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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1023n: 살기 싫은 표정(시 34:3-6)

2011년 10월 23일 주일오후예배

본문: 시 34:3-6

제목: 살기 싫은 표정


[3] 나와 함께 여호와를 광대하시다 하며 함께 그의 이름을 높이세 [4] 내가 여호와께 간구하매 내게 응답하시고 내 모든 두려움에서 나를 건지셨도다 [5] 그들이 주를 앙망하고 광채를 내었으니 그들의 얼굴은 부끄럽지 아니하리로다 [6] 이 곤고한 자가 부르짖으매 여호와께서 들으시고 그의 모든 환난에서 구원하셨도다


요즘 모든 분들의 얼굴에 그늘이 많이 져있습니다. 우리나라뿐 아니라 지구촌 모든 나라 사람들의 마음이 무겁습니다. 경제적인 사정이 좋지 않아 그렇습니다. 심하게 표현하면 다 살기 싫은 표정입니다. 우리 믿는 사람은 표정관리가 대단히 중요합니다. 가식적이거나 위선적인 표정을 연출하라는 뜻은 아닙니다. 실제는 전혀 그렇지 않으면서도 방송에 나오면 행복해 죽겠다는 표정을 짓는 연예인 부부 같은 경우 말입니다. 우리는 그래서는 안 되고 믿는 사람 본연의 밝고 맑은 표정이 중요합니다. 링컨이 그런 얘기를 했습니다. 나이 40이 되면 자기 얼굴에 책임을 져야한다고 말입니다. 이 말은 우리 믿는 사람에게 해당하는 말입니다. 


마태복음 17장을 보면 변화산에 오르신 주님의 얼굴이 해같이 빛났다고 합니다. 오늘 본문에도 5절을 보면 얼굴에 광채가 난다고 합니다. 믿는 사람들의 얼굴에서 광채가 나지 않으면 부끄러운 일입니다. 표정관리에 실패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우리가 늘 밝은 표정으로 살기를 바라십니다. 


그러면 우리의 표정이 왜 밝아야 하는지, 또 어떻게 하면 밝은 표정으로 살 수 있을까요? 하나님은 빛이십니다. 하나님은 어둠이 아니십니다. 그 하나님의 얼굴을 앙망하며 사는 사람들이 우리들입니다. 우리 자신이 발광체는 아니나 하나님이 빛이시기에 그 빛이신 하나님을 가까이에서 우러르며 살면 반드시 우리 얼굴에서도 빛이 반사됩니다. 마치 달처럼 말입니다. 주님은 우리를 빛이라고 하셨습니다. 빛이신 하나님을 앙망하며 사는 사람들이기에 항상 우리 얼굴에서 빛이 나야한다는 뜻입니다. 여기서 <앙망한다>는 말은 우러러 본다는 뜻인데, 우리 삶의 중심에 태양 같은 하나님을 우리 삶의 중심에 놓고 자전도 공전도 하며 사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면 우리도 달처럼 별처럼 빛이 납니다. 빛이 안 나는 게 이상한 겁니다. 새까만 달은 비정상입니다. 마귀는 어둠입니다. 왜냐면 하나님으로부터 가장 멀리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하나님 가까이에 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 삶의 구심이며 우리 존재의 태양입니다. 그러므로 필연적으로 우리 모습에서는 빛이 나야 합니다. 가장 가까이에서 하나님의 그 강렬한 빛을 세상에 반사해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우리가 세상의 빛이라는 말입니다. 얼굴에서 광채가 나야 부끄럽지 않은 믿는 사람의 본연의 모습입니다. 이게 5절이 가리키는 뜻입니다. 하나님을 앙망하며 사십시오. 천사의 얼굴에 왜 그늘이 없습니까? 어거스틴은 천사들이 하나님 가까이에서 그분을 관상하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천사도 발광체는 아닙니다만, 하나님 가까이에 있기에 우리보다 훨씬 더 밝은 모습을 띠는 것입니다. 그래서 천사도 피조물이지만 인간보다 타락할 가능성이 훨씬 적습니다. 출애굽기 34장을 보면 모세가 시내산에 올라가 하나님을 뵙고 십계명을 받아 산 아래로 내려오는 모습이 나옵니다. 그때 백성들이 모세 가까이 접근을 못했습니다. 왜냐면 모세 얼굴에서 강한 빛이 났기 때문입니다. 감히 백성들이 모세에게 범접을 하지 못할 정도였습니다. 그때 왜 모세 얼굴에서 빛이 났을까요? 하나님을 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모세가 수건으로 자기 얼굴을 가렸습니다. 그 정도로 강렬한 빛이 나왔습니다. 하나님을 더욱 가까이 하십시오. 하나님을 앙망하십시오. 그래서 여러분의 표정도 늘 빛나기를 진심으로 빕니다.


우리는 성령 충만해야 얼굴에서 빛이 납니다. 스데반 집사 이야기 아시지요? 사도행전 6-7장에 나옵니다. 스데반은 성 밖에 끌려 나가 돌 세례를 받고 죽어가면서도 그 표정이 사색이 아니라 천사처럼 빛났습니다. 돌에 맞아 죽는 사람이 사색이어야 하는데 천사와 같았다는 겁니다. 어째서 그랬을까요? 성령 충만했기 때문입니다. 사도행전 7장 55절을 보면 그가 성령 충만해서 그의 얼굴이 천사처럼 밝았다고 했습니다. 빛의 영이신 성령으로 충만하면 내 용모에서 빛이 납니다. 우리들의 표정은 절대 감출 수 없습니다. 연출할 수도 없습니다. 얼굴에 다 드러납니다. 누가 성령 충만한지 아닌지 척 보면 다 압니다. 성령 충만하면 자연스레 표정에서, 얼굴에서 드러납니다. 오죽하면 돌에 맞아 죽어가면서도 그 얼굴이 천사 같았을까요? 그래서 믿는 사람들은 자기 얼굴과 표정에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성령 충만하셔서 다 우거지상이고, 그늘진 표정이지만, 밝은 표정으로 사시면서 남에게 기쁨도 웃음도 희망도 주며 사는 성도들 되십시다. 


기도해야 얼굴에서 빛이 납니다. 누가복음 9장 29절을 보면 주님도 기도하실 때 용모가 변했다고 합니다. 기도하기 전에는 인생의 모든 짐을 내가 지고 있다가 기도하면서 내 짐을 주님께 맡깁니다. 그러면 자연히 얼굴이 밝아집니다. 그래서 기도하는 사람은 그 얼굴이 다릅니다. 얼굴이 밝습니다. 정말 동안이 됩니다. 기도하면서 마음의 무거운 짐을 내려놓으면, 모든 인생의 짐을 주님께 맡기면, 자연히 얼굴이 밝아집니다. 기도해야 합니다. 그래서 여러분 모두 동안 미인이 되십시오. 


설교영상보기: http://tvpot.daum.net/clip/ClipViewByVid.do?vid=fKFZ6e4dSD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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