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1002m: 허무의 노래(전 1:1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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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10월 2일 주일낮예배
본문: 전 1:12-18
제목: 허무의 노래
[12] 나 전도자는 예루살렘에서 이스라엘 왕이 되어 [13] 마음을 다하며 지혜를 써서 하늘 아래에서 행하는 모든 일을 연구하며 살핀즉 이는 괴로운 것이니 하나님이 인생들에게 주사 수고하게 하신 것이라 [14] 내가 해 아래에서 행하는 모든 일을 보았노라 보라 모두 다 헛되어 바람을 잡으려는 것이로다 [15] 구부러진 것도 곧게 할 수 없고 모자란 것도 셀 수 없도다 [16] 내가 내 마음 속으로 말하여 이르기를 보라 내가 크게 되고 지혜를 더 많이 얻었으므로 나보다 먼저 예루살렘에 있던 모든 사람들보다 낫다 하였나니 내 마음이 지혜와 지식을 많이 만나 보았음이로다 [17] 내가 다시 지혜를 알고자 하며 미친 것들과 미련한 것들을 알고자 하여 마음을 썼으나 이것도 바람을 잡으려는 것인 줄을 깨달았도다 [18] 지혜가 많으면 번뇌도 많으니 지식을 더하는 자는 근심을 더하느니라
<빙점>의 작가요 <길은 여기에>의 작가 미우라 아야꼬를 아시지요? 그분은 24살부터 폐병이 걸려 37살 때는 결핵 3기로 요양원 생활을 했고, 그 뒤에도 직장암에 걸려 생사를 넘나들다가 지금은 파킨슨병을 앓고 있습니다. 그분은 평생 병을 달고 살았습니다. 그분은 어릴 때부터 감수성이 예민해서 지독한 회의주의자, 자살예찬론자가 되었습니다. 실제 자살까지 시도해서 건강이 더 나빠졌습니다. 어느 날 친구가 그분을 찾아와 성경을 놓고 갔는데, 성경을 펼쳐 보다가 전도서 1장을 만났고 1절을 지나 2절을 읽다가 깜짝 놀랐습니다. 1장 2절이 이렇습니다. “전도자가 이르되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 자기보다 더욱 허무주의에 빠진 성경을 보면서 그분은 깜짝 놀랐다고 합니다. 그러다가 믿음을 갖게 되었고, 이후 그분은 주옥같은 작품을 많이 남깁니다.
전도사는 모든 것이 헛되며 부질없다고 합니다. 14절입니다. “내가 해 아래에서 행하는 모든 일을 보았노라 보라 모두 다 헛되어 바람을 잡으려는 것이로다.” 인생이란 게 바람 잡는 것이라는 겁니다. 어느 시대나 모든 인생이 추구하는 보편적인 가치와 철학을 예로 들면서 그것의 허무함을 신랄하게 고발합니다. 이게 전도서입니다.
그 첫째가 지성주의입니다. 우리나라는 지성주의가 강합니다. 아마 유교 영향 때문일 겁니다. 지성주의에 대한 집착이 대단합니다. 최고의 덕목이 학덕입니다. 선비들은 돈을 못 벌어도 벼슬을 못해도 특별한 재주가 없어도 심지어는 첩을 두어도 다 용서되었습니다. 공자가 말하는 군자 개념도 공부하는 선비를 일컫습니다. 요즘도 우리나라 아이들은 공부 밖에 모릅니다. 공부 못하면 사람도 아닙니다. 대학 못가면 죽는 줄 압니다. 우리나라가 세계에서 학위 취득률이 가장 높습니다. OECD 평균이 60%인데 우리나라는 75%입니다. 외국 사람은 학위에 집착하지 않습니다. 열심히 공부하다가 그 과정에서 주어지는 열매이지 그 학위 자체가 목표이지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렇지 않습니다. 학위를 못 따면 인생의 패배자가 됩니다. 부모는 얼굴을 못 들고 다닙니다. 요즘은 아무리 외국에서 학위를 받아와 봤자 취직이 안 되는 데도 맹목적으로 학위에 집착합니다. 하여간 지성주의는 우리나라에서 최고입니다. 전도서의 저자는 솔로몬입니다. 