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1030m: 개혁교회 전통(막 1:1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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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10월 30일 주일낮예배/종교개혁주일
본문: 막 1:14-15
제목: 개혁교회 전통
[14] 요한이 잡힌 후 예수께서 갈릴리에 오셔서 하나님의 복음을 전파하여 [15] 이르시되 때가 찼고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 하시더라
여러분은 평소 주님을 어떤 캐릭터로 이해하고 계십니까? 주님 하면 어떤 이미지가 떠오르십니까? 제 생각에는 주님을 혁명가나 개혁가 이미지로 연상하실 것 같지는 않습니다. 저 또한 주님이 투사나 전사 같은 이미지로 연상되진 않습니다. 실제 복음서를 보면 주님의 정서는 대단히 부드러웠던 것 같습니다. 전혀 투쟁적이거나 호전적이거나 과격하셨을 것 같지 않습니다. 주님은 당시 유대교를 바꾸려고 하시지 않습니다. 오히려 율법이나 회당이나 할례, 안식일, 유대교 절기, 제도 같은 것을 인정하셨습니다. 한 번도 그런 부분에 대해 반기를 드시거나 바꾸어 보려고 애쓰신 것 같지는 않습니다. 자명하게 그것들을 존중하셨던 것 같습니다. 사회문제에 대해서도 한 번은 어떤 사람이 상속 문제를 갖고 나오자 주님은 ‘나는 이런 것을 위해 오지 않았다’며 단호히 거절하셨습니다. 저는 주님이 로마제국의 존재를 알고 있었는지 참으로 궁금합니다. 어디에도 로마 식민지민으로서의 고뇌 같은 게 안 보입니다. 로마의 치하로부터 유대 백성을 구하겠다는 의지를 보이신 대목이 없습니다. 주님의 마지막도 로마제국을 향해 진격하시지 않고 골고다를 향하셨습니다. 그런데도 재미난 것은 주님으로 인해 사회개혁, 종교개혁이 일어났다는 겁니다. 유대 민족의 그 살인적인 배타주의가 타파되었습니다. 주님으로 인해 여성들과 아이들이 물건에서 사람으로 인격이 되었습니다. 죄인과 의인 사이의 계급적 담도 주님이 허무셨습니다.
오늘 본문 마가복음 1장 15절 말씀을 보십시오. “이르시되 때가 찼고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 이게 주님이 공생애에 들어가셔서 맨 처음 외치신 말씀입니다. 하나님 나라가 도래했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는 겁니다. 주님이 복음을 전하시면서 가장 먼저 외치신 게 하나님 나라입니다. 사도행전 1장 3절입니다. “그가 고난 받으신 후에 또한 그들에게 확실한 많은 증거로 친히 살아 계심을 나타내사 사십 일 동안 그들에게 보이시며 하나님 나라의 일을 말씀하시니라.” 이 말씀은 주님이 부활하신 후 40일간 이 땅에 더 계실 때에 하신 일을 증언하는 대목입니다. 하나님 나라의 일을 전하신 것입니다. 그러니까 주님은 공생애 첫날부터 승천하시는 순간 마지막 날까지 하나님 나라를 선포하셨습니다. 하나님 나라 개념이 주님의 생애를 정확하게 관통합니다.
