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교회 아카이브

20111016m: 기도할 때(마 14:22-33)

2011년 10월 16일 주일낮예배
본문: 마 14:22-33
제목: 기도할 때

[22] 예수께서 즉시 제자들을 재촉하사 자기가 무리를 보내는 동안에 배를 타고 앞서 건너편으로 가게 하시고 [23] 무리를 보내신 후에 기도하러 따로 산에 올라가시니라 저물매 거기 혼자 계시더니 [24] 배가 이미 육지에서 수 리나 떠나서 바람이 거스르므로 물결로 말미암아 고난을 당하더라 [25] 밤 사경에 예수께서 바다 위로 걸어서 제자들에게 오시니 [26] 제자들이 그가 바다 위로 걸어오심을 보고 놀라 유령이라 하며 무서워하여 소리 지르거늘 [27] 예수께서 즉시 이르시되 안심하라 나니 두려워하지 말라 [28] 베드로가 대답하여 이르되 주여 만일 주님이시거든 나를 명하사 물 위로 오라 하소서 하니 [29] 오라 하시니 베드로가 배에서 내려 물 위로 걸어서 예수께로 가되 [30] 바람을 보고 무서워 빠져 가는지라 소리 질러 이르되 주여 나를 구원하소서 하니 [31] 예수께서 즉시 손을 내밀어 그를 붙잡으시며 이르시되 믿음이 작은 자여 왜 의심하였느냐 하시고 [32] 배에 함께 오르매 바람이 그치는지라 [33] 배에 있는 사람들이 예수께 절하며 이르되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이로소이다 하더라

내일부터 11월 11일까지 4주간 특별새벽기도회를 갖습니다. 그래서 오늘 주제는 기도입니다. 기도와 우리 삶의 관계를 생각해 봅니다. 기도가 왜 우리 삶에 필수불가결한지를 확인해 봅니다. 

우리는 왜 기도해야 합니까? 기도할 때 주님을 만나기 때문입니다. 이게 우리가 기도해야 할 결정적 이유입니다. 오늘 본문을 보십시오. 주님이 오병이어로 5천명이 넘는 군중을 먹이시고 이제 그 무리를 돌려보내는 동안 제자들을 바다 건너편으로 먼저 보내십니다. 그런데 주님은 무리를 다 보낸 후 홀로 산으로 가셨습니다. 왜 주님이 산으로 가셨습니까? 등산하러 가신 게 아닙니다. 기도하러 가셨습니다. “예수께서 즉시 제자들을 재촉하사 자기가 무리를 보내는 동안에 배를 타고 앞서 건너편으로 가게 하시고 무리를 보내신 후에 기도하러 따로 산에 올라가시니라 저물매 거기 혼자 계시더니”(22-23절). 왜 주님이 홀로 기도하러 산에 가셨을까요? 이런 대목이 복음서에는 여러 군데 나옵니다. 주님은 자주 홀로 산이나 광야로 기도하러 가셨습니다. 왜 주님이 그리로 가셨을까요? 기도하는 순간에 하나님을 뵙기 위해서입니다. 우리는 기도할 때 주님을 뵙습니다. 분주하게 세상살이를 할 때는 주님보다는 세상 사람을 만납니다. 세상 사람을 만나는 동안엔 주님을 잊습니다. 주님이 오병이어를 먹이시던 날도 분주했습니다. 수천 명을 말씀과 양식으로 먹이고, 그들을 배웅도 하셨습니다. 분주하게 하루를 보내신 겁니다. 그리고 나서 주님은 기도하러 가신 겁니다. 이것을 봐도 기도는 우리 삶의 필수입니다. 우리도 많은 사람을 만납니다. 그러는 동안에는 사실 우리가 하나님을 생각할 겨를이 없습니다. 그러나 기도할 때는 그래도 주님께 집중합니다. 주님이 홀로 산으로 가셨다는 말은 주님이 홀로 기도의 골방으로 들어가셨다는 겁니다. 기도의 골방으로 들어가야 주님과 주파수가 맞습니다. 그래야 영적으로 교감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 우리는 영성이 탁해서 기도할 때 내 기도를 듣고 계신지 실감하지 못해서 그렇지 우리가 홀로 기도하면 주님이 우리의 기도를 다 들으십니다. 주님이 내 앞에, 곁에, 나를 어루만지며 격려하고 계십니다. 탁한 영성을 가진 우리가 느끼지 못할 뿐입니다. 그러므로 기도할 때가 우리에겐 가장 복되며 아름다운 시간입니다. 우리도 내일부터 특별새벽기도회를 가집니다. 때 묻지 않은 하루 첫 시간을 주님께 바치며 주님을 만나는 겁니다. 이 시간은 너무도 아름답고 행복한 시간이요 행위입니다. 하루를 살며 우리가 많은 일을 하지만 주님 만나는 것보다 소중한 게 어디 있겠습니까? 깨끗한 시간에 주님을 만나는 것, 소중하고 아름다운 일입니다. 우리가 1년 365일을 그렇게 하지는 못하지만 1년에 한 번 4주간 특별새벽기도회를 통해 주님을 뵙고 내 소원을 아뢰는 일은 세상의 그 어떤 일보다 소중하며 복된 일입니다. 주님도 이렇게 사람들을 다 돌려보내고 홀로 산으로 가서 하나님을 뵈었는데, 하물며 우리들이겠습니까!

