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방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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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의 뜨거움이 아무리 도도하다 해도 오는 가을 앞에서는 고개를 숙일 수밖에 없습니다. 우주의 궤도를 달리는 시간의 성실함이 새삼 경이로울 뿐입니다. 이렇듯 세월의 강은 무심히 흐르는데 우리의 인생살이는 지금도 어디로 가고 있는지…. 그저 노 젓는 수고만으로 이 무수한 날들을 보내다 어느덧 황혼을 맞게 된다면 그 인생은 필시 비극의 색조를 띨 게 뻔합니다. 여기 시간의 의미를 되새기게 하는 요셉의 인생역정이 있습니다. 아버지의 심부름으로 형들을 찾아 나섰던 요셉은 쉽게 만날 줄 알았던 형들의 모습이 안 보이면서 몹시 당황합니다. 그것은 그가 겪은 생애 최초의 <한계상황>이었고, 철없던 소년시절을 마감하고 성년으로 들어가려는 길목에서 만난 스핑크스와도 같은 것이었습니다. 당시 그의 나이 열일곱, 야곱이 노년에 얻은 아들인데다 어머니 라헬마저 일찍 돌아가신 터라 요셉에 대한 아버지의 편애는 유별났습니다. 형들과는 달리 늘 채색옷을 입혔고, 형들의 곡식단을 비롯해 해와 달과 별들이 자기에게 절하는 꿈을 함부로 자랑하고 다닐 만큼 안하무인으로 키웠습니다. 요셉은 세상이 다 자기 마음대로 되는 줄 알았습니다. 그랬던 그가 이제껏 만만하게 보았던 세상에 그만 큰코를 다치고 말았습니다. 어떤 사람이 일러준 대로 다시 도단으로 가서 천신만고 끝에 만나게 된 형들의 모습조차 상상할 수도 없는 아픔이었습니다. 그들은 요셉을 깊은 구덩이에 내던졌습니다. 그토록 자랑스럽게 여겼던 채색옷이 벗겨지고 모든 게 한순간 다 무너지면서 분노와 증오의 발톱만이 그의 심장을 할퀴고 죽음 같은 고독만이 그를 짓눌렀습니다. 채색옷도, 아버지의 사랑도, 화려했던 꿈도 그의 안전을 보장해 주지 못했고 죽음의 덫으로부터 그를 구출해주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기억하십시오. 인간이 자신의 한계를 뼛속까지 느끼는 순간이야말로 정말 하나님을 제대로 만날 수 있는 시간입니다. 길을 잃고 들판을 헤매다 깊은 구덩이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아픔이야말로 실은 그 이전의 성숙하지 못했던 시절과는 결별하고 다시 더욱 알찬 삶에로의 이행을 뜻하는 과정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라는 겁니다. 지금까지 자신을 지탱하게 한 모든 것들의 덧없음을 깨닫고 오직 하나님의 은총과 인도만이 우리를 진정으로 살게 하는 힘임을 믿어 의심치 않기 위해서는 누구나 필히 고독한 광야의 시절을 통과해야 합니다. 혹독한 연단 없이는 누구도 결코 지난 시간의 길 터널에서 헤어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요셉도 마찬가집니다. 그런 삶의 혹독한 역경이 없었던들 나이를 먹었다 하여 성숙해지기는 어려웠을 것입니다. 따라서 그의 처절한 방황과 시련은 차라리 감사한 것이었고 그의 인생에 두고두고 기억될 소중한 훈련의 기회였다는 것입니다. 후에 그가 그 아픈 시절을 회고하며 형들 앞에서 고백한 말입니다. <당신들이 나를 버리고 팔았다 하여 근심하지 마소서. 한탄하지 마소서. 하나님이 우리의 생명을 구원하시려고 나를 당신들보다 먼저 보내셨나이다. 그런즉 나를 이리로 보낸 이는 당신들이 아니요 하나님이시라>(창 45:5,8). 형제들에게 배신당해 구덩이 속에 던져지고 애굽에 노예로 팔린 사건들이 천추의 한이 아니라 도리어 하나님의 은총을 체험하고 우리 온 가족이 생명의 축복을 누리게 된 동기가 됐다는 고백입니다. 때로 우리의 자녀들이, 또 우리 자신이 저 들판에서 헤매다 요셉처럼 구덩이에 빠졌다고 느껴질 때 너무 불안해하거나 그것이 단지 불행이라고만 여기지는 맙시다. 방황과 고통은 힘들지만 그러나 그것이 자신의 모습을 새롭게 발견하는 은총의 시간임은 분명합니다. 그런 과정이 없으면 누구나 성숙의 아픔도 치르지 않고 오직 열매만 따겠다는 철부지 어린아이로 남게 될 뿐입니다.
부디 한때의 방황과 모진 아픔이 요셉처럼 모든 슬픔과 분노의 껍질에서 나를 해방시켜 생명의 근원이 주시는 힘을 내 속에 깊숙히 받아들이는 내공이 되고 찬란하도록 아름다운 축복의 단초가 되기를 진심으로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