그러면 하나님 나라가 무엇입니까? 헬라어로는 <바실레이아 투 데우>입니다. 우리는 나라라고 하면 영토개념으로 생각합니다. 한반도, 일본 열도, 중국 대륙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하나님 나라를 우리는 죽어서 가는 저 세상으로 생각합니다. 그런데 성경이 말씀하는 하나님 나라는 영토 개념이 아니라 주권 개념입니다. 즉 하나님의 통치, 정치, 지배가 바로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그러므로 천국이야말로 하나님의 주권이 완벽하게 관철되는 세계이기에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그러나 천국만 하나님의 나라가 아닙니다. 어디든 하나님의 주권이 관철되는 곳이면 다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우리 사회에 하나님의 통치가 있으면 우리 사회가 하나님의 나라가 된 겁니다. 여러분의 가정이 하나님의 완벽한 지배하에 있으면 여러분의 가정이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여러분의 심령이 하나님의 통치 안에 있으면 여러분 안에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진 것입니다. 주님이 공생애 첫날부터 마지막 날까지 가르치고 선포하신 하나님의 나라는 바로 이런 것을 가리킵니다. 하나님의 통치를 받으라는 겁니다. 너희 안에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게 하라는 겁니다. 꼭 죽어서만 하나님 나라를 갈 수 있는 게 아닙니다. 이미 이 땅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나라, 곧 하나님의 지배를 받으며 살아야 합니다. 내 삶을 통해 하나님의 뜻이 구현되고 성취되게 해야 합니다. 죽어서 가는 천국은 이 땅에서 이미 우리가 살고 있는 천국의 연장입니다.
주님이 이렇게 하나님의 나라, 주권, 통치를 선포하셨는데, 거기에 자신의 모든 생애를 바치셨습니다. 그러니까 주님의 생애, 삶, 캐릭터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정적이지만은 않았습니다. 우리가 미처 생각하지 못하는 역동적인 부분, 모험적이며 도전적이고 개혁적인 부분이 있습니다. 공생애 첫 날부터 하나님의 주권을 외쳤습니다. 본문 14절을 보십시오. “요한이 잡힌 후 예수께서 갈릴리에 오셔서 하나님의 복음을 전파하여.” 이것은 주님이 하나님 나라를 선포하시며 공생애를 시작하신 그 구체적인 시점을 말씀하는 대목입니다. 주님이 언제 공생애를 시작하셨습니까? 요한이 잡힌 후입니다. 여기 나오는 요한은 세례요한입니다. 세례 요한이 헤롯 안티바스의 부정을 고발했습니다. 공개적으로 백성들 앞에서 성토했습니다. 그래서 헤롯왕의 미움을 사서 정치범으로 체포된 직후에 주님이 공생애에 들어가신 것입니다. 주님이 요한이 잡혔다는 소식을 들으셨습니다. 그래서 급하게 갈릴리로 가셨습니다. 아직 갈릴리 분위기는 험악하며 공안정국입니다. 그런데 그 사건현장으로 직행하셔서 거기서 하나님의 나라, 주권을 외치신 것입니다. 갈릴리는 지금 헤롯의 주권이 횡포하고 있습니다. 헤롯의 정치권력이 의로운 세례요한을 잡아간 겁니다. 그 현장에 가서 하나님의 통치를 외친 것입니다. 이것은 혁명입니다. 선전포고입니다. 갈릴리는 헤롯의 영역인데, 하나님의 통치를 외치신 겁니다. 그러면서 공생애 첫 발을 내딛은 겁니다. 이러한 컨텍스트를 이해하셔야 합니다. 헤롯 안티바스의 주권이 횡행하는 곳에 가서 하나님의 통치를 선포하시며 공생애에 들어가시는 주님은 현실 나라와 세상에 대해 대단히 비판적이며 도전적이셨습니다.
