본적인 허무가 있습니다. 아무리 수고하고 애써도 영혼의 허기를 면케해 줄 음식은 없습니다. 인간은 마치 누가복음 12장에 나오는 어리석은 부자와도 같습니다. <내 영혼아 여러 해 쓸 물건을 많이 쌓아 두었으니 편안히 쉬고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라>(19절). 영혼은 결코 많이 쌓아 둔 물건으로 즐거워 할 수 없습니다.
눈을 위함
<눈으로 보는 것이 마음으로 공상하는 것보다 나으나 이것도 헛되어 바람을 잡는 것이로다>(9절).
사람들은 갈수록 <눈으로 보는 것>의 즐거움을 위해 많은 대가를 지불하고 있습니다. 현대문화는 점점 보는 즐거움에 더 많은 비용을 강요하고 있습니다. TV, 영화, 각종 문화예술, 패션, 디자인, 오락, 성형 등 거의 모든 문화 콘텐츠와 관심 트랜드가 오직 시각적인 욕구를 충족시키는 일에 동원되고 있습니다. 하와의 타락도 <보는 것>의 유혹에서 시작됐다는 사실을 기억하십시오. <여자가 본즉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만큼 탐스럽기도 한 나무인지라. 여자가 그 열매를 따 먹고 자기와 함께 있는 남편에게도 주매 그도 먹은지라>(창 3:6). 이렇듯 인간이 밤낮없이 뛰는 노동이 결국은 보는 것의 욕구를 채우기 위한 수고에 다름 아니라는 사실이 <바람을 잡는 것>처럼 우리를 허무하게 합니다.
하나님의 뜻을 위함
<이미 있는 것은 무엇이든지 오래 전부터 그의 이름이 이미 불린 바 되었으며 사람이 무엇인지도 이미 안 바 되었나니 자기보다 강한 자와는 능히 다툴 수 없느니라>(10절).
이것은 인간의 노동과 수고가 입을 위하고, 눈을 위하기보다는 <이미 오래 전부터> 뜻하신 하나님의 섭리에 복무하는 것일 때만 허무를 이기고 의미와 보람을 누리는 값진 수고가 될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현자는 <헛된 것을 더하게 하는 많은 일들이 사람에게 무슨 유익이 있느냐>(11절)고 합니다. <모든 날을 그림자 같이 보내는 일평생이 사람에게 무슨 낙이냐>(12절)고 묻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뜻에 봉사하고 주님의 사역에 헌신하는 일만큼은 복되고 아름다운 근로라는 사실을 결코 잊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염려하여 이르기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 이는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마 6:31-3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