솔로몬은 다윗의 아들이요 당대 최고의 지성입니다. 당대뿐만 아니라 유사 이래 전무후무한 지성인입니다. 외국에서 솔로몬의 지성을 배우겠다고 예루살렘까지 와서 머리를 조아렸습니다. 그런데도 유일무이한 지혜의 왕 솔로몬은 이렇게 얘기합니다. 15절입니다. “구부러진 것도 곧게 할 수 없고 모자란 것도 셀 수 없도다.” 이것은 특급 지성인 솔로몬의 인생 고백입니다. 솔로몬은 지식의 화신인데, 그 지식도 구부러진 건 못 편다는 겁니다. 우리는 박사면 못 하는 게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지혜도 지식도 구부러진 건 못 펴고, 이지러진 것을 바로 잡을 수 없다고 합니다. 지성주의의 한계에 대한 고발입니다. 사실 고도의 지식, 첨단 정보도 결코 부패한 인간성을 바로 잡을 수 없습니다. 비뚤어진 인간의 영혼을 온전케 할 수 없습니다. 17절입니다. “내가 다시 지혜를 알고자 하며 미친 것들과 미련한 것들을 알고자 하여 마음을 썼으나 이것도 바람을 잡으려는 것인 줄을 깨달았도다.” 여기에 나오는 미친 짓, 바람을 잡으려는 것은 다 지식을 좇는 욕망을 가리킵니다. 뿐만 아닙니다. 18절입니다. “지혜가 많으면 번뇌도 많으니 지식을 더하는 자는 근심을 더하느니라.” 우리는 자식들 공부시키느라 허리가 휘는데, 그게 다 번뇌만 는다는 겁니다. 우리를 허탈하게 만들지만 이것은 사실입니다.
공부가 내게 의미가 있고, 보람이 되려면, 바람 잡는 짓이 아니기를 바란다면 지성주의만으로는 안 되고 거기에 플러스 알파가 필요하다는 겁니다. 그것은 바로 구약 욥기, 시편, 잠언, 전도서, 아가서의 총 주제입니다. <여호와 경외>입니다. 이게 지식의 기초라는 겁니다. 지식이 가치를 갖게 되려면 그 바탕에 여호와 경외가 있어야 합니다. 그럼에도 이런 바탕 없이 지식을 쌓으면 근심과 고뇌와 허무만 는다는 겁니다. 그럴 때 지식이 미친 짓, 미련한 짓, 바람을 잡는 짓이 된다는 것입니다. 전도서는 절대 지식 무용론이나 반지성주의를 가르치지 않습니다. 다만 지식이 참된 지식이 되고, 지성이 참된 지성이 되기 위해서는 하나님 경외를 반드시 그 바탕에 깔아야 한다는 것을 가르쳐 줍니다.
다음은 쾌락주의입니다. 이것은 전도서 2장 1절 이하 11절까지의 내용입니다. 쾌락주의는 향락을 통해 삶의 행복을 추구하고, 존재의 의미를 찾으려는 방식이요 철학을 의미합니다. 어느 시대나 가장 많은 이들이 추구하는 삶의 철학이 <잘 먹고 잘 살자>입니다. 이게 절대 다수의 보편적인 삶의 목표이자 철학입니다. 로마가 왜 망했습니까? 역사상 로마처럼 강한 나라는 없었습니다. 그런 로마가 하루 아침에 망했습니까? 로마 흥망사란 책을 보면 로마가 군사나 경제력이 약해서 무너진 게 아니라, 외부의 적이 아니라 내부의 적 때문에 망했습니다. 그게 바로 쾌락주의입니다. 주범은 에피큐리즘입니다. 각국에서 약탈해온 온갖 부로 상상할 수도 없는 향락을 추구하더니 바로 그것 때문에 나라가 망했습니다. 로마 귀족은 식탁 위에 온갖 산해진미를 차려놓고 먹다가 배가 부르면 식탁 밑에 있는 요강에다 다 토해 내고, 또 먹었습니다. 개인이나 나라나 가난 때문에 망하진 않습니다. 반드시 부 때문에 망합니다. 돈 때문에 망합니다. 가난하면 죄 지을 일이 별로 없습니다. 죄 지을 겨를이 없습니다. 그러나 돈이 많으면 죄 지을 일밖에 없습니다. 역사적으로 봐도 그렇습니다. 로마도 폼페이도 소돔과 고모라도 다 쾌락과 타락 때문에 망했습니다. 쾌락주의는 얼핏 보면 매우 현란하고 화려한 듯 보이지만 절대 그 내면은 행복하지 않습니다. 견딜 수 없는 공허와 허무 때문에 가장 외로워하며 고독해 합니다. 솔로몬을 보십시오. 전도서 2장 10절입니다. “무엇이든지 내 눈이 원하는 것을 내가 금하지 아니하며 무엇이든지 내 마음이 즐거워하는 것을 내가 막지 아니하였으니.” 