또한 기도는 가장 정직한 자신을 만나는 시간입니다. 왜 그럴까요? 기도란 자기만의 골방에 들어가 하나님 앞에서 벌거벗는 시간입니다. 우리가 사람을 만날 때는 화장을 합니다. 덧칠을 합니다. 그래서 늘 다른 모습으로 사람을 만납니다. 그러나 하나님 앞에서는 그게 안 통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폐부를 다 들여다 보시기에 하나님 앞에서는 우리가 위선이나 허세를 부릴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기도의 시간은 하나님뿐만 아니라 가장 정직한 자신을 만나는 시간입니다. 이것은 하나님 앞에서만 가능합니다. 베드로를 보십시오. 어느 날 갈릴리 해변에 주님이 나타나셨습니다. 베드로를 위시한 갈릴리 어부들이 밤새도록 고기 한 마리도 잡지 못했습니다. 주님이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내리라고 하자, 베드로가 그 말씀에 순종을 합니다. 우리가 밤새도록 그물질을 했으나 한 마리도 못 잡았으나 주님 말씀에 순종하겠다고 합니다. 그 결과 너무 많이 잡혀 한 배에 다 싣지 못해 두 배에 가득 실었다고 했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흥분해 있는데, 베드로는 주님 앞에 털썩 무릎을 꿇고 ‘주님 나를 떠나십시오. 나는 죄인입니다’라고 고백합니다. 주님을 만난 베드로가 자기 자신을 본 것입니다. 베드로는 지금까지 자신을 죄인이라 생각해 본 적이 없는데, 주님의 밝은 빛 앞에서 드러난 자신의 모습을 보니 자신은 죄 투성이임을 발견한 것입니다. 그래서 다른 사람은 흥분하고 즐거워하지만 베드로는 무릎을 꿇고 나는 죄인이라고 고백하는 겁니다. 기도할 때 주님을 뵙고, 주님의 영광의 빛 앞에서 드러나는 적나라한 자신의 모습이 바로 나의 모습이요, 참된 나입니다. 그러므로 기도의 골방에서만 우리는 자신을 만납니다. 잃었던, 잊었던 자신을 되찾습니다. 그래서 기도가 소중한 겁니다.

