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교회 아카이브

20111023m: 가지와 줄기(요 15:1-8)

2011년 10월 23일 주일낮예배

본문: 요 15:1-8

제목: 가지와 줄기


[1] 나는 참포도나무요 내 아버지는 농부라 [2] 무릇 내게 붙어 있어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가지는 아버지께서 그것을 제거해 버리시고 무릇 열매를 맺는 가지는 더 열매를 맺게 하려 하여 그것을 깨끗하게 하시느니라 [3] 너희는 내가 일러준 말로 이미 깨끗하여졌으니 [4] 내 안에 거하라 나도 너희 안에 거하리라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지 아니하면 스스로 열매를 맺을 수 없음 같이 너희도 내 안에 있지 아니하면 그러하리라 [5]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 그가 내 안에, 내가 그 안에 거하면 사람이 열매를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이라 [6] 사람이 내 안에 거하지 아니하면 가지처럼 밖에 버려져 마르나니 사람들이 그것을 모아다가 불에 던져 사르느니라 [7]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 [8] 너희가 열매를 많이 맺으면 내 아버지께서 영광을 받으실 것이요 너희는 내 제자가 되리라


올해는 장마가 길고 비가 많았습니다. 그에 비해 태풍은 별로 없었습니다. 가을볕도 유난히 좋았습니다. 가을비는 농사에 별 도움이 안 되는데, 가을비도 별로 없었습니다. 그래서 농사가 잘 되었는데, 특히 과수농사가 잘 되었다고 합니다. 사과나 포도가 그렇게 잘 되었다고 합니다. 저의 이모가 전라도 광주에서 포도농사를 크게 하시는데, 올해 재미있다고 합니다. 


오늘 본문은 유명한 비유 말씀입니다. 아마 우리가 가장 익숙하게 기억하고 있는 말씀일 겁니다. 특히 교회학교 어린이들은 성경의 이야기 가운데 이 얘기를 가장 많이 기억할 겁니다. 주님이 자신을 참 포도나무라고 하셨습니다. 포도나무 줄기라는 뜻입니다. 우리는 그 포도나무 줄기에 붙은 가지라고 합니다. 하나님은 그 포도나무를 관리하는 농부라고 합니다. 단순하면서도 그 비유가 적절합니다. 그런데 여기서 자신을 그냥 포도나무라고 하지 않고 참 포도나무라고 하셨습니다. 포도나무도 포도나무 나름입니다. 포도도 생산지나 브랜드에 따라 다 다릅니다. 구약 예레미야 2장 21절에 보면 “내가 너를 순전한 참 종자 곧 귀한 포도나무로 심었거늘 내게 대하여 이방 포도나무의 악한 가지가 됨은 어찌 됨이냐”고 합니다. 처음엔 명품 종자를 심었는데, 나중에 보니 돌 포도나무가 되었다는 겁니다. 포도나무는 목재나 땔감으로도 적절하지 않습니다. 오직 열매입니다. 열매를 얻기 위해 농부가 포도나무를 심고 가꾸는 겁니다. 사실 전에 우리는 다 악한 자녀들이었습니다. 그런데 농부이신 아버지 하나님이 명품 포도나무인 주님께 젙붙임을 하신 겁니다. 그래서 우리가 중생한 겁니다. 8절입니다. “너희가 열매를 많이 맺으면 내 아버지께서 영광을 받으실 것이요 너희는 내 제자가 되리라.” 우리가 열매를 풍성히 맺으면 농부이신 하나님이 큰 기쁨을 누리시고, 우리는 명실상부한 주님의 제자가 된다는 겁니다. 참 포도나무의 훌륭한 가지들이 된다는 겁니다. 그러므로 올해도 우리는 열매를 많이 맺어야 합니다. 포도원 농부이신 하나님과 결산할 날이 오래 남지 않았습니다.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우선 참 포도나무이신 주님께 단단히 붙어 있어야 합니다. 4절입니다. “내 안에 거하라 나도 너희 안에 거하리라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지 아니하면 스스로 열매를 맺을 수 없음 같이 너희도 내 안에 있지 아니하면 그러하리라.” 그런데 가지가 열매를 맺습니까? 아니면 열매가 가지에 달리는 겁니까? 후자입니다. 가지는 열매를 맺지 못합니다. 가지는 그저 줄기에 든든히 붙어만 있으면 그 포도나무가 열매를 가지 끝에 답니다. 가지의 할 일은 줄기에 든든히 붙어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 포도나무 줄기가 땅으로부터 자양분을 빨아올려 가지 끝에 싱그러운 포도송이를 다는 겁니다. 주님은 항상 이렇습니다. 주님이 다 하시면서 풍성한 열매를 가지 끝에 다시며, 그 영광은 가지에게 다 주십니다. 줄기이신 주님께 늘 붙어계십시오. 참 그리스도인은 어떤 사람일까요? 세례 받은 사람? 태신자? 헌금 바치고 예배드리는 사람? 물론 다 맞습니다만, 무엇보다 주님께 든든히 붙어있는 사람입니다. 가지는 줄기를 떠나 존재할 수 없습니다. 열매를 맺을 수 없습니다. 여러분은 지금 어떻습니까? 참 포도나무이신 주님을 든든히 붙잡고 계십니까? 혹 줄기에서 떨어져 시들어 가거나 말라가고 있지는 않습니까? 냉정하고 정직하게 자신을 점검하십시오. 혹 부실하게 엉성하게 반쯤만 주님을 잡고 계시면 열매를 맺지 못합니다. 


