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교회 아카이브

20111009n: 이 비유의 진실(눅 16:1-10)

2011년 10월 9일 주일오후예배
본문: 눅 16:1-10
제목: 이 비유의 진실

[1] 또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어떤 부자에게 청지기가 있는데 그가 주인의 소유를 낭비한다는 말이 그 주인에게 들린지라 [2] 주인이 그를 불러 이르되 내가 네게 대하여 들은 이 말이 어찌 됨이냐 네가 보던 일을 셈하라 청지기 직무를 계속하지 못하리라 하니 [3] 청지기가 속으로 이르되 주인이 내 직분을 빼앗으니 내가 무엇을 할까 땅을 파자니 힘이 없고 빌어 먹자니 부끄럽구나 [4] 내가 할 일을 알았도다 이렇게 하면 직분을 빼앗긴 후에 사람들이 나를 자기 집으로 영접하리라 하고 [5] 주인에게 빚진 자를 일일이 불러다가 먼저 온 자에게 이르되 네가 내 주인에게 얼마나 빚졌느냐 [6] 말하되 기름 백 말이니이다 이르되 여기 네 증서를 가지고 빨리 앉아 오십이라 쓰라 하고 [7] 또 다른 이에게 이르되 너는 얼마나 빚졌느냐 이르되 밀 백 석이니이다 이르되 여기 네 증서를 가지고 팔십이라 쓰라 하였는지라 [8] 주인이 이 옳지 않은 청지기가 일을 지혜 있게 하였으므로 칭찬하였으니 이 세대의 아들들이 자기 시대에 있어서는 빛의 아들들보다 더 지혜로움이니라 [9]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불의의 재물로 친구를 사귀라 그리하면 그 재물이 없어질 때에 그들이 너희를 영주할 처소로 영접하리라 [10] 지극히 작은 것에 충성된 자는 큰 것에도 충성되고 지극히 작은 것에 불의한 자는 큰 것에도 불의하니라

난해한 비유입니다. 역설적입니다. 우선 본문의 청지기는 불의하기 짝이 없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주인에게 막대한 재산상 손실을 끼쳐 해고하려고 하는데, 막판에 또 다시 제멋대로 주인에게 손실을 입힙니다. 주인에게 빚진 빚쟁이들을 불러다가 자기 마음대로 탕감해 줍니다. 그런데 더 놀라운 사실은 불의한 청지기의 못된 짓에 대해 주인이 칭찬했다는 겁니다. “주인이 이 옳지 않은 청지기가 일을 지혜 있게 하였으므로 칭찬하였으니 이 세대의 아들들이 자기 시대에 있어서는 빛의 아들들보다 더 지혜로움이니라”(8절). 주인이 노발대발하고 죽도록 때려도 시원찮은 마당에 도리어 그 청지기가 지혜롭다며 칭찬을 했다는 겁니다. 이게 무슨 뜻입니까? 

여기서 주인이 칭찬한 불의한 청지기의 지혜는 무엇입니까? 해고당한 뒤 자기의 거취를 비상한 방법으로 준비했다는 겁니다. 많은 사람이 자신의 미래에 대해 너무 무책임한데 그래도 이 불의한 청지기는 자기의 미래를 최후의 순간까지 비상한 방법으로 필사적으로 예비했다는 겁니다. 오늘 이 비유의 참된 뜻이 무엇일까요? 불의한 청지기의 탁월한 지혜입니까? 아닙니다. 오히려 자신의 운명에 대해 무책임한, 미래를 준비할 줄 모르는 빛의 아들에 대한 신랄한 고발과 비판입니다. 불의한 청지기를 높이자는 게 아닙니다. 역설적으로 빛의 아들들의 무책임한 삶에 대한 주님의 고발입니다. 어둠의 자식도 불의한 청지기도 비상하게 자신의 미래를 준비하는데, 악착같이 자기 재물도 아닌 주인의 재산으로 탕감해 주면서까지 자기의 미래를 준비하는데, 어떻게 빛의 아들들은 왜 그리 무지하냐는 뜻입니다.

주님이 결론을 말씀하십니다. 9절입니다.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불의의 재물로 친구를 사귀라 그리하면 그 재물이 없어질 때에 그들이 너희를 영주할 처소로 영접하리라.” 이 말씀도 너무 어렵습니다. ‘불의한 재물로 친구를 사귀라’입니다. 우리가 가진 재물은 다 불의합니다. 우리 재화는 구조악의 산물입니다. 우리는 다 구조악에 일익을 담당하는 성원들입니다. 나는 떳떳하게 벌었다고 하지만 그게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마저 내가 가진 돈이 깨끗하다고 주장할 사람은 없습니다. 왜냐면 이 세상 자체가 구조악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오늘 여기서 주님이 불의한 재물이라고 하신 말씀은 그것보다 더 근본적인 이유가 있습니다. 사실 내 재물은 내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재물입니다. 그런데 항상 우리는 하나님의 재물을 내 재물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불의하다는 겁니다. 우리는 물질관 자체가 틀렸습니다. 나는 철저히 청지기인데 우리는 착각합니다. 내 재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주인의 뜻이 아니라 내 뜻대로 관리하고 집행합니다. 마치 여기 불의한 청지기가 주인의 재산을 제멋대로 처분했듯이 말입니다. 우리가 가진 재물은 다 하나님 것입니다. 그런데 그것을 내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래서 내 손 안에 있는 재물은 다 불의합니다. 그러나 그 재물이 불의할망정 그것으로 친구를 사귀라고 합니다. 친구 사귀라는 말씀은 기부하라는 말입니다. 어려운 이웃 도우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의 것을 내 것이라며 착각하고 살망정 그 불의한 재물로 다른 것을 하기보다 친구를 사귀라는 겁니다. 그러면 그게 곧 자신의 미래를 준비하는 것이 된다고 합니다. 불의한 청지기가 주인의 재산을 그렇게 축내면서까지 자신의 미래를 준비한 것처럼 내가 이렇게 하면 해고당한 이후에 사람들이 나를 영접한 사람들이라 계산하고 빚쟁이들을 불러 탕감해 준 것처럼 너희도 그렇게 하라는 겁니다. 기부, 구제하라는 겁니다. 그러면 그것이 너희의 미래를 예비하는 일이 된다는 것입니다. 

낮에 말씀드린 성화도 같은 맥락의 말씀입니다. 우리가 왜 선을 행해야 합니까? 구원과는 상관이 없는데 말입니다. 이게 곧 영화를 결정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구제해야 하고 기부해야 하며 선행을 베풀어야 합니다. 비록 너희가 가진 재물이 불의할망정, 하나님 뜻에 합당한 물질관을 가지고 너희의 재물을 관리하며 살아가지는 못할망정, 그것으로 어려운 이웃을 돌보라는 것입니다. 그것이 곧 너희의 영원한 운명을 준비하는 길이라는 겁니다. 그런데 이 대목에 대해 빛의 아들들이 무지하고 무책임하다는 겁니다. 그래서 이 불의한 청지기를 칭찬하면서까지 역설적으로 우리에게 깨우쳐주고 있습니다. 불의한 재물로 친구를 사귀면 “그들이 너희를 영주할 처소로 영접하리라”(9절)는 겁니다. 불의한 재물로 자기만 먹고 살면 정말 어리석고 무책임한 것입니다. 친구를 사귀십시오. 친구를 사귀는 일에 더 많은 투자를 하십시오. 그것이 가장 값지다는 겁니다. 불의한 청지기를 통한 주님의 이 강렬한 메시지, 역설적 교훈에 다시 한 번 깊이 귀를 기울이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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