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교회 아카이브

하나님 경외(전 5:8-17)

2011. 10. 28

하나님 경외

전 5:8-17


우리가 하나님을 경외한다는 것은 곧 하나님을 의식하고 두려워 한다는 뜻입니다. 물론 하나님은 사랑이십니다. 그러나 그게 하나님 속성의 전부는 아닙니다. 하나님은 사랑의 하나님이실 뿐 아니라 공의의 하나님, 두려우신 하나님이십니다. 그래서 죄를 미워하시고 <빈민을 학대>하고 <정의와 공의를 짓밟는 것>을 보시면 노여워하십니다. 따라서 사랑의 하나님 이전에 두려우신 하나님임을 깨닫고 그분을 경외하는 일에 더욱 힘쓰라는 것입니다.


사람을 두려워 말라.

<너는 어느 지방에서든지 빈민을 학대하는 것과 정의와 공의를 짓밟는 것을 볼지라도 그것을 이상히 여기지 말라 높은 자는 더 높은 자가 감찰하고 또 그들보다 더 높은 자들도 있음이니라>(8절).

우리가 세상을 두려워 하고 <높은 자>들을 두려워 한다는 것은 정말 두려워 해야 할 하나님을 망각한 소치입니다. 그래서 당장 눈 앞에 보이는 상대적인 존재들에게서 절대적인 공포를 느끼는 것입니다. 생각해 보면 우리가 느끼는 두려움이란 언제나 내가 집착하는 그 무엇에서옵니다. 명예에 집착하면 명예가 바로 절대적인 두려움의 대상이 되고, 권력에 집착하면 권력이 또한 나의 절대적인 두려움이 됩니다. 따라서 두려움이란 절대적 존재이신 하나님을 제대로 경외하지 않은 데서 온 불신앙이라는 데 그 심각성이 있습니다. 주님은 제자들을 세상으로 내 보내시며 거듭 <두려워하지 말라!>(마 10:26,28,31)고 당부하셨습니다. 부디 하나님을 경외하는 절대적인 두려움으로 사람을 무서워하는 상대적인 두려움을 과감히 물리치십시오.


땅에 많은 재물을 쌓아 두지 말라.

<은을 사랑하는 자는 은으로 만족하지 못하고 풍요를 사랑하는 자는 소득으로 만족하지 아니하나니 이것도 헛되도다>(10절).내가 해 아래에서 큰 폐단 되는 일이 있는 것을 보았나니 곧 소유주가 재물을 자기에게 해가 되도록 소유하는 것이라>(13절) 

주님도  <삼가 모든 탐심을 물리치라 사람의 생명이 그 소유의 넉넉한 데 있지 아니하니라>(눅 12:15)고 하셨습니다. 지난 한 주간 뉴스에 비친 로또 열풍에 퍽 놀랐습니다. 인생 역전을 노린 서민들 사이에 이월 당첨금에 대한 기대가 높아 전국이 그렇게 들썩였다고 합니다. 아무리 현실이 고되고 각박해도 일확천금을 노리기보다 자족하며 감사하며 살아야 믿는 자 답습니다. <나를 가난하게도 마옵시고 부하게 마옵시고 오직 필요한 양식으로 나를 먹이시옵소서. 혹 내가 배불러서 하나님을 모른다 여호와가 누구냐 할까 하오며 혹 내가 가난하여 도둑질하고 내 하나님의 이름을 욕되게 할까 두려워 함이니이다>(잠 30:8-9)한  이 <아굴의 기도>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당신의 진솔한 고백이 되기를 진심으로 기원합니다.


벌거벗고 왔다가 또 그렇게 가는 게 인생이다.

<그가 모태에서 벌거벗고 나왔은즉 그가 나온대로 돌아가고 수고하여 얻은 것을 아무것도 자기 손에 가지고 가지 못하리니>(15절).

사람은 누구나 벌거벗은 채 태어나므로 부모가 포대기로 감싸줍니다. 죽을 때도 모든 것을 다 놓고 가므로 사람들이 그 몸에 수의를 입힙니다. <내가 모태에서 알몸으로 나왔사온즉 또한 알몸이 그대로 돌아가올지라 주신 이도 여호와시요 거두신 이도 여호와시오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 지니이다>(욥 1:21). <그가 죽으며 가져가는 것이 없고 그의 영광이 그를 따라 내려가지 못함이로다>(시 49:17). 이는 어김없는 사실이며 단 한 사람도 예외없는 진실입니다. 불가에서도 공수래 공수거(空手來 空手去)라 하여 빈 손으로 왔다가 빈 손으로 가는 게 무상한 인생이라고 합니다. 실은 그래서 솔로몬은 하나님을 경외한다고 합니다. 허무한 것이 인생이고(16절), 사는 동안에도 평안이나 건강, 행복보다도 <근심과 질병과 분노>(17절)가 더 많은 게 일상이므로 오직 하나님 경외만이 의미가 있을 뿐 다른 것은 다 <바람 잡는 수고>에 불과하다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