다음은 성결한 생활입니다. 거룩하게 자기를 관리하는 일입니다. 병충해 피해를 입으면 풍성한 열매를 맺지 못합니다. 과수농사에서 중요한 것은 약 치는 일입니다. 2절 하반절입니다. “무릇 열매를 맺는 가지는 더 열매를 맺게 하려 하여 그것을 깨끗하게 하시느니라.” 하나님도 우리에게 열매를 풍성히 맺게 하시려고 때가 되면 전지도 하고, 꽃도 따주고, 약도 치십니다. 그래야 열매를 잘 맺습니다. 더 알찬 열매를 위해 농부는 열심히 관리를 합니다. 과수농사에서 여러 번 약을 치나 한 번만 제 때에 약을 치지 못하면 그해 농사를 망칩니다. 우리를 건강하고 풍성하게 하시기 위해 하나님도 때로 가위로 우리를 자르시고, 꽃도 따시고, 독한 약도 뿌리십니다. 그것은 우리가 미워서가 아니라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입니다. 우리로 하여금 풍성한 열매를 맺게 하시기 위해서입니다. 그때 잘 견디고 잘 인내해야 합니다. 우리 교회 밭에도 포도나무 한 그루, 대추나무, 앵두나무, 배나무도 있습니다만, 열매를 잘 맺지 못합니다. 관리를 안 해서입니다. 저는 과수나무만 심으면 열매가 달리는 줄 알았습니다. 작년까지는 그래도 배가 한 두개 열리더니 올해는 하나도 안 열렸습니다. 가지치기와 약을 안 쳐서 그렇습니다. 과일은 아니지만 배추도 마찬가지입니다. 올해 우리 교회 밭의 배추는 잘 되었습니다. 다 묶어놨는데, 그냥 묶으면 안 되고 그 안의 벌레를 다 잡고 묶어야 합니다. 알찬 배추나 명품 과일을 얻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농부이신 하나님도 우리에게 약을 뿌리십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뿌리는 무공해 살충제는 3절입니다. “너희는 내가 일러준 말로 이미 깨끗하여졌으니.” 하나님의 말씀이 무공해 살충제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우리를 깨끗하게 관리할 수 있습니다. 시편 119편 9절입니다. “청년이 무엇으로 그의 행실을 깨끗하게 하리이까 주의 말씀만 지킬 따름이니이다.” 부디 올해도 하나님의 말씀으로 여러분의 삶과 영혼을 잘 관리하셔서 병충해 피해 없이 하나님이 기대하시는 수준의 풍성한 열매를 수확하게 되길 빕니다. 


