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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706m: 왜 맥추절인가?(출 23:16) 맥추감사주일

2008년 7월 6일 주일낮예배
본문: 출 23:16
제목: 왜 맥추절인가?

맥추절을 지키라 이는 네가 수고하여 밭에 뿌린 것의 첫 열매를 거둠이니라 수장절을 지키라 이는 네가 수고하여 이룬 것을 연종에 밭에서부터 거두어 저장함이니라

요즘은 보리농사를 짓는 사람이 거의 없습니다. 그렇다고 맥추절이 성경에 나오는 절기이기에 지키는 것은 아닙니다. 맥추절에 담긴 정신이 있기에 오늘날도 유효한 절기입니다. 맥추절에 담긴 정신이 어떤 것입니까?

맥추절은 초실절입니다. 첫 열매, 토지 소산의 맏물, 짐승의 초태생을 바치는 절기입니다. 본문 상반절입니다: “맥추절을 지키라 이는 네가 수고하여 밭에 뿌린 것의 첫 열매를 거둠이니라.” 출애굽기 34장 22절입니다: “칠칠절 곧 맥추의 초실절을 지키고 가을에는 수장절을 지키라.” 신명기 26장 10절입니다: “여호와여 이제 내가 주께서 내게 주신 토지 소산의 맏물을 가져왔나이다 하고 너는 그것을 네 하나님 여호와 앞에 두고 네 하나님 여호와 앞에 경배할 것이며.”

왜 토지 소산의 맏물과 짐승의 초태생을 드려야 합니까? 첫 열매, 첫 태생, 심지어는 자식의 장자는 하나님의 것이기 때문입니다. 시간도 첫 시간은 하나님의 시간입니다. 왜 첫 번째 것은 하나님의 것입니까? 첫 열매, 맏물이 갖는 대표성 때문에 그렇습니다. 첫 소득은 그 이후의 모든 소득을 대표합니다. 한 주간의 첫날인 주일이 다른 날을 대표합니다. 그러므로 첫 번째 것은 모두 하나님의 것입니다.

그렇다면 왜 하나님이 대표성을 가진 첫 번째 것을 당신의 것으로 성별해서 바치라고 명령하셨습니까? 이 세상 모든 만물이 다 하나님의 것임을 확인시키기 위해서입니다. 모든 것이 다 하나님의 소유임을 깨닫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래서 모든 것을 대표하는 맏물, 첫 열매, 첫 새끼, 장남을 바치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맏물을 바치면서 이 세상 모든 것이 다 하나님의 것임을 구체적으로 고백하기를 바라십니다. 우리는 첫 열매를 드리면서 올해 수확할 모든 열매를 하나님께 바치는 것입니다. 첫 수입을 바치면서 올해 우리의 모든 수입을 바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내 수입의 십일조를 바치는 것은 내 수입의 전체를 바치는 것이고, 한 주간의 첫날인 주일을 바치는 것은 이후 엿새 모두가 하나님께 바친다는 뜻입니다. 구약을 보면 하나님은 철저히 장자를 통해 그 가정을 축복하십니다. 왜냐면 맏이가 모든 자녀, 자손을 대표하기 때문입니다. 야곱이 형 에서의 장자권을 훔치는 것이 유명한데, 이런 장자문화를 배경으로 발생했던 에피소드입니다. 유럽의 유수한 기독교 국가를 보면 신부나 수녀, 목사를 보면 대부분이 장남이거나 장녀인 경우가 많습니다. 성경의 이 맏물 사상 때문에 그렇습니다. 개인의 소명감과는 상관없이, 개인의 결단과는 상관없이 장녀나 장남은 하나님께 바쳐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유럽의 신부나 수녀, 목사들은 그 가계의 희생제물인 셈입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자기의 모든 자식을 하나님께 바쳤다고 생각합니다. 이렇게 맏물, 초 태생, 첫 열매는 반드시 하나님의 것이라는 인식이 가장 중요한 맥추절의 정신입니다. 이것은 아름다운 전통입니다. 첫 번째 것은 무조건 하나님의 것입니다. 이것이 맥추절에 담긴 중요한 정신입니다. 맥추절은 생각보다 성대하게 치뤄졌습니다. 한 해의 첫 수확인 보리를 바침으로 그해의 모든 밭 작물을 바친다는 뜻이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는 반드시 흠없고 티없는 것을 바쳐야 한다는 것이 맥추절의 정신 중 하나입니다. 레위기 23장 보면 맥추절에 바치는 떡은 무교병이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대신에 소금을 치라고 했습니다. 성경이 말하는 누룩은 언제나 부패를 상징합니다. 누룩을 제하라는 것은 순수하고 정결한 맏물을 드리라는 뜻입니다. 짐승도 마찬가지입니다. 레위기 22장 20-23절입니다: “[20] 무릇 흠 있는 것을 너희는 드리지 말 것은 그것이 열납되지 못할 것임이니라 [21] 무릇 서원한 것을 갚으려든지 자의로 예물을 드리려든지 하여 소나 양으로 화목제 희생을 여호와께 드리는 자는 열납되도록 아무 흠이 없는 온전한 것으로 할지니 [22] 눈먼 것이나 상한 것이나 지체에 베임을 당한 것이나 종기 있는 것이나 괴혈병 있는 것이나 비루먹은 것을 너희는 여호와께 드리지 말며 단 위에 화제로 여호와께 드리지 말라 [23] 우양의 지체가 더하거나 덜하거나 한 것은 너희가 낙헌 예물로는 쓰려니와 서원한 것을 갚음으로 드리면 열납되지 못하리라.” 흠없고 티없는 것만 하나님께 바칠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께 드리는 맥추절 맏물은 무흠하고 정결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절대 거룩하신 분이기 때문입니다. 흠있는 것을 바치면 하나님의 영광을 더럽히는 것입니다. 시편 50편 10절 이하입니다: “[10] 이는 삼림의 짐승들과 천산의 생축이 다 내 것이며 [11] 산의 새들도 나의 아는 것이며 들의 짐승도 내 것임이로다 [12] 내가 가령 주려도 네게 이르지 않을 것은 세계와 거기 충만한 것이 내 것임이로다 [13] 내가 수소의 고기를 먹으며 염소의 피를 마시겠느냐.” 제물에 담긴 그 사람의 감사와 고백이 소중한 것이지, 제물 그 자체를 하나님이 보신다는 것은 아닙니다. 무조건 수입의 십일조를 떼어 바치면 되는 것이 아닙니다. 순전하고 흠없고 티가 없어야 합니다. 누룩대신 소금을 치고, 향유를 쳐야 하나님이 열납하십니다.

