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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aragraph:p0001 -->
<p>2008년 6월 22일 주일낮예배/북한선교주일<br>본문: 눅 19:41-44<br>제목: 팍스 크리스티나</p>
<!-- paragraph:p0002 -->
<p>[41] 가까이 오사 성을 보시고 우시며 [42] 가라사대 너도 오늘날 평화에 관한 일을 알았더면 좋을 뻔하였거니와 지금 네 눈에 숨기웠도다 [43] 날이 이를지라 네 원수들이 토성을 쌓고 너를 둘러 사면으로 가두고 [44] 또 너와 및 그 가운데 있는 네 자식들을 땅에 메어치며 돌 하나도 돌 위에 남기지 아니하리니 이는 권고 받는 날을 네가 알지 못함을 인함이니라 하시니라</p>
<!-- paragraph:p0003 -->
<p><br>성경에 보면 주님이 웃었다는 기록은 없고, 우신 기록은 있습니다. 주님이 이 땅에서 세 번 우셨는데, 나사로의 무덤 앞에서 우셨고, 마지막 겟세마네 동산에서 우셨습니다. 그런데 오늘 여기서는 왜 우십니까? 42절입니다: “가라사대 너도 오늘날 평화에 관한 일을 알았더면 좋을 뻔하였거니와 지금 네 눈에 숨기웠도다.” 지금이야말로 평화가 가장 절실한 때인데 평화가 무엇인지, 어떻게 하는 것이 평화를 위한 것인지 아무도 아는 사람이 없기에 안타까워서 우셨습니다. 평화에 무지하고 눈이 가려진 이스라엘이 불쌍해서 우셨습니다. </p>
<!-- paragraph:p0004 -->
<p>주님이 우리 민족을 바라보신다면 어떻게 하실까요? 웃으실까요? 우실까요? 저는 역시 우실 것 같습니다. 지금 지구상에서 우리 한반도만큼 평화가 절실한 데가 있을까요? 주님은 아마도 오늘 본문과 똑같은 눈물을 흘리셨을 것입니다. 우리는 유일한 분단 국가에 살고 있고, 한 쪽은 핵보유를 공식선언까지 한 상태입니다. 금주 수요일이 6.25 58주기입니다. 6.25는 형제끼리 싸운 전쟁입니다. 부모 자식 간에 서로 총을 겨누었던 비극적 전쟁입니다. 아직도 이 비극적 전쟁이 끝나지 않았습니다. 지금은 종전이 아니라 지금 휴전입니다. 우리는 지금 전시를 살고 있습니다. 이것이 우리의 비극이요 현주소입니다. 이게 바로 아직도 우리가 평화를 모르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많은 이들이 평화통일을 말하지만 누구도 평화를 아는 사람이 없습니다. 주님의 안타까움이 여기에 있습니다. 그래서 주님은 오늘 우리 한반도를 보시며 우실 것입니다.</p>
<!-- paragraph:p0005 -->
<p>대체 평화란 어떤 것입니까? 우리가 무엇을 모르고 있다는 겁니까? 우선 주님이 평화라는 사실을 우리가 모르고 있습니다. 에베소서 2장 14절은 주님이 우리의 평화이신지라 둘로 하나를 만드사 중간에 막힌 담을 허셨다고 하고, 에베소서 2장 16절은 둘을 화목하게 하시려고 원수된 것을 십자가로 하나되게 하셨다고 합니다. 주님이 평화의 화신입니다. 주님의 사역은 다 평화를 도모하는 일입니다. 그 사실을 우리가 모르고 있다는 겁니다. 주님이 중간에 막힌 담을 허셨다는 것은 주지하듯 예루살렘 성전 뜰에 있던 여러 개의 담을 염두에 두고 하신 말씀입니다. 제사장과 유대인 남성, 유대인 남성과 여성 사이에, 유대인과 이방인 사이에 담이 있었습니다. 이 담에 이방인이 이 마지막 담을 넘으면 죽는다는 팻말이 걸려 있었습니다. 어떤 일이 있어도 죽었습니다. 개가 하나님의 성전을 더럽혔다는 이유때문입니다. 그래서 로마군은 성전 특별교육을 시키기까지 했습니다. 절대로 이방인의 뜰 담을 넘지말라고 말입니다. 이 담을 주님이 다 허셨다는 겁니다. 이방인과 유대인 사이의, 남자와 여자 사이의, 종과 상전 사이의 담을 주님이 허신 것입니다. 마치 동서독의 장벽을 허무신 것처럼 말입니다. 따라서 우리의 남북한도 주님만이 하나되게 하실 수 있습니다. 주님만이 휴전의 담을 허시고 통일을 이룩하게 하실 수 있습니다. </p>
