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교회 아카이브

헛된 즐거움(전 2:1-11)

2011. 10. 8.
헛된 즐거움
전 2:1-11

과연 무엇이 인생의 진정한 행복이고 참된 즐거움일까요? 지혜에서 그것을 찾다 실패한 솔로몬이 이번에는 공원과 극장, 정원과 여름 별장 등으로 무대를 옮겨 다시 한 번 행복찾기에 나섭니다. 그는 여기서 고상한 지적 유희를 버리고 감각과 쾌락의 문을 두드리며 거듭 만족과 기쁨과 행복을 시험해 봅니다. <나는 내 마음에 이르기를 자, 내가 시험삼아 너를 즐겁게 하리니 너는 낙을 누리라 하였으나 보라 이것도 헛되도다>(1절).

희희낙락
<내가 웃음에 관하여 말하여 이르기를 그것은 미친 것이라 하였고 희락에 대하여 이르기를 이것이 무슨 소용이 있는가 하였노라>(2절).
사람이 정말 재치와 즐거움, 다양한 화제와 농담, 익살과 해학등으로 행복해질 수 있을까? 수많은 사람들이 이런 방법으로 즐거움을 추구하고 행복을 찾고 있지만 과연 성공하는 것일까? 솔로몬은 친히 이를 시험해 보고 확인해 보았다고 합니다. 그러나 결론은 <미친 것이고>, <아무 소용이 없었다>는 것입니다. 웃고 즐기며 희희낙락하는 것도 때로 유익이 없지는 않겠지만 그러나 그것이 내 인생을 근본적으로 바꾸어 놓거나 보람되게 하지는 못한다는 것입니다. 단지 근심과 걱정을 잠시 잊게 해 주는 진통제와 같을 뿐이라는 게 솔로몬의 결론입니다. 

술
<내가 내 마음으로 깊이 생각하기를 내가 어떻게 하여야 내 마음을 지혜로 다스리면서 술로 내 육신을 즐겁게 할까 또 내가 어떻게 하여야 천하의 인생들이 그들의 인생을 살아가는 동안 어떤 것이 선한 일인지를 알아볼 때까지 내 어리석음을 꼭 붙잡아둘까>(3절).
누구나 처음에는 다 억지로 술을 마십니다. 술이 즐거움과 쾌락을 약속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술의 그 약속은 거짓이고, 술이 주는 쾌락이란 다 기만에 불과한 것입니다. 따라서 잠언은 <술을 즐기는 자와는 사귀지도 말라>(23:20)고 했습니다. 이는 술이 행복과 이로움보다는 방탕과 타락과 가난과 패가망신의 도구가 되기 쉽기 때문입니다. 술에는 이로움보다 해로움이 훨씬 더 많고, 행복보다 불행하게 하는 속성이 훨씬 더 강합니다. 불만에 찬 사람들은 술에서 만족을 찾고, 비겁한 사람들은 술에서 용기를 얻으려하고, 슬픈 자들은 술에서 위로를 구하지만 그들이 얻는 것은 결국 더 철저한 공허와 좌절 뿐이라는 것입니다. 술은 사람들을 어리석은 낙관주의자로 만듭니다(사 56:12). 음란하게 하며 병들게 하며 특히 정신질환에 빠져 난폭하게 합니다(호 4:11, 7:5, 욜 3:3, 암 4:1). 그래서 솔로몬은 술이 주는 즐거움이야말로 다 거짓이요 헛된 것이라고 합니다.

사업
<나의 사업을 크게 하였노라 내가 나를 위하여 집들을 짓고 포도원을 일구며>(4절).
<은금과 왕들이 소유한 보배와 여러 지방의 보배를 나를 위하여 쌓고 또 노래하는 남녀들과 인생들이 기뻐하는 처첩들을 많이 두었노라>(8절). 
술에 탐닉하는 것이 어리석은 짓이라는 사실을 깨달은 솔로몬이 이번에는 다시 사업을 벌입니다. 건물을 크게 짓고, 포도원을 크게 가꾸고, 넓은 과원을 만들어 각종 과목들을 다 심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수목을 조성하고, 수많은 남녀 노비들을 사고, 소와 양떼들을 치며 금은보화를 가득 쌓아뒀는가 하면 노래하는 남녀와 수많은 처첩까지 두었다고 합니다. 그는 자기가 원하는대로 대단한 부자가 되었고 생활은 더욱 호사스러워졌습니다. 하여간 <무엇이든지 내 눈이 원하는 것을 내가 금하지 아니하며 무엇이든지 내 마음이 즐거워하는 것을 내가 막지 아니하였다>(10절)고 합니다. 그럼에도 그는 <그 후에 내가 생각해 본즉 내 손으로 한 모든 일과 내가 수고한 모든 것이 다 헛되어 바람을 잡는 것이며 해 아래에서 무익한 것이로다>(11절)고 합니다. 왜요? 그런 성대한 사업과 많은 재산도 내 영혼과 내 인생의 근본적인 필요와 욕구는 채워주지 못했기 때문인데 그렇다면 그런 눈부신 성공도 실은 다 헛될 뿐이고 바람을 잡는 짓에 불과하다는 것입니다. 현자 솔로몬의 깨달음과 그의 체험이 오늘 우리에게 주는 메시지를 진지하게 들으십시오. 그의 가르침은 수천년의 시간적 간극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살아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인 까닭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