주님의 그 다음 행보는 무엇입니까? 요한복음 2장 13절 이하입니다. “[13] 유대인의 유월절이 가까운지라 예수께서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셨더니 [14] 성전 안에서 소와 양과 비둘기 파는 사람들과 돈 바꾸는 사람들이 앉아 있는 것을 보시고 [15] 노끈으로 채찍을 만드사 양이나 소를 다 성전에서 내쫓으시고 돈 바꾸는 사람들의 돈을 쏟으시며 상을 엎으시고 [16] 비둘기 파는 사람들에게 이르시되 이것을 여기서 가져가라 내 아버지의 집으로 장사하는 집을 만들지 말라 하시니 [17] 제자들이 성경 말씀에 주의 전을 사모하는 열심이 나를 삼키리라 한 것을 기억하더라 [18] 이에 유대인들이 대답하여 예수께 말하기를 네가 이런 일을 행하니 무슨 표적을 우리에게 보이겠느냐 [19]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가 이 성전을 헐라 내가 사흘 동안에 일으키리라.” 주님이 갈릴리에서 막 공생애를 시작하셨는데 유월절이 가까웠습니다. 예수님은 갈릴리에서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셨습니다. 예수님은 곧장 성전으로 가셨습니다. 거기에서 난동을 부립니다. 만인이 기도하는 집을 너희가 난장판, 강도의 소굴로 만들었다고 하십니다. 공생애 첫 시발지인 갈릴리에서는 사회개혁을 뜻했다면, 예루살렘 성전 숙정은 종교개혁을 가리킵니다. 주님은 공생애를 개혁으로 시작하셨습니다. 예루살렘 성전은 유대교의 본산입니다. 그런데 주님이 유대교의 심장까지 돌진하셔서 채찍을 휘두르며 성전을 정화하시고, 이 성전을 허물어버리라고 하십니다. 이 얼마나 과격한 모습입니까? 타락한 종교를 질타하셨습니다. 주님께 우리가 미처 모르는 이런 혁명가적 면모가 있었습니다.
주님의 이러한 개혁정신을 계승한 사람은 누구입니까? 지금으로부터 약 494년 전에 루터와 칼빈이 주님의 이러한 하나님 나라 사상을 계승하였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천 년의 중세 암흑기를 개혁했습니다. 우리 교획 속한 장로교는 종교개혁가 중 칼빈의 노선을 추종합니다. 칼빈의 신학 가운데 개혁과 관련하여 잊지 말아야 할 가르침이 바로 <그리스도 통치론>(Koenigsherrschaft Christi-Lehre)입니다. 이 말의 뜻은 세상의 모든 영역이 그리스도 통치 하에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럴 때만 참되고 바르다는 사상입니다. 사회도 정치도 경제도 개인 심령도 다 주님의 통치 하에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주님이 외치셨던 하나님 나라 개념과 똑 같습니다. 만약 그렇지 않은 영역이 있다면 그 영역을 대상으로 하나님의 뜻을 관철하는 것이 개혁이며, 그 일선에 우리 믿는 자들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 흑암한 삶의 영역에 대해 우리가 제 일선에 서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개혁교회의 정체성입니다. 이런 사상을 승계한 교파가 장로교입니다.
똑같이 종교개혁을 통해 출범했지만, 루터교는 신념이 다릅니다. 루터교는 그리스도 통치설이 아니라 <두 왕국설>(Zwei Reiche-Lehre)입니다. 정치와 종교, 신앙과 사회를 나눕니다. 두 영역 간에 서로 간섭하지 말자는 겁니다. 소위 정교분리의 원칙이 루터파의 산물입니다. 독일 히틀러 시대 때 루터교는 정교분리의 원칙을 내세웠으나, 장로교는 고백교회(Bekennende Kirche)를 통해 끝까지 히틀러와 투쟁했습니다. 그래서 루터교를 개혁교회라고는 하지 않습니다. 장로교만 개혁교회라고 합니다. 우리나라는 미국에서 장로교가 들어왔기에 장로교(presbyterian church)라고 합니다. 유럽 쪽에서는 장로교회를 개혁교회(reformed church)라고 부릅니다. 장로교의 산실인 스위스 제네바에 가도 장로교라고 하면 모릅니다. 개혁교회라고 해야 알아듣습니다. 우리 교회가 바로 이런 전통에 서 있습니다. 개혁교회입니다. 부단히 개혁해야 합니다. 장로교의 전통은 정교분리의 원칙이 아닙니다. 어디든 하나님의 통치가 관철되게 해야 합니다. 그 사역을 현실 속에서 감당하며 살아야 하는 사람이 개혁교회 성도들입니다. 다시 한 번 우리 교회가 소속된 개혁교회, 장로교회의 정체성을 이해하시고, 언제든 여러분의 삶을 통해 하나님의 주권을 확립하고 관철하는 성도들 되십시다.
설교영상보기:http://tvpot.daum.net/clip/ClipViewByVid.do?vid=hPFI-PSEFw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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