하나님이 왜 아벨의 제사는 받으시고 가인의 제사는 물리치셨습니까? 아벨은 양을 잡아 피의 제사를 드렸고, 가인은 곡식으로써 피의 제사를 바치지 않았기 때문입니까? 하나님은 피에 굶주린 신이 아닙니다. 많은 분들이 실제 이렇게 이해하고 해석합니다만 그렇지 않습니다. 가인이 곡식을 드린 것은 그가 농부였기 때문이고, 아벨이 양을 잡은 것은 그가 목자였기 때문입니다. 여기까지는 둘 다 아무런 문제가 없습니다. 그렇다면 왜 하나님이 아벨의 제사만 받으시고 가인의 제사를 받지 않으셨을까요? 창세기 4장 3절 이하입니다: “[3] 세월이 지난 후에 가인은 땅의 소산으로 제물을 삼아 여호와께 드렸고 [4] 아벨은 자기도 양의 첫 새끼와 그 기름으로 드렸더니 여호와께서 아벨과 그 제물은 열납 하셨으나 [5] 가인과 그 제물은 열납하지 아니하신지라 가인이 심히 분하여 안색이 변하니.” 가인은 그냥 땅의 소산을 제물로 삼았습니다. 그런데 아벨은 양의 첫 새끼를 드렸습니다. 가인에게서 맏물이라는 언급이 없습니다. 아벨에게선 첫 새끼가 나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아벨의 제사를 받으신 것입니다. 가인의 제물에는 흠이 있었습니다. 맏물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자식도 그렇습니다. 우리는 지금까지 공부 잘 하고 키 큰 자녀는 하나님께 바치지 않았습니다. 멀쩡한 자녀가 신학교 가겠다고 하면 온 집안이 발칵 뒤집혔습니다. 뭐가 부족해서 신학교를 가려고 하느냐는 겁니다. 비실비실하고 수능성적도 형편없어 이 대학 저 대학 다 떨어지면 신학교나 가라고 했습니다. 사업도 안 되고 하는 것마다 다 실패하면 흔히 목사나 라고 했습니다. 지금은 목사님들이 잘난 체 하지만, 정확히 말해 저까지는 다 그런 기준이었습니다. 요즘은 똑똑한 사람들이 신학교에 많이 갑니다. 그렇기에 목회자들이 못나게 굴어도 여러분이 좀 이해하셔야 합니다. 자업자득입니다. 여러분이 못난 자식들을 신학교에 보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교계가 어지럽습니다. 기본상식이나 소양에 있어 한참 미달인 사람이 신학교 가서 안수 받아 목회하니 이럴 수밖에 없습니다. 부실한 것들만 골라서 보냈기에 어쩔 수 없습니다. 여러분, 진정으로 잘 되기를 바라시고, 한국교회가 새롭게 되기를 바라신다면, 맥추절 정신을 회복하셔야 합니다. 무흠한 것을 바치십시오. 못난 것을 바치면 부메랑이 되어 돌아옵니다. 맏물과 초태생을 드리되 무엇보다 흠없고 티없는 제물을 드리시기를 기원합니다.

맥추절은 희생을 드리는 절기입니다. 레위기 23장 9절 이하를 보면 맥추절에 드리도록 되어있는 제물의 목록이 나옵니다. 고운 가루에서 어린 양, 숫염소, 숫소가 다 나옵니다. 그 양이 만만치 않습니다. 어린 양 네 마리, 수소 한 마리, 숫염소 한 마리입니다. 바울은 너희의 몸을 희생 제물로 드리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말씀하는 희생이 무엇입니까? 예수를 믿으면서도 얌체처럼 믿는 사람이 있습니다. 복을 바라지만 희생은 결코 용납지 않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보리 한 톨이 썩기를 거부하면서 어떻게 30, 60, 100배의 수확을 기대할 수 있습니까? 주님도 우리를 위해 당신의 독생자를 내 놓았습니다. 지금 우리는 많은 이들이 희생 없는 교회를 찾고 있습니다. 희생 없는 예배, 감사는 없습니다. 희생의 제물을 드려야 주님이 열납하십니다. 그래서 제물은 희생입니다. 성경은 제물과 희생을 구분없이 씁니다. 희생을 드리고, 감수하십시오.

맥추절의 이러한 정신을 계승하십니다. 맏물, 티없는 제물, 희생을 드리십시다. 그래야 하나님이 열납하십니다.

원문 자료와 첨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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