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교회 아카이브

맥추감사절에

신앙의 길이란 정작 세상살이에서는 우리를 손해보게 하는 경우가 참 많습니다. 따질 것을 제대로 따지지도 못하고 화낼 것도 참고 넘어가야하고 나도 부족할 지경인데 남과 나누라고 하니 그것도 거북하기 짝이 없습니다. 이 눈치 저 눈치 다 살피면서 일신의 안전을 도모해야 할 때도 절대 소신을 굽히지 못하게 하니 그 또한 쉬운 일이 아닙니다. 하여간 성경은 약삭빠른 자가 되는 것과는 거리가 멀고, 오히려 미련한 사람 소리 듣기에 딱 알맞은 처신만을 일러주고 있습니다. 하여 십자가는 바울이 말했듯이 세상이 비웃는 미련함의 극치요, 마음 편히 다가 설 수 없는 거리낌의 절정입니다. 주님도 세상살이에 좀 더 밝았다면 자신의 운명을 그런 지경으로까지 몰아가시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제자들 편에서 보면 주님은 답답하리 만치 세상 물정을 모르고 꿈속에서 사는 고집불통의 원칙론자였을 것입니다. 세상 지혜란 지금 바람이 어디에서 불어와 어디로 가는지 그 풍세를 면밀히 살펴 어느 쪽을 향해 돌아누울 것인가를 정하고, 누구 편에 붙을 것인가를 결정하는 재주입니다. 그래서 세상적인 경륜은 바람부는데 섣불리 씨를 뿌리지 말고 구름끼는데 추수 하겠다고 덜렁덜렁 들녘에 나가지 말라고 점잖게 훈육합니다. 그럼에도 주님은 굳이 북풍이 거센 들판에 나가 파종하셨고, 잔뜩 먹구름이 낀 날 추수의 때를 선포하셨습니다.  그래서 결국은 광야의 마파람과 장대같이 쏟아지는 굵은 소나기 속에 홀로 남겨지신 겁니다.

 하나님이 일찍이 욥에게 하신 말씀입니다.
  <너의 지혜가 그토록 깊고 넓은가? 네가 인생을 다 살아 보았는가?
   그렇다면 바다속 깊은 곳 그 근원까지 가 보았는가? 해가 뜨는 곳과
   동풍이 부는 그 시발점에 가본 적이 있는가? 네가 사자의 먹이를 계속 댈
   수 있으며 독수리가 하늘 높이 떠서 높은 곳에 보금자리를 튼 것이 네 명령
   에 따른 것인가? 악어의 입속에 손을 넣고도 그 손이 성할 수 있겠는가? >

무슨 말씀입니까? 마치 세상 모든 이치를 한 손에 거머쥐고 있기라도 하듯 날 뛰지 말라는 겁니다. 지금 잠시 부는 남풍에 목숨 걸지 말라는 겁니다. 고난의 시기가 왔다고 하나님의 선하신 경륜을 제멋대로 곡해하여 파종과 추수의 때를 놓치지 말라는 것입니다. 세상이 보기에는 미련하고 어리석은 듯해도 하나님의 지혜를 당할 자가 없으며 세상이 보기에는 이미 명쾌하게 결론이 나 버린 듯 해도 하나님이 경영하시는 역사에는 언제나 세상 교만과 약삭빠름을 일거에 부수는 <역전의 드라마>가 가득 차있다는 것입니다. 그걸 알지 못하면 십자가는 그야말로 저주로 그치지만 그것을 믿으면 십자가는 <사로잡힌 중에도 소망을 잃지 않는자의 기쁨>이 된다는 것입니다.

오늘 추수한 것에만 머물러 있는 신앙은 추수하지 못했다고 느낄때는 비틀거리게 되지만 어떤 경우에도 하나님의 무한하신 경륜과 선하심을 믿는 고백과 결단은 비록 추수할게 없다해도 결코 흔들리지 않습니다. 또 그런 믿음은 역경 앞에서도 씨뿌리기를 멈추지 않을 것이며, 거두는 일을 포기하지도 않을 것입니다. 그런 사람은 세상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 것을 바라는 자요, 비록 가진 것이 없어도 이미 풍성한 자이기에 그의 입술에는 언제나 감사의 기도가 끊이지 않게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