<!-- paragraph:p0006 -->
<p>사실 주님이 우리의 평화라는 말은 비장한 선언입니다. 순교를 각오한 초대교회의 위대한 신앙고백입니다. 당시가 어떤 시대인데 주님이 우리의 평화라고 선언할 수 있습니까? 초대교회 시대는 팍스 크리스티나가 아니라 팍스 로마나의 시대입니다. 로마의 평화가 지배하던 시대입니다. 그 평화는 힘과 군사, 정치, 외교력의 평화였습니다. 남이 넘볼 수 없는 압도적인 평화가 지배하던 시대였습니다. 이런 때에 팍스 크리스티나를 외친 것입니다. 이것은 죽기를 각오한 것입니다. 반역 행위였습니다. 더구나 이스라엘은 로마의 식민지입니다. 팍스 로마나, 곧 힘의 평화는 거짓된 평화며 이 세상의 평화입니다. 그렇다면 지금은 어떤 시대입니까? 지금 세계를 지배하고 있는 것은 팍스 아메리카나입니다. 미국의 평화입니다. 세계 질서가 미국의 평화아래 재편되어 있습니다. 오로지 팍스 아메리카나만 통하는 시대입니다. 그렇다면 미국의 평화는 어떤 평화입니까? 이것은 본질상 팍스 로마나와 같습니다. 힘과 경제력의 평화입니다. 전투력의 평화입니다. </p>
<!-- paragraph:p0007 -->
<p>그런데 주님은 ‘내가 주는 평화는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않다’고 하십니다. 팍스 로마나, 팍스 아메리카나와 절대적으로 다릅니다. 힘의 평화가 아니라, 사랑의 평화, 화해와 희생, 십자가의 평화입니다. 주님은 오히려 칼을 칼집에 꽂으라고 하셨고, 5리를 가자면 10리를 가라고 하셨고, 왼뺨을 때리면 오른뺨을 돌려대고, 겉옷을 달라고 하면 속옷도 주라고 하셨습니다. 이것이 팍스 크리스티나입니다. 비폭력 무저항의 평화입니다. 주님은 이것을 끝까지 관철하시다가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팍스 로마나가 팍스 크리스티나를 십자가에 매단 것입니다. 그런데 결국 팍스 로마나가 이겼습니까? 전설속으로 사라진 것은 로마의 평화입니다. 주님의 평화는 아직도 건재합니다. 주후 313년에 콘스탄틴 황제가 밀라노 칙령을 반포함으로 팍스 크리스티나가 팍스 로마나를 접수합니다. </p>
<!-- paragraph:p0008 -->
<p>팍스 로마나, 팍스 아메리카나는 우리 민족의 화해를 가져올 수 없습니다. 휴전선까지는 없앨지도 모르겠습니다. 이념의 벽은 절대 무력이나 전쟁으로는 안 됩니다. 오로지 팍스 크리스티나, 주님의 평화로만 가능합니다. 용서와 화해와 사랑과 희생으로써만 근본적으로 막힌 담을 헐 수 있습니다. 팍스 크리스티나에 대해서 막연하거나 추상적으로나 낭만적으로 생각하지 마십시오. 팍스 크리스티나는 현실입니다. 이것이 우리 민족에게 평화를 가져다 줄 수 있습니다.</p>
<!-- paragraph:p0009 -->
<p>다음으로 우리가 평화의 도구임을 우리가 모르고 있기에 주님이 우리를 보시며 울고 계십니다. 신기하게도 이스라엘과 우리나라는 역사적으로 비슷한 것이 많습니다. 분단도 솔로몬 왕 이후에 주전 935년에 남북으로 분단되고, 우리는 1945년 해방과 함께 분단됩니다. 우리는 북위 38도선을 경계로, 이스라엘은 북위 32도선을 경계로 분단됩니다. 에스겔 선지자를 통해 하나님은 이런 말씀을 하십니다. “남북이 내 손에서 하나가 되리라.” 이스라엘이 남북으로 분단되어 있는데, 너희 민족이 내 손에서 하나가 된다는 것입니다. 민족의 분단 문제가 근본적으로 해결되기 위해서는 역사의 주인이신 하나님이 분단 문제를 주관하셔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손에 달렸다는 이 사실을 인식하라는 겁니다. </p>
<!-- paragraph:p0010 -->
<p>그러면서 하나님은 “너의 손에서 둘이 하나가 되리라”고 하십니다. 좀 전에는 하나님의 손에서 하나가 된다고 했는데, 이제는 ‘너의 손에서 하나가 된다’고 하십니다. 이것은 내가 너를 네 민족의 통일의 도구로 삼겠다는 겁니다. </p>