솔로몬은 사람이 이 땅에서 누릴 모든 것을 다 누렸습니다. 그런데 무엇이라 합니까? 11절입니다. “그 후에 내가 생각해 본즉 내 손으로 한 모든 일과 내가 수고한 모든 것이 다 헛되어 바람을 잡는 것이며 해 아래에서 무익한 것이로다.” 쾌락으로 치닫는 사람들이 꼭 들어야 할 말씀입니다. 다 바람 잡는 짓이요 허무한 짓이라는 겁니다. 속지 마십시오. 절대 인생은 쾌락을 목표로 살아갈 수 없습니다. 거기에는 행복이 없고 허탈과 공허뿐입니다. 그럼에도 말세에는 사람들이 쾌락 사랑하기를 하나님을 사랑하기보다 더 한다고 했습니다. 요즘 사람들이 살아가는 방식이나 대중문화를 보십시오. 그야말로 모든 게 쾌락 중심의 향락문화입니다. 이게 말세적인 징후입니다. 장로교 신조인 요리문답 제1조는 ‘사람의 제일 되는 목적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이다’입니다. 장로교 신앙고백의 1번입니다. 사람의 목적이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데 있다는 겁니다. 그러나 쾌락주의는 철저히 자기를 영화롭게 하는 데 있습니다.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십시오. 하나님의 기쁨을 위해 사십시오. 그래야 내가 행복해 집니다. 그렇지 않는 한 솔로몬의 고백처럼 다 바람 잡는 것 같다는 겁니다.
셋째는 물질주의입니다. 이것은 2장 18절 이하 마지막 절까지 나오는 말씀입니다. 물신주의 곧 맘모니즘도 절대 우리를 행복하게 못합니다. 돈이 많으면 점점 타락하다가 온갖 미친 짓을 합니다. 사람 하나 망하게 하려면 어떻게 하면 된다구요? 돈 주고, 시간 주고, 건강 주면 됩니다. 그러면 3개월이면 망합니다. 길어봤자 1년입니다. 어느 나라도 마찬가지입니다. 로또 1등 당첨자는 절대 행복하지 않습니다. 차라리 가난할 때는 건강하고 행복했는데, 돈 벼락을 맞은 후에는 가정도 깨지고 친지 친구도 다 잃고 건강도 잃어 훨씬 더 불행해집니다. 돈의 생리가 그렇습니다. 사람이 돈을 벌 때가 행복합니다. 돈이 돈을 벌 때가 위험합니다. 이때부터 돈에 빠지고 미칩니다. 그 다음에는 돈이 사람을 잡습니다. 돈이 사람을 죽입니다. 이게 돈의 생리입니다. 결국 다 돈 때문에 망하고 불행해지고 폐인이 됩니다. 가룟 유다도 돈 때문에 망했습니다. 돈을 경계하십시오. 돈이 결코 참된 행복을 주지 못하며 부가 우리를 구원해 주지 못합니다.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지성도, 쾌락도, 돈도 아니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이 물음에 대한 솔로몬의 답은 <모노 야웨이즘> 곧 <하나님 제일주의>, <하나님 절대주의>, <하나님 우선주의>입니다. 이것만이 유일한 대안이라고 솔로몬은 말합니다. 이게 우리가 절대적인 살 길이라고 합니다. 하나님이 없으면 우리 인생은 그 자체로 허무일 뿐이고, 하나님 중심주의로 살 때, 이게 우리의 철저한 삶의 철학이자 신념이 될 때, 무엇을 하든 보람되고 값지며 거기에서 행복을 누리며, 하나님을 영화롭게 할 수 있습니다. 세상 사람들이 다 지성과 쾌락과 돈 만을 좇으며 살지라도, 우리는 절대 그 장난에 춤추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부디 여러분의 삶을 통해 하나님 절대주의, 하나님 제일주의를 관철하십시오. 여러분의 삶의 철학으로 삼으십시오. 그래야 더는 허무해지지 않습니다. 다시 한 번 하나님 절대주의를 결단하는 복된 시간 되시길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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