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시가 없으면(잠 29:1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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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 9. 17
묵시가 없으면
잠 29:18-27
<묵시>란 곧 <계시>를 뜻하고, 계시란 곧 하나님의 말씀을 가리킵니다. 묵시가 없다는 것은 곧 <비젼이 없다. 꿈이 없다. 내일이 없다>는 말씀에 다름 아닙니다. 따라서 묵시가 없는 사회, 묵시가 없는 공동체나 개인은 늘 주림과 갈함에 허덕일 수밖에 없습니다. <… 양식이 없어 주림이 아니며 물이 없어 갈함이 아니요 여호와의 말씀을 듣지 못해 기갈이라>(암 8:11).
방자해집니다.
<묵시가 없으면 백성이 방자히 행하거니와 율법을 지키는 자는 복이 있느니라>(18절).
<방자하다>는 말에는 <벌거벗다>는 뜻이 있어 성경에는 이것이 성적 타락을 뜻하는 표현으로 쓰입니다. <모세가 본즉 백성이 방자하니 이는 아론이 그들을 방자하게 하며 원수에게 조롱거리가 되게 하였음이라>(출 32:25). <네가 이 모든 일을 행하니 이는 방자한 음녀의 행위라>(겔 16:30).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묵시가 없는 곳은 무엇보다도 도덕적으로, 윤리적으로, 성적으로 문란해집니다. 성적 타락이 극에 달했던 소돔과 고모라는 하나님의 묵시를 좇는 의인 10명이 없어 결국 패망하고 말았습니다.
뿐만 아니라 <방자하다>는 말에는 <반역하다>는 뜻도 있습니다. 하나님의 묵시가 없는 백성이나 사회는 툭하면 파당을 짓고 작당하여 소동을 부리며 반역을 일삼습니다. 그래서 무질서해지고, 혼란스러워져 마침내는 자멸하게 됩니다. 부디 늘 하나님의 말씀 속에서 살아가십시오. 묵시가 인간의 악한 본성을 통제하고 다스리는 가장 아름다운 수단입니다.
희망이 없습니다.
<네가 말이 조급한 사람을 보느냐 그보다 미련한 자에게 오히려 희망이 있느니라>(20절).
하나님의 묵시는 곧 비젼으로 우리에게 희망을 보여주는 절대적 기재입니다. 희망이 없는 사람, 비젼 없는 공동체는 더 이상 생존할 수가 없습니다. 꿈이 없는 사람은 더 이상 산 사람이 아닙니다. 요셉이 그 모진 아픔과 고난 속에서도 끝까지 버티며 포기하지 않았던 것은 오로지 꿈이 있었기 때문이고, 그 꿈이 순수한 하나님의 묵시였음을 확신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다 축복의 약속이며 희망의 묵시입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말씀을 품고 사는 사람은 곧 내일을 품고 사는 비젼의 사람들입니다.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리니 너는 복이 될지라>(창 12:2). 아브라함은 이 묵시를 받고 전격 본토와 아비집을 떠나므로 영원한 비젼의 사람, 희망의 조상이 되었습니다. 맞습니다. 하나님의 묵시를 따르며 늘 말씀 속에서 사는 사람은 욥기의 말씀처럼 <시작은 미약하나 나중은 심히 창대>(8:7)해 집니다. 그러나 묵시 없이 사는 사람에게는 더 이상 내일이 없습니다. 한 치 앞도 내다볼 수없는 흑암 뿐이기 때문에 늘 좌절하고 절망하며 허무에 울 뿐입니다.
도둑과 짝합니다.
<도둑과 짝하는 자는 자기의 영혼을 미워하는 자라 그는 저주를 들어도 진술하지 아니하느니라>(24절).
묵시의 통제와 감시가 없으면 누구나 유혹과 탐욕에 그대로 노출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도둑과 짝하고 강도와 수작하게 됩니다. 그러나 그것은 곧 자신의 영혼을 미워하는 짓에 다름 아닙니다. 도둑질, 강도질은 법을 유린하고 남을 해치기에 앞서 자신의 영혼을 도둑질하고 강도질한다는 데 그 치명적인 해악이 있습니다. 하루가 멀다고 터져 나오는 정치인, 공직자, 기업가, 연예인들의 부정과 비리와 탈법은 그게 다 자신의 영혼을 좀 먹는 자해행위에 다름 아닙니다. 묵시를 가슴에 품고 사십시오. 늘 말씀을 묵상하며 말씀의 통제와 감시하에서 생활하십시오. 그게 진정한 행복이며 참된 자유이며 자신의 영혼을 사랑하는 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