<!-- paragraph:p0011 -->
<p>주님이 산상복음에서 ‘화평케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는다’고 했습니다. 우리는 모두 피스 메이커들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는 평화를 추구하며 평화를 위해 사는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평화의 사도들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다 피스 메이커입니다. 피스 메이커는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는다고 했습니다. 통일은 분명 하나님의 손에 달려 있으나, 그것을 이룩하실 때 우리를 도구로 삼아서 하십니다. </p>
<!-- paragraph:p0012 -->
<p>성 프랜시스의 기도문을 소개합니다. <br>주여!<br>나를 당신의 도구로 써주소서</p>
<!-- paragraph:p0013 -->
<p>미움이 있는곳에 사랑을<br>다툼이 있는곳에 용서를</p>
<!-- paragraph:p0014 -->
<p>분열이 있는곳에 일치를<br>의혹이 있는곳에 신앙을</p>
<!-- paragraph:p0015 -->
<p>그릇됨이 있느곳에 진리를<br>실망이 있는곳에 희망을</p>
<!-- paragraph:p0016 -->
<p>어두움에는 빛을<br>슬픔이 있는곳에는 기쁨을<br>가져오는자 되게 하소서</p>
<!-- paragraph:p0017 -->
<p>위로 받기보다는 위로하고<br>오해 하기 보다는 이해하며</p>
<!-- paragraph:p0018 -->
<p>사랑을 받기보다는 <br>사랑을 하게 하여 주소서</p>
<!-- paragraph:p0019 -->
<p>우리는 줌으로써 받고<br>용서함으로써 용서를 받으며</p>
<!-- paragraph:p0020 -->
<p>자기를 버리고 죽음으로써<br>영생을 얻기 때문입니다.</p>
<!-- paragraph:p0021 -->
<p>이 기도는 프랜시스의 기도만이 아니라 우리의 기도가 되어야 합니다. 프랜시스의 기도를 우리가 실제로 하고 있다면, 평화는 이루어질 것입니다. 우리 사회의 평화, 남북 간의 평화가 이룩되기 위해서는 이런 기도를 바쳐야 합니다. </p>
<!-- paragraph:p0022 -->
<p>이스라엘 사람들의 인사말은 지금도 “샬롬”입니다. 이 말은 히브리말로 ‘평화’이고, 헬라말로 ‘에이레네’입니다. 이 말은 기원이면서 동시에 다짐과 결단입니다. 이웃에 대해서는 기원이고, 하나님 앞에서는 내가 평화의 사도가 되겠다는, 일생동안 평화의 사도로 살겠다는 다짐이요 맹세입니다. </p>
<!-- paragraph:p0023 -->
<p>우리는 늘 불화를 조장하며 삽니다. 툭하면 남 욕하고 원수맺고 삽니다. 지난 분단의 58년을 어떻게 살아왔는지 반성해야 합니다. 언제 우리가 북한을 이해한 적이 있습니까? “때려잡자 공산당”하며 살아왔습니다. 누가 누구와 친하다는 것은 서로 욕하기 위해 친한 경우가 많습니다. 우리는 이러면서 살고 있습니다. 극심한 불화 속에서 살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샬롬의 나라입니다. 어떠한 갈등과 눈물도 없는 평화의 나라입니다. 그 하나님의 나라를 건설해야 하는 역군들이 우리들입니다. 부디 피스 메이커로 사십시다. 팍스 크리스티나, 주님의 평화로 팍스 코레아나 곧 대한민국의 평화를 이룩하십니다. 우리나라의 평화는 팍스 크리스티나만이 가능하게 합니다. 이것만이 남북 간의 상생을 보장할 수 있습니다. </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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