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0925n: 실패와 회복의 여정(마 26:69-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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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9월 25일 주일오후예배/남선교회 헌신예배
본문: 마 26:69-75
제목: 실패와 회복의 여정
[69] 베드로가 바깥 뜰에 앉았더니 한 여종이 나아와 이르되 너도 갈릴리 사람 예수와 함께 있었도다 하거늘 [70] 베드로가 모든 사람 앞에서 부인하여 이르되 나는 네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지 못하겠노라 하며 [71] 앞문까지 나아가니 다른 여종이 그를 보고 거기 있는 사람들에게 말하되 이 사람은 나사렛 예수와 함께 있었도다 하매 [72] 베드로가 맹세하고 또 부인하여 이르되 나는 그 사람을 알지 못하노라 하더라 [73] 조금 후에 곁에 섰던 사람들이 나아와 베드로에게 이르되 너도 진실로 그 도당이라 네 말소리가 너를 표명한다 하거늘 [74] 그가 저주하며 맹세하여 이르되 나는 그 사람을 알지 못하노라 하니 곧 닭이 울더라 [75] 이에 베드로가 예수의 말씀에 닭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부인하리라 하심이 생각나서 밖에 나가서 심히 통곡하니라
오늘 본문은 잘 아는 얘기입니다. 수제자를 자처했던 베드로가 참혹한 실패를 하는 대목입니다. 주님을 한 번도 아니고 수제자라는 사람이 세 번씩이나 부인하고 저주한 사건입니다. 정말 베드로로서는 천추의 한이 되는 아픔이 아닐 수 없습니다. 어쩌다가 베드로가 이랬을까요? 이것은 우발적인 사건이 아니고 어떤 과정이 있었습니다. 이것은 사실 베드로뿐만 아니라 우리도 이런 여정을 가면 예외 없이 베드로처럼 참패할 수밖에 없습니다. 뼈아픈 실패를 경험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면 베드로의 실패의 여정을 따라가 보겠습니다.
첫째, 베드로는 무심하고 경솔했습니다. 신앙생활은 만만치 않습니다. 호락호락한 게 아닙니다. 그럼에도 베드로는 주님 따라가는 일을 너무 쉽게 생각했습니다. 주님이 잡히시던 날 밤 제자들과 최후의 만찬을 하셨는데, 그 석상에서 주님이 베드로에게 아주 구체적으로 예고를 하셨습니다. 26장 31절을 보십시오. “오늘 밤에 너희가 다 나를 버리리라.” 아주 구체적입니다. 베드로는 다른 사람은 주를 버려도 나는 안 버리겠다고 합니다. 주님은 네가 세 번 나를 부인한다고 하십니다. 그랬더니 베드로는 이렇게 말합니다. 이어지는 35절 말씀입니다. “내가 주와 함께 죽을지언정 주를 부인하지 않겠나이다.” 도대체 뭘 믿고 이런 큰소리를 치는 겁니까? 신앙생활은 겸손해야 합니다. 누가복음 22장 33절을 보면 내가 주와 함께 옥에도 죽는 데도 같이 가겠다고 합니다. 있는 대로 큰소리를 치고 허세를 부립니다. 바울 사도가 말한 것처럼 항상 넘어질까 조심해야 합니다. 언제나 적당히 긴장해야 합니다. 그럼에도 베드로에게는 그런 게 없었습니다. 주님이 구체적으로 예언하셨음에도 큰소리치다가 결국 참패를 면치 못했습니다.
둘째, 베드로는 졸다가 실패했습니다. 26장 40절 이하입니다. “40] 제자들에게 오사 그 자는 것을 보시고 베드로에게 말씀하시되 너희가 나와 함께 한 시간도 이렇게 깨어 있을 수 없더냐 [41]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기도하라 마음에는 원이로되 육신이 약하도다 하시고.” 주님은 피땀을 흘리며 처절하게 기도하고 계신데, 무려 세 번씩이나 깨어 기도하라고 일러주셨는데, 제자들은 코를 골고 잠에 떨어져있습니다. 지금이 어느 때입니까? 원수들이 코앞에 왔습니다. 주님은 내 맘이 고민되어 죽게 되었다고 하시는데도, 제자들은 잠에 취해 있습니다. 시험에 들지 않도록 깨어 기도하라는 말은 깨어 기도하지 않으면 시험에 들 수밖에 없다는 말씀입니다. 베드로는 필연적으로 실패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깨어있어야 하는데 잠에 떨어졌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늘 근신하고 깨어있어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우리가 쉬지 않고 기도해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기도하지 않으면, 깨어있지 않으면 베드로를 위시한 제자들처럼 실패할 수밖에 없습니다. 주님의 십자가가 코앞에 있는데 졸면 안 됩니다. 원수들이 주님을 잡으려고 횃불을 들고 감람산을 올라오고 있습니다. 근신해야 합니다. 깨어 기도해야 합니다. 그래야 주님을 배반하지 않습니다. 그래야 우리도 실패하지 않습니다.
