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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2008년 7월 13일 주일낮예배<br>본문: 마 10:16-28<br>제목: 두려워하지 말라!</p>
<!-- paragraph:p0002 -->
<p>[16] 보라 내가 너희를 보냄이 양을 이리 가운데 보냄과 같도다 그러므로 너희는 뱀 같이 지혜롭고 비둘기 같이 순결하라 [17] 사람들을 삼가라 저희가 너희를 공회에 넘겨 주겠고 저희 회당에서 채찍질하리라 [18] 또 너희가 나를 인하여 총독들과 임금들 앞에 끌려 가리니 이는 저희와 이방인들에게 증거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 [19] 너희를 넘겨 줄 때에 어떻게 또는 무엇을 말할까 염려치 말라 그때에 무슨 말할 것을 주시리니 [20] 말하는 이는 너희가 아니라 너희 속에서 말씀하시는 자 곧 너희 아버지의 성령이시니라 [21] 장차 형제가 형제를 아비가 자식을 죽는 데 내어주며 자식들이 부모를 대적하여 죽게 하리라 [22] 또 너희가 내 이름을 인하여 모든 사람에게 미움을 받을 것이나 나중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23] 이 동네에서 너희를 핍박하거든 저 동네로 피하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스라엘의 모든 동네를 다 다니지 못하여서 인자가 오리라 [24] 제자가 그 선생보다 또는 종이 그 상전보다 높지 못하나니 [25] 제자가 그 선생 같고 종이 그 상전 같으면 족하도다 집 주인을 바알세불이라 하였거든 하물며 그 집 사람들이랴 [26] 그런즉 저희를 두려워하지 말라 감추인 것이 드러나지 않을 것이 없고 숨은 것이 알려지지 않을 것이 없느니라 [27] 내가 너희에게 어두운 데서 이르는 것을 광명한 데서 말하며 너희가 귓속으로 듣는 것을 집 위에서 전파하라 [28] 몸은 죽여도 영혼은 능히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오직 몸과 영혼을 능히 지옥에 멸하시는 자를 두려워하라</p>
<!-- paragraph:p0003 -->
<p><br>오늘 본문은 예수님의 당부의 말씀입니다. 두려워하지 말라는 겁니다. 참으로 위안이 되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목석이 아닌 다음에야 어떻게 두려움 없이 세상을 살아갈 수 있습니까? 두려움 없이 살아가려면 세상에서 부정적인 요소가 제거되어야 하는데 이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합니다. 그럼에도 주님은 우리에게 두려워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유명한 신학사전인 키텔 사전을 보면 신구약 성경에 두려워하지 말라는 단어가 360여회 나온다고 합니다. 그래서 어떤 주석가는 이것을 일 년 365일을 두려워하지 말고 살아가라는 하나님의 뜻이라고 해석하기도 했습니다. </p>
<!-- paragraph:p0004 -->
<p>주님은 어쨌든 두려워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그렇다고 주님이 세상을 잘 모르셨거나 낙관적인 것만은 아닙니다. 세상을 보는 주님의 눈은 무섭도록 냉정하고 공평정당하십니다. “보라 내가 너희를 보내는 것이 양을 이리 가운데 보냄과 같다”고 하셨습니다. 이 얼마나 세상을 꿰뚫어 보는 말씀입니까? 이리는 양의 천적입니다. 양의 천적인 이리가 득실거리는 세상으로 어린 양인 제자들을 세상으로 내보시면서 두려워 말라고 하신 겁니다. </p>
<!-- paragraph:p0005 -->
<p>그러면서 어떻게 하라고 하셨습니까? 사람을 삼가라고 하셨습니다. 참으로 기절초풍할 말씀입니다. 세상은 이리가 득실거리니까 사람을 조심하라는 겁니다. 우리는 흔히 주님을 이상주의자로 봅니다. 분명 주님은 우리가 흉내 내기도 어려운 이상주의자적인 면모가 있기도 합니다만, 오늘 본문을 보면 주님은 철저히 현실주의자입니다. 어떻게 주님의 입에서 사람을 신뢰하라는 말 대신에 사람을 조심하라는 말이 나올 수 있습니까? 참으로 주님이 현실을 제대로 보시고 있지 않습니까? 사람이 바로 이리요, 세상 사람이 바로 우리의 천적이라고 하신 것입니다. 주님의 현실감각입니다. 이 얼마나 극명하고 적나라합니까? 감탄을 금치 못할 지경입니다. 우리가 세상살이하면서 가장 두려워해야 할 제1호가 사람입니다. 호랑이, 사자가 무서운 것이 아니라 사람이 무섭습니다. 언제나 사람이 나를 아프게 하고, 사람이 내게 상처를 입히고, 사람이 나를 함정에 빠트립니다. 사람이 나를 법정에 세웁니다. 그래서 절대 머리 검은 짐승은 믿지 말라고 하지 않습니까. 뜻밖에도 이것은 주님의 말씀이셨습니다. </p>
<!-- paragraph:p0006 -->
<p>사람을 삼가라, 경계하여야지만 그럼에도 두려워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왜냐면 그들은 내 몸을 죽일 수는 있어도 내 영혼을 죽이지는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사람을 두려워 할 것이 아니라 오직 내 몸과 영혼을 함께 지옥에 멸할 수 있는 하나님을 두려워해야 합니다. 바로 여기에 우리가 두려움의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비결이 있습니다. </p>
<!-- paragraph:p0007 -->