또한 긴밀한 교제가 있어야 합니다. 4-7절입니다. “[4] 내 안에 거하라 나도 너희 안에 거하리라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지 아니하면 스스로 열매를 맺을 수 없음 같이 너희도 내 안에 있지 아니하면 그러하리라 [5]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 그가 내 안에, 내가 그 안에 거하면 사람이 열매를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이라 [6] 사람이 내 안에 거하지 아니하면 가지처럼 밖에 버려져 마르나니 사람들이 그것을 모아다가 불에 던져 사르느니라 [7]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 이런 말씀들은 다 가지와 줄기 간의 긴밀한 교제를 뜻합니다. 주님과의 이런 영적 교감이 이루어질 때 값진 열매를 맺을 수 있습니다. 본문을 자세히 보시면 처음에는 그냥 가지가 줄기에 붙어 있어야 열매를 맺는다고 합니다. 이후에는 깨끗하게 해야 열매를 더 맺는다고 합니다. 마지막에는 저가 내 안에 내가 저 안에 있어야 많은 열매를 맺는다고 합니다. 이 과정과 수준을 기억하십시오. 풍성한 열매를 위해서는 주님과의 긴밀한 영적 교제가 필요합니다. 많은 열매를 바라신다면 주님과 하나가 되십시오. 주님은 줄기고 나는 가지면 되었지 뭘 더 바라는가? 하지 마십시오. 몸은 분명 교회에 있는데 마음은 콩밭에 있습니다. 형식상 줄기에 붙어 있는 것 같으나 마음은 아닙니다. 형식적으로 예배에 참석하는 것으로 만족하지 마시고 온전히 주님과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본문 7절을 다시 보십시오.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 왜 우리 기도가 공허합니까? 왜 우리 기도에 응답이 없습니까? 내가 진심으로 주님과 교제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내가 아직 몸과 마음과 영혼으로 주님과 온전한 하나를 이루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아직도 멀리서 장거리 전화만 하고 있습니다. 필요할 때만 주님께 전화를 하고 있습니다. 이게 우리의 수준입니다. 주님 품에 깊숙이 안겨서 속삭여야 합니다. 그렇게 하라는 말씀이 바로 ‘너희가 내 안에, 내가 너희 안에 거한다’는 것입니다. 베갯밑 송사는 통하지 않는 게 없다고 합니다. 주님께도 이렇게 해야 합니다. ‘무엇이든지 구하라. 다 이루리라.’ 얼마나 대단한 약속입니까? 진심으로 여러분이 원하는 바를 다 얻고자 하신다면, 완벽히 주님 품에 안겨 속삭이십시오. 


오늘 포도나무 비유의 결론은 16절입니다. “너희가 나를 택한 것이 아니요 내가 너희를 택하여 세웠나니 이는 너희로 가서 열매를 맺게 하고 또 너희 열매가 항상 있게 하여 내 이름으로 아버지께 무엇을 구하든지 다 받게 하려 함이라.” 우리로 하여금 아버지께 무엇을 구하든지 다 받게 하기 위해 내가 너희를 참 포도나무의 가지로 택했다는 겁니다. 그런데 여러분은 기도하여 얼마나 응답을 받으셨습니까? 이 단순하고 명확한 포도나무 비유를 통해 대체 내게 무엇이 문제인지, 어떻게 기도 응답이 이루어질지를 한 번 고민해 보십시다. 


설교영상보기: http://tvpot.daum.net/clip/ClipViewByVid.do?vid=aaazqaVM3_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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