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교회 아카이브

귀향

둘째 아들이 아버지께 유산을 요구했을 때는 뭘 해도 두려울 게 없고 다 이룰 것 같은 자신감과 모험심에 가득 차 있었을 것입니다. 아버지로부터 받은 재산을 신속히 정리해 멀리 떠난 것만 봐도 보통 야망이 아니었던 것 같고, 또 늘 아버지의 고리타분한 속박과 형의 달갑지 않은 간섭으로부터도 마음껏 자유하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 어쨌든 그대로 집에만 있다가는 평생 첫째가 아닌 <둘째>로 살아갈 수밖에 없었던 그로서는 그게 꿈에 부푼 새출발이었음은 분명합니다. 이제 날개를 단 이상 높이 비상할 일만 남았습니다. 그러나 막상 세상으로 나가 부딪쳐 본 현실은 절대 녹록치가 않았습니다. 세상 물정 모르는 풋내기가 상대하기에는 너무나도 벽이 높았습니다. 그는 곧 가진 돈을 다 탕진하고 급기야는 제 몸뚱아리 하나도 의지할 곳이 없는 최악의 신세로 전락하고 맙니다. 나중에는 더 이상 물러설 곳이 없는 돼지우리 신세까지 지는데 거기에서 마저 돼지먹이인 쥐엄열매 조차 얻지 못해 배를 곯아야 했습니다. 그때 그는  종일 들판을 헤매며 돼지를 쳐도 끼니조차 때울 수 없는 냉혹한 현실이 있다는 사실을 처절하게 배웁니다. 그리고는 그 맨 밑창에서 마침내 <출구>를 발견합니다. 그것은 곧 떠나온 아버지 집으로 다시 돌아가는 것이었습니다. <돌아가 아버지께 머리 숙여 사죄를 빌자! 그리고 아들 대신 품꾼 중의 하나로 써 달라고 사정하자! 그러면 받아 주시지 않을까?> 그는 이제 길 떠날 때의 그 당당하던 모습과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었고, 자기 존재에 대한 인식 수준도 전격 <품꾼>으로 하향 조정했습니다. 이는 극단한 자기 비하요 아들의 존엄과 지위를 스스로 포기한 것으로 쥐엄열매 인생에서 품꾼 인생이라도 지키기 위한 불가피한 굴욕이었습니다. 

그러나 아버지는 결코 아들이 품꾼으로 돌아오는 것을 원치 않으셨습니다. 그는 귀향한 아들에게 온갖 좋은 옷을 다 입히고 손에 반지를 끼우고 살진 송아지를 잡으며 성대한 잔치를 벌였습니다. 그의 존재가 어떤 것이고 그의 위치가 어디쯤이며 그리고 아들의 품격이 어떠해야 하는지를 분명히 확인시켜 준 것입니다. 17세기 네덜란드 출신의 화가 렘브란트의 말년 작품 가운데 저 유명한 <탕자의 귀향>이라는 게 있습니다. 현재 러시아 세인트 페테르부르크의 에르미타즈궁 미술관에 걸려 있는 그 그림은 높이가 2.4m 폭이 1.8m나 되는 대작입니다. 누가복음 15장의 탕자 비유를 고스란히 큰 화폭에 옮겨 놓은 렘브란트의 그 그림이야말로 방황과 방탕한 삶에서 화해와 용서의 삶으로, 냉담과 질시의 시선에서 사랑과 환대의 포옹으로 나아가는 한 존재의 영적 여정일 뿐 아니라 화가 자신의 내밀한 마음의 갈망, 즉 영적 본향에 돌아가고자 하는 소망을 가장 잘 드러낸 작품으로 평가되는 걸작입니다. 그런데 렘브란트의 이 작품에서 영감을 받아 다시 <탕자의 귀향>이란 책을 쓴 사람이 있습니다. 하버드 대학 교수로 수많은 저작과 탁월한 영적 유산을 남긴 우리 시대의 위대한 영성가 헨리 나우웬입니다. 헨리 나우웬이 렘브란트의 <탕자의 귀향>을 처음 접한 것은 1983년, 그로부터 얼마 되지 않아 그는 하버드대 교수직을 사임하고 어느 지체장애자들의 공동체에 들어갔으며, 1992년에는 그의 영적인 삶의 궤적을 가장 잘 보여준 대표작 <탕자의 귀향>을 출간합니다. 그리고 1996년 <탕자의 귀향>이라는 텔레비전 특집 방송을 준비하기 위해 다시 에르미타즈 미술관을 방문하던 중 그가 그토록 바라던 <영원하신 아버지의 품>에 안겼습니다. 나우웬의 <탕자의 귀향>은 그의 깊은 사색과 통찰에서 나온 영성 가득한 글로 참 감동적입니다. 나우웬은 렘브란트의 그림을 통해 자신의 존재와 삶을 가장 진솔하게 바라 본 사람입니다. 

모쪼록 누가복음 15장의 <탕자의 귀향>이 추석을 맞아 귀성길에 오르는 우리 모두의 가슴을 따뜻하게 하는 덕담이 되길 빕니다.