<p>우리가 왜 세상을 두려워합니까? 우리가 불안에 떨며 세상을 살아가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우리가 두려워할 대상을 두려워하며 살지 않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육신뿐만 아니라 우리의 영혼도 멸할 수 있는 분이 있습니다. 하나님입니다. 내가 세상을 두려워하고 있다는 것은 정말 두려워해야 할 하나님을 망각하고 있다는 뜻입니다. 내가 하나님을 불신하고 있기에 세상이 두려운 것입니다. 세상이 두려운 것은 하나님 망각의 소치요, 불신앙의 결과입니다. 하나님을 향한 절대적 두려움이 세상이 주는 상대적인 두려움을 극복합니다. 하나님이 나의 절대적인 두려움의 대상이라는 사실을 자각해야 합니다. </p>
<!-- paragraph:p0008 -->
<p>스코틀랜드의 위대한 종교개혁가 존 녹스는 1571년에 세상을 떠났는데, 대단한 사람이었습니다. 영국의 엘리자베스 여왕이 가장 두려워했던 사람이 존 녹스 목사였습니다. 그녀는 존 녹스 목사의 설교가 오천 명이 부는 나팔소리보다 더 무섭다고 했습니다. 그의 묘비명에 이렇게 적어 놓았습니다: “여기에 하나님을 두려워했기에 세상을 두려워하지 않은 사람이 있다.” 욥기를 보면 욥은 순전했고, 동방의 의인이었습니다. 그럼에도 그가 졸지에 시험을 당해 하루아침에 재산 다 날아가고, 한 자리에서 열 명의 자녀들을 몽땅 다 잃었습니다. 또 욥의 몸에도 종창이 납니다. 얼마나 가려웠으면 기와로 몸을 긁었겠습니까? 오죽하면 그의 부인이 하나님을 저주하고 죽으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욥은 욥기 3장 25절에서 이렇게 고백합니다: “나의 두려워하는 그것이 내게 임하고 나의 무서워하는 그것이 내 몸에 미쳤구나.” 욥은 항상 두려움에 사로잡혀 살았습니다. 내 재산을 다 잃으면 어떡할까? 내 자식을 다 잃으면 어떡할까? 그런데 그런 두려움이 재앙으로 닥쳤습니다. 우리가 두려워하면 마귀가 우리의 약점을 이용해서 치명적으로 공격합니다. 절대적인 두려움의 대상인 하나님만을 두려워하고 신뢰하면 세상이 주는 모든 상대적인 두려움에서 해방될 수 있고, 자유할 수 있습니다. 지금까지 두려웠던 모든 대상이 안개처럼 사라집니다. </p>
<!-- paragraph:p0009 -->
<p>디모데후서 1장 7절을 보면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것은 두려워하는 마음이 아니고, 오직 성령의 능력이라고 합니다. 세상을 두려워하는 마음은 하나님이 주신 것이 아니고 마귀가 준 것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것은 두려움이 아니고 오직 능력 곧 성령의 능력입니다. 주님이 제자들에게 ‘너희에게 성령이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된다’고 하셨습니다. 여기에 나오는 권능, 능력은 헬라말로 ‘두나미스’입니다. 다이너마이트 라는 말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두려움이 아니라, 다이너마이트를 주셨습니다. 이것을 가슴에 잔뜩 안고 있으면 세상이 두려울 것이 없습니다. 다이너마이트의 가공할 폭발력은 산도 날려 보냅니다. 저 강원도 탄광지역에 가 보십시오. 그 거대한 석산을 다이너마이트가 날립니다. 얼마 전에 북한에서 원자로 냉각탑을 터트리는데, 그 거대한 냉각탑이 몇 초 만에 사라졌습니다. 아파트 철거할 때 보면 눈 깜짝할 사이에 무너뜨립니다. 다이너마이트가 그렇게 합니다. 그런데 이 다이너마이트를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셨다는 겁니다. 세상이 가장 무서워하는 사람이 이 성령의 능력을 가진 사람입니다. 세상을 다 날려버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자폭테러가 가장 무섭습니다. 대책이 없습니다. 성령의 능력은 그만큼 크기 때문에 세상이 두려워합니다. 처음 제자들은 비겁하기 짝이 없었습니다. 부활하신 주님을 뵙고도 다락방에 모여 떨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성령이 강림하자, 세상은 변한 게 없는데, 그들은 문을 박차고 나와 복음을 담대히 전했습니다. 가슴에 두나미스를 잔뜩 적재했기 때문입니다. 세상보다 훨씬 더 공격적으로 세상을 설치고 다니며 복음을 증거 했습니다. 그래서 기독교가 세계화되었습니다. 여러분, 성령의 능력을 가진 자는 세상에서 못할 것이 없고, 이기지 못할 적이 없고, 날려버리지 못할 태산이 없습니다. 그래서 두려워하지 말라는 겁니다. 너희가 두려워하는 세상보다 더 궁극적으로 두려운 하나님이 계시고, 어떤 태산도 다 날려버릴 성령의 두나미스가 있으니 두려워하지 말고 세상으로 나가라고 하십니다. </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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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그럼에도 여전히 우리가 두려워하는 것은 성령의 무한한 능력을 깨닫지 못했거나, 아직도 성령의 그 능력을 활용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계속해서 성령충만하라, 성령을 덧입으라고 합니다.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두려움은 마귀가 준 것입니다. 두려워하는 자에게는 그래서 형벌이 있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심으로 세상이 주는 상대적인 두려움을 이기시고, 가공할 성령의 능력으로 세상이 주는 크고 작은 위협을 압도하시기를 바랍니다. </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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