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교회 아카이브

리더십의 위기

글로벌 경제 위기가 가속화 되면서 각국 지도자들의 리더십이 시험대에 올랐습니다. 미국 월가의 시위로 촉발된 성난 시민들의 분노가 확산되고 있습니다. 한마디로 지구촌 모든 나라들의 샘이 지금 극도로 고갈된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어렵사리 당도한 가데스에도 물이 없었습니다. 일부 불만 세력들이 그 기회를 놓칠리가 없지요. 당장 사람들을 선동하고 작당하여 모세와 아론의 지도 노선을 성토하기 시작했습니다. 민수기 20장의 내용은 무슨 백성들의 단합대회가 아니고 모세와 아론을 비난하는 범민족 규탄대회였습니다. 모세의 지도력이 일대 위기에 직면한 순간입니다. 그러나 그는 시위대를 상대로 시비하지 않고 회막 어귀로 나가 기도했습니다. 얼마나 속이 탔으면 얼굴을 땅에 대고 엎드려 기도하는 그의 모습이 처절하기까지 합니다. 드디어 하나님이 응답하셨습니다. <지팡이를 잡고 백성들을 모은 후 반석을 향하여 명령하라 그러면 물을 낼 것이다.> 물이 없다는데 지팡이를 잡으라는 것은 홍해의 기적을 떠올리게 하려는 동시에 그 무엇도 의지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에 대한 신뢰만으로 사태 수습에 임하라는 뜻이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모세로서는 하나님의 이 처방이 다소 싱겁고 단조롭다는 느낌이 들었던 것 같고, 따라서 좀 더 뭔가 비장하고 극적인 퍼포먼스를 통해 툭하면 자기에게 대들고 반역하는 무리들을 완전히 제압하는 위엄을 보여주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 모세가 지팡이를 손에 잡았습니다. 문제는 그 다음이었습니다. <반역한 너희여 들으라!> 그동안 꾹꾹 참고 눌렀던 울화가 한꺼번에 터져 나오면서 격렬한 분노와 욕설이 된 것입니다. <반역자들>이란 <하나님의 뜻에 반기를 든 죽어 마땅한 놈들>이라는 극도의 악담입니다. 인간적으로는 충분히 이해가 가고 따라서 여기에까지 <그래도 모세인데!>하는 윤리적 잣대를 들이대는 것은 결코 옳지 않아 보입니다만, 마치 물을 내는 것이 제 손에 달리기라도 한 듯 빈정대는 모세의 화풀이는 계속됩니다. <내가 너희를 위해 이 반석에서 물을 내랴?> 급기야 그는 하나님이 명하시지도 않은 행위, 즉 반석을 두 차례나 지팡이로 후려치는 객기까지도 마다하지 않습니다. 물론 물은 콸콸 터져나왔고 사람들과 가축들은 즉각 해갈을 얻었습니다. 그러나 모세에 대한 하나님의 책망과 선고는 실로 준엄했습니다. <너희가 백성들 앞에서 나의 거룩함을 나타내지 않았으므로 이 백성들을 데리고 약속의 땅으로 들어가지 못하리라!> 아니, 툭하면 대드는 백성들을 이끌고 천신만고 끝에 여기까지 온 사람이 누군데, 더구나 싸가지 없는 반동들의 버르장머리를 고치려고 잠시 위세를 부린 것 뿐인데 이건 너무 가혹한 형벌이 아닌가고 항변하고 싶은 마음이 아마 목까지 가득 차 올랐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한 번 생각해 보십시오. 만약 당시 모세의 그 혈기에 하나님이 아무런 징계도 없이 그냥 가나안으로 들어가게 하셨다면 어떻게 됐을까요? 그는 자기 뜻에 어긋나면 누구든 가차없이 제거해 버리는 잔혹한 전제 군주가 되었을 것이고, 모든 공적은 자기가 독차지하고 책임은 오직 백성들에게만 지우는 비열한 지도자가 되고 말았을지도 모릅니다. 또 그런 지도자를 섬겨야 하는 백성들은 얼마나 고단했을까요? 어쨌든 하나님이 백성들의 반역과 반동보다도 모세의 대응 자세와 리더십을 더 문제 삼으셨다는 사실에 주목하십시오. 이는 불의를 이겨내는 과정에서 다시 불의한 방법의 유혹에 빠진다면 그것은 명백한 자가당착이라는 뜻이며 위기에 직면했을 때보다 더욱 조심스러운 것은 정작 그 위기를 극복했을 때의 리더십이라는 가르침에 다름 아닐 것입니다. 이 시대 모든 리더들이 귀담아 들어야 할 하나님의 엄중한 육성이 아닐 수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