우리는 기도할 때 이웃을 만납니다. 기도할 때 이웃의 신음소리를 듣습니다. 여러분, 기도는 독백이 아닙니다. 기도는 주문이 아닙니다. 기도는 주님과의 대화입니다. 여러분이 실감하든 못하든 기도는 대화입니다. 주님과의 영적 교감입니다. 주님과의 실시간 채팅입니다. 일방적인 성명서 낭독이 아닙니다. 기도의 들어가면, 영적인 주파수가 맞아서 주님과 대화하는 겁니다. 성령과 쌍방향으로 교감하는 겁니다. 그래서 우리는 기도할 때 주님의 음성을 듣습니다. 어떤 식으로든 주님은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이뿐만 아니라 우리는 기도할 때 이웃의 신음, 비명소리를 듣습니다. 주님은 산에 올라 기도하시는데, 제자들은 갈릴리 바다에서 풍랑을 만나 비명을 지르고 있습니다. 그런데 기도할 때 그 제자들의 신음을 듣습니다. 주님이 이미 다 보고 계셨다는 겁니다. 오늘 본문의 평행 본문인 마가복음 6장을 보면 “바람이 거스르므로 제자들이 힘겹게 노 젓는 것을 보시고”라고 되어 있습니다(48절). 이처럼 주님은 지금 하나님 보좌 우편에서 우리를 보고 계십니다. 우리는 어떤 경우에도 고아가 아닙니다. 때로 여러분이 약해져서 우주의 고아라 느낄 때도 여러분은 고아가 아닙니다. 주님은 우리의 그런 나약한 모습을 지켜보시며 우리의 신음과 비명을 다 듣고 계십니다. 그런데 우리가 골방에 들어가 기도할 때 우리의 귀에도 이웃의 신음소리가 들린다는 겁니다. 우리 주변에는 무수한 비명이 있는데 우리 귀에 안 들리는 이유가 우리가 기도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기도하면 이웃의 비명이 들립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기도는 절대적입니다. 기도하는 사람만이 이웃에 대한 연민을 가질 수 있습니다. 기도하는 사람이 이웃의 비명을 듣고 그들을 위해 중보기도를 할 수 있습니다. 기도하는 사람만이 이웃의 비명을 듣고 그들을 위해 축복할 수 있습니다. 주님처럼 말입니다. 주님이 풍랑 만난 제자들을 구하시기 위해 밤에 풍랑 위를 걸어오신 것처럼 기도하는 사람만이 이렇게 이웃을 위해 구원의 손길을 내밀 수 있습니다.

기도할 때 우리도 풍랑 위를 걸을 수 있습니다. 밤 4경에 주님이 바다 위를 걸어 제자들에게 오셨습니다. 25절 이하입니다. “[25] 밤 사경에 예수께서 바다 위로 걸어서 제자들에게 오시니 [26] 제자들이 그가 바다 위로 걸어오심을 보고 놀라 유령이라 하며 무서워하여 소리 지르거늘 [27] 예수께서 즉시 이르시되 안심하라 나니 두려워하지 말라.” 제자들은 풍랑 때문에 죽을 고통을 겪고 있는데 주님은 그 풍랑 위를 의연히 걸어서 제자들에게 나타나셨습니다. 그리고 제자들을 향해 두려워하지 말라고 말씀하십니다. 내니 안심하라고 하십니다. 이렇게 말씀하시며 주님이 바다를 평정하셨습니다. 32절을 보면 주님이 배 위에 오르시니 바람이 그쳤다고 합니다. 여러분, 주님뿐 아니라 기도하는 사람은 풍랑 위를 걸을 수 있습니다. 주님이 요술을 부리신 게 아닙니다. 산에서 기도하셨기에 그 영력으로 바다 위를 걸으신 겁니다. 28절 이하를 보면, 베드로가 신기하고 경이로워 ‘나도 당신처럼 바다 위를 걷게 해달라’고 합니다. 주님이 안 된다고 하지 않으시고, 오라고 하십니다. 실제 베드로가 바다 위를 걸었습니다. 길게 걷지는 못했으나 잠시나마 걸었습니다. 이것은 가능성을 충분히 확인했다는 얘기입니다. 우리도 주님처럼 베드로처럼 풍랑 위를 딛고 서며 그 위를 걸을 수 있다는 얘깁니다. 지금은 모진 풍랑을 겪으나 기도하면, 믿음의 담력을 얻으면 우리도 얼마든지 나를 위협하는 풍랑을 제압할 수 있다는 겁니다. 나만 하실 수 있다는 뜻이 아닙니다. ‘너도 오라! 너도 걸을 수 있다!’는 뜻입니다. 이래서 우리는 반드시 기도해야 합니다. 주님처럼 기도하셔서 풍랑을 제압하고 그 위를 걷는 복된 성도들 되십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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