셋째, 베드로는 멀찍이 주님을 좇았기에 실패했습니다. 58절입니다. “베드로가 멀찍이 예수를 따라 대제사장의 집 뜰에까지 가서.” 이게 또한 뼈아픈 실패의 원인입니다. 주님을 따르는 사람들은 어떻게 해야 하느냐면 멀찍이가 아니라 바짝 좇아야 합니다. 멀찍이 따르면 베드로처럼 주님을 놓칩니다. 여러 차가 움직일 때도 선두 차를 바짝 좇아가야 합니다. 본문을 보면 베드로가 주님을 따르되 멀찍이서 좇습니다. 이게 피할 수 없는 실패의 원인입니다. 앞서 가시는 주님을 놓칩니다. 주님 좇을 때는 안전거리가 필요 없습니다. 최대한 바짝 따라야 낙오하지도, 도태되지도, 실패하지 않습니다. 왜 베드로처럼 안전거리를 두고 주님을 따라 갈까요? 여차하면 달아나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멀찍이서 주님을 좇는 심리가 바로 이것입니다. 자기 신변에 위협이 닥치면 멀찍이서 따라가면 달아나기 쉽지 않습니까. 주님과의 거리가 가까우면 가까울수록 좋고, 멀면 멀수록 위험합니다. 주님을 놓칠 수 있습니다. 주님과 여러분 사이의 거리를 확인해 보십시오. 실패하지 않으려면 멀찍이 따라가지 말고 거리를 당기십시오.
넷째, 베드로는 하인들 사이에 끼어 앉아 있었기에 실패했습니다. 58절 하반절입니다. “그 결말을 보려고 안에 들어가 하인들과 함께 앉아 있더라.” 그 하인들은 어떤 이들입니까? 주님을 체포한 사람들입니다. 주님을 붙잡아 온갖 희롱과 모욕을 다하며 몹쓸 짓을 한 사람들 사이에 베드로는 끼어 있었습니다. 이 말은 베드로가 세상 사람들과 한통속이 되어 있었다는 겁니다. 복 있는 사람은 악인의 꾀를 좇지 않고,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않는다고 했는데 베드로는 바로 그런 자리에 앉아 있었던 겁니다. 그러니 실패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성도는 구별된 사람이란 뜻입니다. 우리는 세상에 살지만 세상 사람들과 구별된 삶을 살아야 합니다. 세상 사람과 한통속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세상 사람들의 논리에 타협하고, 문화를 따르고, 그들의 기호에 죽을 맞추면 안 됩니다. 우리는 소금으로 빛으로 살아야 합니다. 그런데 베드로를 보십시오. 그들과 함께 앉아 불을 쬐었습니다. 주님을 구경한 겁니다. 여러분, 우리의 현주소를 항상 확인하십시다. 내가 세상 사람들 사이에 끼어 앉아있지는 않은가를 살피십시다. 아담아! 네가 어디 있느냐?고 하나님이 물으셨습니다. 결국 베드로를 보십시오. 그는 하인들 틈에 끼어 앉았다가 그 자리에서 주님을 세 번 부인하고 저주합니다. 그러니 이것은 우연이 아니라는 것이고 실패할 수밖에 없었다는 겁니다. 이러한 과정과 여정을 밟아왔기 때문에 실패를 피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참혹한 실패의 현장에서 베드로는 어떻게 극복하고 있습니까? 베드로의 위대한 점이 바로 이것입니다. 누구나 실패할 수 있습니다. 자칫 시험에 들 수 있습니다. 베드로의 가장 뛰어난 장점은 영적 순발력입니다. 베드로는 그 정서가 단순하고 다혈질입니다. 그래서 적지 않은 실수도 하고 실패도 했습니다. 그런데 그때마다 놀라운 순발력으로 누구보다도 회복이 빨랐습니다. 그 와중에도 주님의 말씀을 생각하고 기억합니다. 75절입니다. “이에 베드로가 예수의 말씀에 닭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부인하리라 하심이 생각나서.” 베드로는 주님의 말씀을 생각했다는 겁니다. 이렇게 주님의 말씀을 생각하는 사람은 절대 망하지 않습니다. 깊은 나락으로 떨어진 베드로가 닭소리를 듣자 주님의 말씀이 생각난 겁니다. 그래서 그는 제정신이 든 겁니다. 얼마나 위대한 일입니까? 닭소리를 듣고도 깨닫고 있지 않습니까? 우리는 목사의 설교를 듣고도 감동이나 깨달음이 없는데 말입니다. 유럽 교회를 가면 교회 첨탑에 십자가 대신에 닭이 있습니다. 닭소리를 듣고 회개한 베드로처럼 우리도 회개해야 합니다. 뿐만 아니라 75절 하반절을 보면 베드로는 밖에 나가 심히 통곡했다고 합니다. 통회하고 자복했다는 말입니다. 주님을 세 번이나 부인하고 저주하는 베드로의 실수나, 주님을 은 30에 판 가룟 유다의 배반은 사실 큰 차이가 없습니다. 그럼에도 베드로와 가룟 유다 사이에 뛰어넘을 수 없는 큰 차이는 이것입니다. 베드로는 말씀을 생각하고 통회한데 반해 가룟 유다는 양심에 가책을 느끼고 회개하지 않고 자살한 것입니다. 실패는 똑같이 했습니다. 한 사람은 닭소리를 듣고 주님의 말씀을 생각하며 통회했고, 한 사람은 양심에 가책은 느꼈지만 회개가 아니라 자살했습니다. 베드로의 이런 영적 순발력을 배웁시다. 실패를 하더라도 주님의 말씀을 생각하고 통회합시다. 회개하고 통회하는 자에게 주님은 은혜를 베푸십니다. 회개하는 성도에게 주님은 은혜를 베푸십니다. 베드로의 실패와 회복의 여정이 우리에게 큰 본보기가 되기를 바랍니다. 우리도 같습니다. 이렇게 실패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베드로처럼 말씀을 생각하여 통회하면 주님이 은혜를 베푸사 우리도 베드로처럼 새롭게 출발하게 하십니다. 베드로의 실패와 회복의 여정이 여러분에게 도전이 되기를 빕니다.
설교영상보기: http://tvpot.daum.net/clip/ClipViewByVid.do?vid=qkeEZfuabx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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